완벽주의자의 결혼식
남편이 보면 식겁할 내용을 쓰려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다시 태어나도 그와 결혼하겠다는 새콤달콤한 이야기도 아니다. 결혼은 다시 할 생각이 없다. 나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
그땐 너무 잘하려고 애썼던 거 같아.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는데.
[그런 어른] 김자옥 작가
책에서 이 문장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8년 전 그 날, 결혼식이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주례 없는 결혼식을 했다. 주례 대신 양가 아버지가 축하의 말씀을 전해주셨는데, 편지를 미리 써서 포맷에 맞게 준비해야 했다. 성혼선언문도 우리가 직접 썼으며, 축가는 남편이 불렀다. 워낙 깐깐한 내 성격을 알기에 남편은 축가의 곡명을 미리 내게 컨펌을 받기도 했다. 사회자 스크립트도 직접 썼고, 예식 전후에 나오는 동영상도 직접 만들었다. 물론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로서 스드메도 당연히 신경써야 했고, 한복, 예물, 청첩장, 답례품과 같은 건 기본이었다.
결혼식 당일은 새벽부터 난리 부르스였다. 11시 예식이라 새벽 6시부터 온 식구가 예식장으로 출발해야 했다. 빨리 가서 메이크업 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남동생이 늑장을 부렸다. 빨리 좀 하라고 동생한테 성질을 내고, 늦었다고 동동거리며 운전하는 아빠를 재촉했다. 온 식구를 들들 볶으며 달려가 헤어, 메이크업을 한 뒤에는 이제 손님들이 걱정이었다. 신부대기실에 앉아 일일이 다 인사하고 사진찍고 밥 먹고 가라고 챙기느라 부산스러웠다. 식장에 들어가서는 자리가 없어 서 있는 사람들이 신경이 쓰였다. 회사 상무님이 저기 서있네, 저 친구가 왔네, 저분이 왜 저쪽에 계시지 등등 온갖 사람들이 눈에 밟혔다. 예식이 시작한 후에는 마이크 소리가 너무 작아 아버님 말씀이 잘 안들리는 게 거슬렸고, 사회자가 말도 안 되는 애드립을 치는 게 신경쓰였다. 정말 하나하나가 나는 왜 그렇게 잘 보이고 잘 들렸는지. 결국은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릴 때 보통은 주책맞게 눈물이 터져나와야 정상인 상황에서 나는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고, 남편은 당황스럽게도 자기 부모님께 절을 하며 눈물을 쓱쓱 닦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건 뭐지.
신혼여행도 만만치 않았다. 7박8일 하와이 신혼여행 계획은 초 단위로 완벽했다. 도착하자마자 어디서 밥을 먹고, 어디에서 잠깐 바람을 쐰 후 어디서 묵고, 아침은 어디서, 무엇을 먹고, 그 다음은, 그 다음은... 그 완벽했던 계획은 도착한 첫날 하와이의 격한 파도에 핸드폰을 흘려보내면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결혼식 당일 그 피곤한 일정을 마치고 바로 날아간 탓에 둘째날부터는 여행 내내 방광염에 시달렸다. 몸이 안 좋으니 남편과도 투닥투닥했고, 한 이틀은 뭘 했는지도 모르게 흘러가버린 듯 하다. 참 아쉬운 일이다.
나는 신부이기에 앞서 결혼식 행사를 주관하는 PD이자 감독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결혼식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거기 있는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그것을 위해 식장, 마이크, 음향, 사회와 축사, 배우인 나와 남편까지도 완벽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신혼여행 역시 7박8일의 일정동안 모든 걸 다 보고, 많은 걸 경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많은 걸 해내는 게 여행을 성공적으로 즐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가 잘못되었다. 가장 행복해야 할 주인공은 나였는데, 정작 나는 그 순간을 즐기지 못했다. '잘'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물 위에 두둥실 떠 있는것 마냥 편안하고 자유롭게, 그 순간 제일 예쁜 주인공으로서의 내 모습을 즐기고, 마음껏 축하받고, 재미있게 놀다 왔어야만 했다. 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했어도 되었다. 행복에 겨워 웃음이 터지거나, 감동에 겨워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해도 아무도 흉보지 않았을 일이다. 정신이 혼미하도록 행복에 취했어야 하는 매 순간의 장면이 너무도 또렷이 기억나는 게 나는 안타깝다. 그만큼 이성의 촉각이 곤두서있었다는 반증이니까 말이다.
결혼식이나 신혼여행에 온 힘을 쏟아붓는 건 사실 당연하다. 일생에 한 번 뿐인 큰 행사고, 심지어 나는 그 행사의 주인공이 아닌가. 당연히 나는 가장 예뻐야 하고, 행사도 무사히 끝나야 하며, 축하해주러 오신 많은 분들을 잘 대접해야 한다. 신혼여행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잘 준비해야 한다. 또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한다 해도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처음이니까 당연하다. 두 번 해보면 더 잘 할 수 있겠지.
사실, 결혼식이든 신혼여행이든 다시 한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성격이 어디 가랴. 웨딩플래너 써봤자 돈은 돈대로 쓰고 신경은 똑같이 쓸 것 같아 일일이 직접 챙겼던 피곤한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좀 더 해 본 지금, 아이도 낳아 키워본 지금, 분명히 깨달은 것 한가지는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조금 내려놔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었다'는 말. 잘 해서 좋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잘 할 필요는 없었다는 말은 과했다는 뜻이다. 완벽주의는 과한 에너지를 요한다. 잘 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잘 하려고 애쓰다가,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친다. 과하게 잘 하려고 했던 에너지를 아껴 다른 데 썼더라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그 순간을 즐겼더라면 지금의 이 기억도 좀 달라졌을 것 같다. 결혼식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렇다. 잘 하려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다보면 어느 순간 주객이 바뀌어있다. 그래서 항상 제일 먼저 기준을 정해야 한다. 모든 걸 잘 하려고 하지 말고, 제일 중요한 것 하나만 정해두어야 한다. 모든 하객을 만족시키는 결혼식, 하와이의 모든 것을 섭렵하고 돌아오는 신혼여행이 아니라, 가장 행복한 신부, 가장 편안한 신혼여행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중요한 것을 해치지 않기 위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려놓는다고 해서 대충 엉망으로 한다는 게 아니다. 더 잘 하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중간중간 내 기분과 몸 상태를 점검하고, 무리다 싶으면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내가 다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해서 고집 부리다가는 반드시 탈이 난다. 물론 그것도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다. 연습이 필요하다.
아,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내 결혼식은 완벽했고, 모든 것이 그래도 의도한 대로 잘 진행되었다. 내가 꼼꼼하게 챙기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결과였다. 다만 아쉬울 뿐이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었던 것까지 과하게 투입한 내 에너지가 조금 아까워서 하는 말이다. 후회는 속상함을 낳지만, 아쉬움은 교훈을 준다. 결혼식을 다시 할 수는 없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덜 완벽하고 더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