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는 사람들과도 시간 보내도 될 걸 한 사람만 올곧이 좋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 주지 못하고 그 사람 멋진 점만 찾아내는 마음이 순수해서 예쁘단다.
그동안 모든 이야기를 옆에서 지켜봐 왔기에 그 사람을 좋아한 내 마음이 어땠는지 알아서 그렇단다.
'바보 같다'는 말을 바꿔 말한 것 같기도 하지만.
크리스마스이브, 매번 내 글에 등장하는 D양과 함께 와인을 마셨다. (애주가인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주종은 와인이다.) 작년 그리고 올해, 마시지도 못한 술이 조금 는 이유가 있다면 그 8할은 그녀, 나머진 그 사람 때문일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술을 마시고 나면 나에겐 적게 또는 길게나마 글을 쓰는 습관이 생겨버렸는데 솔직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쓰게 되는 시간이다. (그 이후 후회하지만)
작년에 그 사람에게만 다른 포장지로 빼빼로를 주었단 이유로 트집(?)이 잡혀 그녀에게 빼빼로를 만들어주기로 약속을 했다. 빼빼로 데이에 그녀는 나에게 편의점 빼빼로 6개를 사주었고 대신 나는 수제 빼빼로를 만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노예 계약이었다. 그러나 작년에 빼빼로를 만든 이유가 그 사람 때문이 아니었냐며 자신들은 들러리였다 우기는 말재간을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모두를 위해서 만든 빼빼로였다.) 그렇게 수제 빼빼로와 함께 작년 이야기가 다시 흘러나왔고 그 사람에게 선물로 주었던 와인 이야기도 나누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방문한 그곳에 늘 놓여 있던 그 와인은 보이지 않았다. 선물로 준 거지만 늘 한 구석에 자리 잡아있는 와인을 볼 때마다 괜히 뿌듯하곤 했었다. '그 와인은 혼자서만 마시겠다' 했던 자신의 말은 아마 기억도 못 할 것이라며 '여자랑만 마시지 말아라' 했던 내 서브텍스트는 지켜지지도 않았을 거라 중얼중얼,, 그 와인이 사라져 버릴 정도로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싶었다.
D양은 요즘은 많이 괜찮아 보인다며 지난 시간 동안 그로 인해 글도 쓰게 되고 그래도 남은 게 있지 않냐고 말했다. 맞다. 혼자 좋아하던 마음과 그걸 정리하기 위해 애쓰는 시간 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게 지금 브런치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 시간 속에서 그림책도 구상하게 되었고 그 그림책으로 또 다른 일을 구상하고 있기도 하다. 그 사람이 나에게 뮤즈였다 말하니 그녀는 맞는 것 같다 끄덕였다.
그 사람에 대한 보고픔과 그리움, 마음과 생각들을 글로 솔직히 털어놓던 블로그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모든 것을 중단하고 말았다. 그 사람이 그 이야기들을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처음엔 내가 올리는 글들과 그 사람의 sns 내용들이 겹치거나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 땐 우연이거나, 우린 여전히 취향이 많이 통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내심 그 사람이 알았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블로그에 남겼던 듣고 싶은 음악을 그 사람이 올렸을 땐 설레면서도 기뻤다. 그 사람이 정말 아는 것 같아 한편으론 '계속해서 내 글을 보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소한 내 일상부터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 이유, 그 사람의 얄미움, 멋있는 모습, 그리움, 속마음 등 참 다양한 이야길 주저리주저리 써놨다. 솔직한 글 덕분인지 한 번 블로그에 방문한 사람들이 오래 머물러 키우기도 좋다 평가받은 블로그였다. 그런데 그 블로그에 글 쓰는 것을 멈춘 것이다.
'기대', '희망고문' 그래, 이 두 단어가 제일 정확한 표현이다. 그 사람도 나의 이야기를 아는 것 같다 말하자 D양은 말했다. '그래서 뭐가 달라진 게 있냐고. 언닌 계속해서 그 사람의 반응을 살펴볼 것이고 그게 헛된 기대감만 갖게 만들 거라고.'
맞는 말이었다. 어느 것 하나 물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라 그 사람이 '아니다' 한 마디면 끝일 이야기 들이었지만 나는 그 몇 가지의 일들 때문에 '이 사람도 나에게 마음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된 걸 느꼈다.
그래서 글을 멈추었다.
아는 것 같은데 막상 얼굴을 보면 모른 척하는 그 사람을 보며 상처받는 나 자신이 싫었고 또 한편으론 이렇게 계속 있으면 같은 패턴만 반복될 것 같았다. 글을 쓰고 그 사람의 반응을 살피고 또 기대하고 상처받고. 그 사람의 연락을 기다리거나 sns 반응을 살피거나 사소한 일들을 기대하는 것. 그리고 나와 같기를 바라는 것. 한 번쯤은 표현해 주길 원하는 것. 모든 것이 바보 같단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글을 멈추지 않으면 난 계속해서 그 사람을 좋아할지 모른다. 물론 멈춘다 해서 그 사람을 안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상처받기 싫었던 내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시 돌아와 오늘, D양은 말했다.
"잘한 거야. 언니 글을 모두 읽고 그 마음을 알았음에도 한 번도 다가오지 않았던 건,
언니 마음은 스스로 알아서 정리하길 바랐던 걸 거야."
그 사람은 요즘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밖으로도 많이 다니며 노력하는 것 같으니 언니도 이제 그만 그 사람의 장점은 그만 발견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한 노력이라는 걸 다시 해보라 한다. 여전히 나에겐 멋있는 그리고 배울 점 많은 남자이지만 가장 측근인 사람에게서 듣는 냉정하지만 이성적인 조언은 새겨듣지 않을 수가 없다.
솔직히 최근에 또 다시 많이 흔들렸었거든.
오래전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던 나는, 브런치엔 기록하던 '나만 아는 이야기'도 이젠 마무리해야 하나 싶어 진다. 글을 멈추면 모든 게 멈춰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