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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Feb 14. 2024

당신이 모르는 사이   

짝사랑을 하고 남겨진 것들  




한참을 걷다 크고 밝은 보름달을 보며 되뇌었다.
'보고 싶다.' 생각은 해도 되는 거 아닌가.





지난 9월. '가을'로 시작되었던 글은 어느덧 '보고 싶다.'로 마무리가 지어져 있었다.

 '보고 싶다'라고 말해 '보고 싶은 건지', '보고 싶어서' '보고 싶다' 말하는 건지도 모른 채 그저 '달을 보며 되뇌었다'라 쓰여있었고 그 바람들은 우습게도 우연과 함께 이뤄져 버렸다. 같은 동네인 탓도 있겠으나 그 사람과 우연히 마주쳐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때 가졌던 보고픔이란 마음은 난생처음 내게 그림책이라는 걸 쓰고 싶게 만들어주었다. 





1.


예술 교육을 시작하고 알게 된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림책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림책은 어린아이들만의 책인 줄만 알았다. 단순히 부모님이 아이 잠들기 전 읽어주는 책, 글을 모르는 아이가 한글을 배우기 시작할 때까지 읽는 책. 그런 게 그림책이라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그림책은 어른을 위한, 어른들이 읽기 가장 좋은 책이었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표지부터 종이 재질, 그림체 등등,, 때론 권에 너무나도 많은 메시지가 숨겨져 있더라.

 그 이후 나는 그림책을 많이 사랑하게 되었고 아이들과 그림책 만드는 수업을 시리즈로 기획하기도 하였다. (인쇄용이 아닌 모양부터 재료, 크기, 이야기 등 스스로 선택하여 만드는 기존의 그림책 만들기와는 다른 통합예술수업이었다.)

 지인 그림책 작가들도 있기에 옆에서 지켜보며 그림책에 대한 마음은 더욱 커져갔다. 물론 이때까진 '나도 그림책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냥 그림책에 대한 애정도만 더 커졌을 뿐.






2.


작년 초 연극 수업 의뢰가 들어와 '감정'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였다. 연극적 상황 속에서 진행을 하는 우리 수업의 콘셉트는 '라디오'였고 아이들의 사연을 받아 감정에 대한 극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중에 강사들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아이의 사연을 받았다. 이별을 하고 가족을 떠난 아빠가 더 이상 소식이 없다며 보고 싶다고 써 내려간 이야기였다. 요즘은 한 부모 가정이 많다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쉽게 이야기 해선 안될 부분이었다. 사연을 읽으며 뭉클하면서도 그동안 엄마가 속상할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 아이의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표현해 주어 너무나도 고마웠다. (추후 어머니께 따로 이 이야기를 전달해 드렸고, 수업도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3.


사람의 뇌는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하지 마'라고 떠올리면 더 집중하여 생각만 하게 된다고 한다. 나 역시 '보면 안 돼.' 하며 스스로를 억압해서였을까? 일부러 보러 가지 않았던 개월동안 이상하게도 '보고 싶다'란 생각은 많이 했던 같다. '이럴 거면 차라리 보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럼에도 안된다는 건 알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운동 겸 산책을 자주 하던 나는 숲 속에서 '보고 싶다'라고 입 밖으로 말해버렸다. 그리곤 바람이 불자 나뭇잎들이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문득 아빠가 보고 싶다고 말했던 아이의 사연이 떠올랐다. 그 아이처럼 나도 무언가를 보고 싶어 하고 기다리고 있던 걸까? 

이런 마음을 어느 한 곳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던 아이와 내가 닮았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혹여나 우리가 어디엔가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면,, 그건 나무나 꽃, 바람, 마주친 길고양이, 달,,, 뭐 그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그림책 '내 이야길 들어줘' 일부분 스케치





4.


글을 썼다. 그러고 나서 끄적끄적 그림을 그려 더미북을 만들었다. (더미북이라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언제 완성될지 모를 그림책이지만 이때의 생각과 감정을 남기고 싶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글 내용만 읽고 눈물을 보이며 꼭 발전시키면 좋겠다 말해준  D양 덕분에 자신감을 얻어 더미북을 그리게 되었다.)  


무척 단순한 내용이지만 진심이 담겼기에 전달력이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무언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면 어느 하나는 들어주지 않겠냐고. 아이에게 (말을 못 했으나) 전해주고 싶었다.

 며칠 전 D양은 '그 결말이 해피엔딩인 걸까?'라고 물었다. 나에겐 그런 의미이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선 새드엔딩일 수도 있겠구나,,



5.


또다시 안 본 지 오래되던 어느 날. 이번엔 다른 동네에서 마주쳐버리는 우연을 마주하곤 그동안 보고 싶다 생각했던 마음과 말들이 전해지고 전해져 정말 무언가 하나는 들어준 건가 싶었다. 늦었지만 그래도 그림책처럼 내 이야길 무언가가 들어주긴 했었나 보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그림책이니 그런 상상쯤은 이해해 주도록 하자.)


지난 글에 이야기했던가. (인정하기 싫지만 그리고 D 양이 탐나는 자리지만) 그 사람이 내 뮤즈인 것 같다고. 좋아하며 속상한 적은 많았으나 덕분에 남겨진 것들이 많다. 짝사랑을 시작하고 정리하며 힘들던 시간들 속에서 그 사람은 내 뮤즈 역할이 되어주었고 덕분에 나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의 뮤즈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

부끄러워하며 도망가겠지.


꾸준히 이 글이  그 남자의 다정함에 대하여 (brunch.co.kr) 자주 읽히곤 해

문득 그 남자의 생각이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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