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입양 역사
꽃일을 하다 보면 꽃이 종종 남는다. 꽃은 5줄기 10줄기씩 파는데 꽃수업 인원이 11명 12명일 때, 꽃장식을 하고 다 쓰지 않은 꽃이 생겼을 때, 꽃다발 꽃바구니 주문받았을 때 등등. 이런 꽃들은 바로 쓸 일이 있지 않으면 어딘가 보내고 싶다. 나는 늘 보는 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척 오랜만의 기쁨일 수 있으니까. 우리 집 식탁에 있으면 세 남자가 밥 먹을 때마다 치우자고 하지만, 다른 집에 입양되면 분명 존귀하게 대접받을 테니까. 백댄서를 소속사 옮겨 솔로 가수로 데뷔시키는 듯한 뿌듯함!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다 보니 꽃 나눔 해온 역사가 다채롭다. 동네 엄마들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데다 답례로 자꾸 뭘 줘서 부담된다. 지인들에게 택배로도 많이 보냈는데, 덥고 추운 계절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보내보겠다고 보냉박스도 꽤나 썼다. 박스에 쏙 들어가고 배송 중에 상하지 않겠고 오래 싱싱할 꽃이어야 보낼 수 있어 까다롭다.
가치를 아는 사람이 가져갔으면 해서 1/10 가격으로 당근에 판매해 봤는데 어림도 없다. 꽃일을 하다 보면 알게 된다. '꽃을 안 좋아해요' 라는 사람도 잘 없지만, '별일 없는데도 꽃에 돈 쓸 만큼 좋아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드물다. 나의 하이엔드 꽃클래스에 '언젠가 한번 꼭 오고 싶다'는 사람은 많고 물론 진심이겠지만, '그게 이번'인 사람은 손에 꼽는다. 당연하다. 꽃을 자주 곁에 두고 들여다보는 기쁨, 내 손으로 만져보는 생명력 어린 촉감은 겪어보지 않고 알 수 없으니까.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것만큼이나.
나눔으로 올려도 사진 찍고 약속 잡고 주차등록하고 거쳐야 할 단계가 많다. 수고로이 여기지 않고 입양시키고 싶은데, 희귀하고 비싸 보이거나 얼굴 큰 꽃이 아니면 인기가 없어서 힘 빠진다. 사실 들꽃 같은 꽃들이 귀엽고 대개 오래가는데. 마치 '진짜 친구' 같달까. 이목구비 큼직하지 않은 아이가 눈웃음이 더 귀엽듯이. 그러니 시간 들여 가져가겠다는 분이 있으면 감사하다. 얼굴 보는 게 부담되는 I일까 봐, 뭐라도 챙겨 올까 봐 주로 문고리로 거래한다. 뭔가 쥐어주신다고 적극 사양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내 꽃이 대가 없는 진짜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프로포즈 장식을 하고 남은 꽃을 어떻게 나눌까 고민스러운 저녁, 이번에는 스레드에 올려보기로 한다. 큰 기대는 없다. 팔로워가 많지도 않고, 가까이 사는 분이나 비 오는데 가져가겠다는 분이 얼마나 될까 싶다. 1번은 분홍꽃들, 2번은 하얀 꽃들, 3번은 센터피스. 셋 다 가져가셔도 된다고 써뒀다. 바로 댓글이 생기지 않는다. 그럼 그렇지, 꽃에 수고를 감수할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니까. 우리 아이가 반장선거에서 한 표도 못 받으면 이런 기분일까? 아니, 두 표 받았다고 했을 때도 나는 출마 자체가 진심으로 대견했다. 마찬가지로 내 꽃들도 이런 반응에 좌우될 존재가 아니다.
그 때였다. 한 분이 셋다 가져가겠다고 하신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그러고 나니 줄줄이 댓글이 달린다. 10개, 20개.. 자꾸 늘어난다. 실망하실까 봐, 이미 가져가는 분이 있다고 고정댓글과 답글을 달아도 가속도가 줄지 않는다. 마음이 급하셔서 일단 댓글부터 남기시는 것 같다. 수지에 꽃순이를 자처하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니. 우리 동네 꽃동네였구나.
세 분께 드릴 걸 그랬나 싶다. DM을 보내본다. 이번 주말이 웨딩촬영인데 꽃을 주문 못했다고 하신다. 이런 꽃 인연이!! 한 분께 드리길 잘했다. 스레드에 나눔 하길 잘했다. 요즘은 꽃을 가득 펼쳐놓고 촬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플라워디렉팅은 최소 40~70만 원대이다. 꽃밭에 파묻힌 듯까지 할 꽃양과 종류는 안 되지만 최선을 다해봐야지. 꽃 더 보태고 싶은 건 참자.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센터피스 2개, 부케 3개를 만들어낸다. 꽃을 너무 많이 샀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쓰임 받다니!
마침 에버랜드 근처에 산다고 하신다. 토요일에 에버랜드에 가기로 한 터라 에버랜드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한다. 당일 아침, 에버랜드 오시냐는 DM에 간다고 답을 했지만 읽지 않고 있다. 일단은 꽃이 최대한 싱싱하도록 출발 직전에 꽃냉장고에서 꺼낸다. 문자 전화 모두 2시간째 연락이 되질 않는다. 폭우 예보가 있었으니 안 올 거라고 생각한 듯하다. 속이 탄다.
에버랜드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통화가 된다. 가족과 다른 가족은 에버랜드 정문에서, 나는 주차장에서 기다린다. 오픈 30분 전.. 20분 전.. 드디어 15분 전, s님과 조우한다. 주차장이 혼잡하니 차에서 내려 급히 뛰어오셨다. 덜 마른 머리카락과 상기된 얼굴이 귀여우시다. 그 와중에 수제쿠키를 챙겨 온 센스까지. "오늘 푹 쉬시고 내일 꿀 피부로 예쁘게 촬영하세요!" 외치고 정문까지 뛴다. 다들 반가워한다. 나도 쿠키도.
며칠 후, 촬영한 사진을 보내주셨다. 포토그래퍼님이 당연히 아실 줄 알았는데 샘플 사진을 보내드릴 걸 그랬다. 센터피스는 벽돌처럼 들고 찍는 게 아니라 사이에 앉아서 찍는 건데. 블랙 센터피스에 블랙 드레스, 진핑크 꽃이라서 블랙핑크 조합은 실패가 어려운데. 이 센터피스는 누가 봐도 이 부케와 세트인데... 구도도 구성도 화질도 상당히 아쉽긴 하지만, 애초에 사진 건지려고 꽃을 드린 건 아니니까. 화사하게 빛나던 표정만으로도 이미 다 받았는걸.
신이 난 플로리스트는 또 다음 꽃 나눔까지 만들었다. 이번에는 예비엄마가 와서 들꽃처럼 웃는다. "예쁜 태교 하세요!" 수업하면 꼭 오고 싶다는 말에 흔들린다. 출강 꽃수업으로 쉽지 않게 벌어서 찐팬들이 매번 오는 꽃수업에 헤프게 풀어놓는지라 봄가을에만 여는 나의 수업. 아무래도 애기 엄마 되시기 전에 가을 수업도 하고 싶어져 결국 날짜를 잡았다. 괜한 일을 벌이고 실속없이 바쁘다고 해도 별 수 없다. 웨딩촬영만큼이나 멋진 사진과 꽃 같은 웃음을 남겨드릴 수 있으니까. 그러려고 꽃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