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잡이 플로리스트의 왼팔 수난기
토요일 새벽 6시, 알람이 울린다. 자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도둑처럼 살금살금 준비한다. 화장품과 옷, 가방을 모두 거실에 꺼내놓았기에 가능하다. 7시, 집을 나선다. 이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경부고속도로의 한적함이 좋다. 낮에는 45~55분 걸리는 꽃시장을 2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꽃시장 주차장은 새벽에도 차가 많다. 플로리스트란 새벽부터 부지런해야 하는 직업이다. 가까운 곳에 주차자리가 나길 기도해 본다. 어제 부케샵에서 근무하느라 팔이 뻐근해서다. 오른손잡이 플로리스트는 왼팔이 고생한다. 꽃다발이나 부케를 만들 때, 왼손으로 꽃을 잡고 오른손으로 하나하나 추가해 나가기 때문이다.
무겁다기보다, 내가 넣은 꽃의 위치가 꽃을 더 추가해도 변하지 않으려면 왼팔과 왼손가락 하나하나는 딱 고정하고 있어야 한다. 왼손가락이 움직이는 순간 꽃 얼굴방향이 돌아가거나 높낮이가 달라진다. 꽃다발은 꽃이 조금 움직여도 티가 안 날 수 있다. 모든 꽃이 정확한 자리에 잘 보이도록 만들어야 하고 서로 붙어있는 부케는 나비효과처럼 일이 커진다. 0.3cm 내려간 하나를 올리면 그 옆의 꽃도 따라 올라가 버린다.
무거워서이기도 하다. 꽃시장에서 왼팔은 산 꽃을 모아서 끌어안고 있고 오른손은 꽃을 고르거나 계좌이체를 하니까. 가까운 곳에 주차하는 것은 다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조금씩 차에 넣어두고 다시 꽃쇼핑을 하면 왼팔 과부하를 피할 수 있다. 먼 곳에 주차하거나 꽃이 많거나 시간이 촉박해서 가득 들고 오래 있은 날이면... 왼팔에 침을 스무 곳쯤 맞곤 한다. 몇 주 전에는 침 맞은 곳의 시퍼런 멍 몇 개가 오래갔다. 지인이 다른 곳에 멍이 든 채로 다니다가 "혹시.. 도움이 필요하세요?"라는 말을 들었다며 진지하게 반창고를 권유했다. 남편을 오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열심히 붙이고 다녔다.
침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 팔 근력 운동이 필수다. 블로그나 브런치를 쓰면서도 생각하는 틈에 두 팔을 쭉 뻗는다. 누가 잡아당긴다는 느낌으로 왼쪽 오른쪽 번갈아가며 조금씩 늘린다. 골반은 고정!(이라고 유튜브 속 홈트 선생님이 설명했다). 어렵지 않은 동작이지만 처음엔 1분 하기가 버거웠다. 이제는 1분쯤 할 만하고 팔도 뿌듯하게 가늘어졌다. 연예인들은 양팔에 프라이팬 같은 걸 들고 이 동작을 한다고 한다. 특히 배고플 때, 살이 소멸될 때까지. 세상에. 그 영상을 본 후 프라이팬도 안 들었는데 뭐, 하고 더 할만해졌다.
감사하게도 최적의 자리에 주차했다. 나의 소중한 왼팔, 오늘 무사하겠구나. 40분 안에 모두 사고 8시 10분에 나가자. 우선 바구니. 보아둔 게 있으니 바로 살 수 있다. 비닐봉지에 넣어주니 꽃 고르는 동안 바닥에 둘 수 있어서 먼저 사도 괜찮다. 단골집에서 산 꽃들은 그 옆 그린소재 전문집에 다녀오는 동안 들고 가지 않고 잠깐 맡겨두는 것도 팔을 보호하는 노하우다.
이제 꽃바구니와 꽃을 차에 한번 넣어둔다. 왼팔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두 번째 단골집에 첫 번째 단골집에서 산 꽃을 가지고 가면 왠지 조금 죄송해서다. '저 여기서만 사요'라는 인식을 주는 나만의 시크릿 각인 방법이기도 하다. "저번 페어리테일 장미 정말 오래갔어요.", "사람들이 이 별튤립 진짜 좋아하더라고요."라고 기분좋아지실 피드백도 잊지 않는다. 그 분들의 하루가 나의 한마디로 조금 더 뿌듯해지시길 바라며.
9시 조금 전, 수업장소에 도착했다. 수업은 10시 반 시작. 아파트 내 도서관이기에 수업 전에 장소를 1시간 반 쓸 수 있는, 정말 드문 곳이다. 전날 꽃시장에 갔다가 모든 꽃을 차에서 내려 다듬었다가 당일에 다시 차에 싣지 않아도 된다. 꽃수업이 꽃일 중에서도 고된 건 바로 이 사전 작업 때문이다. 꽃 보관 리스크는 물론,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이 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왼팔이 쑤시는 플로리스트는 주차를 하면서 쎄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곧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카트를 안 가지고 왔다. 왜 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괜찮아, 다른 거 깜빡한 것보다는 낫잖아?' 초긍정 플로리스트는 조금이라도 팔 쓸 일을 줄인다.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차를 잠시 세우고, 짐을 내리고, 다시 주차한다. '그럼 그럼,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못 쓰는 곳도 많잖아? 게다가 오늘은 30명 아니고 10명이라고.' 생각보다 짐이 무겁지 않다. 어쩌면 셀프최면일지도.
수업 준비를 시작하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피로감도 왼팔 통증도. 모든 것을 잊고 오늘 수업도 불태웠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몸이 한결 가볍다. 짐이 줄었고 배도 고프고. 아, 팔이 안 아프다. 가뿐한 이 느낌! 역시 꽃수업은 최고의 도파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