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도 26살과 마찬가지
어제 저녁에 종량제 봉투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 큰 골목 전봇대 밑에 커플 한 쌍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쑥스러워서 곁눈으로만 슬쩍 보고 얼른 걸었다. 대학생 정도 되어 보였다.
‘좋을 때다. 나도 10년 전에는 말이야…’
그러다 얼른 정신 차렸다. 종량제 봉투와 딸아이 초콜릿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남들이 코로나바이러스를 걱정하던 시절 나는 한창 내 미래를 걱정했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다. 그동안 강산은 차치하더라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는 눈이 예쁜 사람과 결혼했다. 눈웃음이 깊고 키가 아담한 게 다람쥐를 닮았다. 우리는 30년을 만난 것 같으면서도 30일을 만난 것 같다. 같이 있을 때 설레면서도 편안하다. 어제는 같이 순댓국을 먹었다.
보통 딸은 아빠를 닮는다고 해서 아내 배 속에 딸이 있다고 할 때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도 딸은 새끼 다람쥐처럼 두 눈이 크고 맑다. 4살이 되더니 어린이집에 남자친구가 생겼단다. 며칠 전 “아빠가 좋아 남자친구가 좋아?” 하니까 남자친구가 좋단다. 참나. 주말 내내 서운했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잘 살아보겠다고 분투하며 산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 모르겠다. 개미투자자 오 과장은 돈이 최고란다. 같이 밥을 먹으면 내내 주식 앱만 쳐다봐서 밉상이다. 중학교 동창은 오토바이에 빠졌다. 주말마다 오토바이 타는 맛에 산다. 할머니는 생전에 가족이 제일이라고 하셨다. 연말만 되면 고등학교 친구들은 우정을 빌미로 나를 술자리에 부른다. “기웅아, 의리 있으면 나와야지!”
어렵다. 인생은 매일이 처음이라 아침마다 하루가 두렵다. 26살도 36살도 마찬가지다. 원체 나 스스로가 겁쟁이이기도 하다. 그래도 씩씩하게 살아야겠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랑해야겠다. 딸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도, 아내가 염색으로 흰머리를 숨길 때가 되어도, 내 허리가 굽어져 펴지지 않을 때가 되어도 삶과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작가의 말 :)
학과 소식지에 실은 글입니다. "10년 후"라는 주제로 800자 분량을 썼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 흐릿하게나마 미래를 그려봤습니다. 10년 후에는 많은 것이 바뀌겠지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작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