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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와 선로처럼 삐그덕 거리고 살 거다

by 레이노

열차와 선로는 어긋나야 제대로다. 열차와 선로는 꼭 맞물려 곧장 뻗어나갈 거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굽이 도는 두 갈래 철길은 높이와 폭이 조금 다르다. 열차 바퀴는 적당히 기울어져 있고 달리는 열차는 뱀처럼 꿈틀거린다. 기우뚱거리지 않으면 탈선한다. 바른 선로와 열차는 안전하지 않다.


열차와 선로처럼 내 학창 시절도 삐거덕거렸다. 친구들과 몰래 땡땡이를 쳤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학교를 빠져나와 당구장, 비디오방을 누볐다. 그때 당구는 지금의 당구 실력이 되었고 몰래 본 명작 영화와 배우들은 가슴에 남았다. 브래드 피트와 브루스 윌리스가 등장하는 영화를 두루 섭렵했다. 맥 라이언을 보면 설렜고 샤론 스톤을 만나면 흥분했다.


‘왜 학교 앞 당구장만을 고집했을까?’

선생님은 어김없이 우릴 찾아오셨다. 사랑의 매질로 ‘때론 사랑은 멍이 들 만큼 깊은 상처를 남긴다’라는 것 또한 알려주셨다. 그렇게 맞고도 다음 날 땡땡이를 또 쳤다. 왜 멋있다고 생각했을까. 치기 어린 행동으로 객기를 부렸다. 선생님은 모르셨다. 사람은 때려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성문도 썼다. 선생님은 원고지를 주시며 그릇된 행동과 다짐을 담아 600자로 요약해 제출하라고 하셨다. 다음날 빨간 글씨로 수정된 반성문. 선생님은 문법에 맞지 않은 문장들을 바로잡아 주셨다. 틀린 맞춤법과 잘못된 띄어쓰기 그리고 600자를 벗어난 글자 수만큼 걸레 자루로 내 손바닥을 사정없이 내리치셨다. 그때 알았다. 글을 못 쓰면 손을 못 쓰게 될 수도 있다는걸.


그래 맞다. 나는 공부를 못했다. 공부를 못했는데 학교에만 있었으면 어쩔 뻔했나. 하마터면 후회할 뻔했다. 그나마 땡땡이치고 놀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골똘히 노력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생각? 한 번쯤 생각할 법도 한데 그땐 하지 못했다. 기껏 공부해 봐야 의사, 판사, 변호사가 될 수 없었다. 암만해도 거기서 거기다. 지금도 내 성공을 향한 꿈은 직급 높은 회사 사장이나 임원이 아니다. 집안일 아무리 한다 해도 나는 최수종이 아니다.


뜻대로 되는 일은 잘 없다. 인정받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상대는 느끼지 못하고 상처받는다. 속 좁은 말들은 다툼이 되고 후회로 남는다. 어젯밤에는 아내와 삐거덕거렸다. 그러고는 이른 아침 일어나 류현진 야구 중계를 보며 승리를 기원하고 있다.

‘내 앞가림 하나 못하면서 다른 사람 성공이나 바라다니. 외모 빼고 닮은 구석 하나 없는데.’

야구도 내 나이도 4회 말 이닝 시작이다. 서로 시련과 고난 딛고서 웃는 날 맞이할 거라는 희망을 나누는 걸까. 공 던지는 너도, 부부 싸움한 나도 승리했으면 좋겠다. 적당히 눈치 봐서 아이들 핑계로 말을 다시 건네야겠다. 그러고 나서 저녁 약속을 나가야지. 가끔 땡땡이치고 산다. 조금 어긋나고 못나면 어떤가. 후회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나를 위해 열차와 선로처럼 삐거덕거리고 살 거다.

아내는 오늘도 한숨 쉰다. 집안일은 끝이 없다. 살림은 기껏해야 제자리라 큰돈 들이지 않는 한 만족도 어렵다. 쓰레기와 방바닥 머리카락은 치워도 나오고 빨래와 설거지는 해도 또 쌓인다. 통장 잔고나 쌓였으면 좋겠는데. 아내는 항상 아이들 걱정이다. 그러다 곧 목소리를 높인다. 아이들이 방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그렇다고 힘든 아내를 두고 나만 줄곧 편하게 지내는 건 아니다. 요즘 나도 마음이 편치 않다. 민재와 강인이는 독일과 프랑스로 떠나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지내는 걸까.

‘그나저나 영국에 사는 우리 손흥민이는 잘하고 있는 건가.’

내가 이런 걱정이나 한다고 속상해 말자. 조금 탈선해도 괜찮다. 우리는 기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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