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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솔 Jul 14. 2024

엄마 미안하지만 케이크는 더 완벽해야 해

다음에는 잔소리말고 칭찬을

요즘 우리는 마찰이 잦아졌다. 주로 먼저 관계에 불화를 심는 건 나의 쪽이다. 케이크 디자인이나 마감 퀄리티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엄마에게 더 예쁘고, 더 꼼꼼하게 신경 써서 케이크를 제작했으면 한다고 자꾸만 핀잔을 준다. 엄마는 진지하게 지금도 케이크가 예쁘다고 말하지만, 내 눈에는 꽃이 예쁘지 않거나, 주름 표현이 울퉁불퉁하거나, 색상이 미묘하게 촌스러워서 자꾸 5% 아쉬운 결과물로 보인다. 물론 돈을 받고 팔 수 있을 만큼 우리 떡공방 케이크는 예쁘다. 픽업을 하러 온 주문자분들도 하나같이 예쁘다고 감탄한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고, 엄마에게 이 부분을 강요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공방 초기에는 케이크 제작에 쏟은 시간이 물리적으로 적으니, 꽃 모양이 매끄럽지 않아도 어느 정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점점 다른 공방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세상에는 너무나도 예쁜 케이크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고,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알 것 같아서 제대로 재현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솟아났다. 꽃 모양도 예쁘게 만들 수 있을 만큼 실력도 늘었고, 조금만 고민하면 케이크 위에 꽃을 더 조화롭게 배치할 수 있고, 앙금 색이 촌스러우면 번거롭더라도 다시 색을 섞으면 원하는 색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엄마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늘 케이크를 만들다가 힘에 부쳐 한번씩 케이크가 조화롭게 완성되어 가는지 볼 여유가 없을 뿐이다. 


엄마가 케이크를 만들 때면 나는 옆에서 심한 잔소리꾼이 된다. 


“엄마, 그 색 안 예뻐. 조금 더 연한 핑크로 바꿔줘.”,

”엄마 꽃 크기를 더 작게 할 수는 없어? 꽃이 너무 다 비슷한 크기야.” , 

“아니, 그거 말고, 어 그 옆에 걸로 올리자.”, “엄마 신경 써서 올렸어야지. 이거 옆에 다 티나.”, 

“어차피 손이 많이 가는 거, 완성도 조금만 더 꼼꼼하게 해서 예쁜 케이크로 홍보하자고, 사람들이 이걸 보고 또 주문할 텐데.” 


오픈 초기 케이크를 만들 때 긴장하는 엄마 옆에서 “잘하고 있어.”, “예쁘다! 좋아.” 걱정 인형 역할 자처하던 F100% 딸은 사라지고, 이제는 T100%로 엄마에게 날카로운 피드백을 마구 꽂는다. 입장을 바꿔 내가 이런 피드백을 계속 받으면 너무 짜증 났을 것 같은데, 엄마는 여전히 케이크를 만드는 일을 너무 어려워해서 불안한 눈빛으로 이 모진 말을 다 받아낸다. “그럼 네가 하든가.”라는 말이 차오를 것 같은 상황에도 “이렇게? 여기? 맞아?” 케이크를 잘 만들기 위해 애쓰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차갑게 비수란 비수는 다 꽂아 놓고서 내가 너무했나 반성하고, 엄마에게 쏟았던 말을 주워 담고 싶어진다.


아마 남이었다면 말을 최대한 순화해서 차근차근 가르쳐줄 텐데, 왜 가족에게는 그렇게까지 친절해지지 못하는가…. 우리가 같이 일하면서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은 더 예쁜 케이크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도 아니고, 날것의 감정이나 말을 숨기지 못하고 툭툭 뱉어버리는 태도를 바꾸지 못할 때인 것 같다. 


하루는 엄마가 역시 손을 벌벌 떨면서 처음 구상해 본 디자인으로 보자기 케이크를 만들었고, 나는 다른 디저트를 만들면서 동시에 엄마보다 뛰어난 미감과 버리지 못하는 완벽주의로 잔소리꾼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다 중간에 급하게 부족한 재료를 사러 마트에 다녀왔는데, 엄마가 혼자 케이크를 완성해 놓았다. 케이크를 확인해 보니 예쁘지만 역시 부족한 점이 먼저 보였고, 나는 또 말을 고르지 못하고 바로 부족한 점부터 엄마의 가벼운 실수를 피드백하기 시작했다. 예쁘다는 감상을 먼저 말하지 못한 것이 생각났을 때는 이미 부정적인 피드백이 먼저 입 밖으로 나간 뒤였고, 엄마의 표정이 굳어진 채, 참았던 짜증이 묻어나는 말이 돌아왔다. 


“네가 말한 대로 했어, 꽃을 올리면서 조금 가려졌을 뿐이야.” 


우리가 있는 공간의 공기는 순식간에 차가워졌고, 나는 수습할 방법을 찾아 머리를 굴렸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연재 초기에는 분명 우리는 부딪쳐도 괜찮은 동료라고 생각하며 글을 연재했는데, 나는 자꾸 부딪칠 일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완성한 케이크 사진을 남기는 엄마 옆으로 퍽 어색한 걸음걸이로 걸어가 이번에 촬영용 소품으로 구매한 조화를 케이크 뒤에 슬쩍 두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 조화 하나가 더해졌을 뿐인데, 케이크가 두 배로 예뻐 보였다. 케이크를 만들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만들 때는 섬세한 작업에 너무 열중해서 스트레스 지수가 치솟다가도 완성한 케이크를 사진으로 남길 때면 아름다운 모습에 뿌듯함이 차올라서 갑자기 다 괜찮아지고 기분이 순해진다. 완벽한 케이크에 집중하던 나도, 진이 다 빠진 엄마도 갑자기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꽃이 하나 있는 게 다르긴 다르네.”, 

“엄마 케이크 예쁘다.” 


우리는 또 언제 마찰이 있었냐는 듯이 케이크를 보면서 그간의 스트레스를 모두 녹여버렸다.


“네가 옆에 있어서 (케이크를 만드는)실력이 빨리 늘고 있긴 하다만, 나한테는 너무 빨라.”

엄마는 뒷정리를 하면서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엄마 요즘 만드는 작약이 엄청 예뻐졌어.”

나는 돌려서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비판하는 말은 언제라도 뱉을 수 있게 가까이 두고, 좋게 말할 수 있는 마음을 너무 안쪽에 숨겨두었더니 다시 둘의 순서를 바꾸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완벽주의가 분명 도움이 되고, 예쁜 케이크를 만드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예쁜 말을 건네면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케이크를 만드는 일이 케이크를 함께 만드는 우리에게는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음에는 잊지 말아야겠다. 


“엄마 케이크 예쁘다! 여기만 조금 더 바꾸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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