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와 창작활동 사이에서 얻은 깨달음
요즘은 제법 안정적으로 주문이 들어오고, 익숙하게 떡케이크를 만든다. 대부분 포트폴리오로 남겨 둔 사진을 보고 케이크를 주문해 주시기 때문에 손에 익은 케이크 디자인은 긴장을 덜고 만들 수 있다. 가끔 새로운 디자인을 원하는 분을 만나면 그때 다시 바짝 긴장하고 엄마와 머리를 맞대어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는 케이크 디자인을 최대한 예쁘게 만들어내기 위해 집중한다. 떡케이크를 만들어 팔며 우리는 장사와 창작활동을 동시에 경험한다. 10대에는 날마다 그림을 그렸고, 20대에는 디자인을 했던 내게 창작활동은 이미 익숙한 괴로움이면서, 반드시 찾아오는 뿌듯함이지만, 한평생 암기 위주의 공부와 가르치는 일을 하며 가족을 돌보고 집안일을 해오던 엄마에게 창작의 고통은 어마어마하게 커서 가끔은 뿌듯함도 삼켜버릴 정도다.
몇 개월을 엄마와 함께 케이크를 만들면서 처음에는 엄마가 장사가 처음이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일이 손에 익어도 여전히 떨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원인은 창작활동이 낯설기 때문이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는 창의력이란 말만 들어도 우주먼지만큼 작아지는 기분을 느꼈던 시절이 있었기에 엄마가 지나가고 있는 과정이 어디쯤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요즘 교육환경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른들이 시키는 일을 곧잘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나는 누군가 넣어주는 입력을 잘 따르고 출력도 정직하게 잘 해내는 아이였다. 미술학원에서도 선생님이 알려주는 수채화, 소묘 기법을 수월하게 익혔다. 하지만 따라 그릴 샘플 그림 없이 “오늘은 머릿속에 있는 걸 그려봐”라고 하면 그렇게 날쌔게 움직이던 연필이 한없이 느려지고, 선생님이 줄 힌트를 애타게 기다리면서 나는 창의력이 없다고 생각하며 슬퍼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래도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고, 어떻게 저렇게 창의력은 제한하고 표현력을 시간 안에 극대화하면 합격할 수 있는 한국 입시미술과 쿵짝이 맞아서 디자인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같은 고통은 무한히 반복됐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를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서 나는 또다시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몰랐고, 내 창의력의 한계를 탓하며, 나는 과를 잘못 왔다는 생각을 밥 먹듯이 했다. 그렇게 창작활동의 두려움에 빠져 지금도 엄마의 마음속에 뿌리 박혀 가끔 튀어나오는 “못 하겠어, 그만두고 싶어”를 나는 휴학, 다른 분야로 취업, 디자이너로 입사 그러나 1년 만에 퇴사하는 방식으로 겪었다.
내가 창작의 부담에서 벗어난 건 비교적 최근 일이었다. 지금도 완전히 벗어났다기보단 해탈에 가깝다. 그냥 창작 과정의 스트레스에 익숙해졌고, 결과물이 썩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낸 나를 더 몰아붙이지 않는 방식으로 타협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히려 나에게는 지금 엄마에게 그토록 부담스러운 케이크를 만드는 일이 창작의 부담으로부터 마음이 확실히 가벼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디자인이나 회화보다는 작업하는 영역이 케이크 시트 위로 한정되어 있어 부담이 덜하고, 꽃이라는 만들면 무조건 예쁜 치트키 아이템을 조합해서 정해진 시간 안에 완성하는 창작활동이다 보니 케이크 만들기는 디자인보다는 쉽고 부담이 덜한 작업이었다. 물론 앙금플라워케이크도 더 섬세하게 접근하면 심미성을 끌어올리는 게 어려운 창작활동이지만 훨씬 범위가 넓고 고도화된 창작을 하다가 마주하니까 상대적으로 가뿐하게 느껴진 부분이 있다. 그리고 디자인이나 회화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실력이 있긴 한 건지 조금이라도 느껴보기까지 1년, 2년 어쩌면 그 이상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케이크는 꽃 한 송이, 케이크 하나를 만들고 날 때마다 조금씩 실력이 느는 게 보인다. 일주일, 한 달의 기적 그런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때그때 완성한 결과물이 선명하게 오늘의 노력을 말해준다.
그래서 창작이 어렵고 무섭다면 이겨낼 방법은 그냥 마주하는 것밖에 없다. 다소 빡빡한 결론 같지만 케이크를 만드는 일이 엄마보다 부담스럽지 않았던 건 내가 어떻게든 창작활동 앞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버텼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늘지 않지’, ‘난 왜 창의성이 없지’, 내게 모진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도 내가 그 문제 앞에 서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란 사실을 케이크를 만들면서 조금씩 깨달았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 어려웠던 시간이 용기였음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케이크를 만들면서, 단순히 케이크를 만들어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예쁜 색을 고민하고, 배치를 고민하면서 나는 지금 내가 하지 못할 뻔했던 일에 도전하고 용기를 내고 있다고 믿으며 케이크를 만든다. 그러니 우리 엄마는 그저 흘러가게 두어도 되었을 50대 세월에 날마다 도전할 거리를 만들고, 지금은 느끼기 어렵겠지만 더 먼 미래에 자신을 단단하게 서 있게 할 용기를 조금씩 조금씩 얻고 있다.
최근에 나는 공방 수입에만 의존할 수 없어 다시 디자인 일을 시작했다. 케이크를 만드는 일이 즐겁고 엄마랑 같이 일할 수 있어 안정적이고 좋지만, 내가 하고 싶은 도전과 낼 수 있는 용기의 크기가 공방을 운영하는 것보다 넓은 영역에서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디자인 프로그램을 켜고 아무것도 없는 하얀 화면을 볼 때면 나는 디자인이 참 어렵다고 느낀다. ‘창의력이 정말 없는데 하고 싶은 거 맞아?’라는 혼잣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면 엄마와 함께 떡케이크를 만든 시간을 떠올린다. ‘늘고 있는데, 오래 걸릴 뿐이야.‘ ’평생 이런 고민이 지워지지 않는데도, 1년, 2년, 나는 오늘의 나를 용기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오늘도 우리는 무언가를 해내고 있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