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솔 Aug 25. 2024

엄마는 못 하게 하는 사람

작은 손과 더 작은 손의 줄다리기

나는 어디서든 한 ‘작은 손’하는 사람인데, 그 유전자는 엄마에게서 왔고, 우리 엄마는 나보다 '슈퍼 작은 손’이다. 공방을 운영하면서 우리는 여러 의견 차이를 겪었는데, 제일 자주 부딪친 문제가 양 조절이었다. 주문 제작을 받아 케이크나 디저트를 만드는 공방 특성상 재고를 만들지 않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대부분 주문이 들어오면 수량에 맞게 주문한다. 예를 들어 2구 답례 세트를 구성하고 상품을 홍보하고 나면 나는 ‘곧 팔린다!’는 마음으로 미래를 창창하게 그리며 답례 상자를 100개씩 주문해 두고 싶어 한다면, 엄마는 아직 주문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재고가 되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부터 한다. 답례 주문이 50개 들어와서 상자를 50개 사야 하는 상황이면, 나는 배송비가 아깝다고 150개씩 사 두자고 말하고, 엄마는 필요한 만큼만 사고 나중에 또 사라며 내 의견과 항상 반대쪽으로 팽팽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그럼 나는 풀이 죽어서 엄마가 원하는 만큼만 주문하거나 가끔은 울컥해서 “아냐 이건 팔린다니까!” 하며 마음대로 주문을 고집했다. 내 마음대로 많은 양을 덜컥 주문했다고 한들 나 역시 작은 손이었고, 대부분의 재료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쉽게 소진할 수 있었다. 물론 한 번은 엄마의 걱정이 맞았고, 상품이 너무 안 팔려서 포장 재료를 환불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공방 운영 경험이 6개월이 넘어가니까 이제는 팔린다는 믿음을 갖고 무엇이든 재료를 조금 넉넉히 시원하게 사둘 법도 한데, 엄마와 씨름은 계속되고 있다.


“엄마 이거 좀 많이 사 둘게.”

“적당히….”


재고를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은 나도 같으니 엄마의 작은 손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답답한 마음에 나는 “아냐, 더 더 더 더 해도 돼!”를 외친다. 어쩌면 엄마에게는 푸시해 줄 사람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합리화하며 몰래 포장 상자를 10장을 더 추가하고, 20장을 더 추가한다.


엄마와 잦은 의견 충돌을 겪으면서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든 해소해 보려고 엄마가 전에도 손이 이렇게 작았는지 떠올려 보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엄마는 과거에도 똑같았다. 엄마는 “돼.”보다 “안돼”는 게 더 많은 사람이었다. 적극적인 “해”보다 “글쎄”라는 대답을 더 많이 했다. 대체로 나는 말썽을 부리지 않는 얌전한 어린이라 혼날 일이 많지 않았지만, “친구가 자고 가도 돼.” “안돼.”, “이 만화 더 봐도 돼.” “안돼.”, “이거 필요할 것 같은데.” “글쎄.” 부모의 훈육을 받던 시절을 떠올리면 엄마는 통제하는 사람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그때 엄마가 했던 수많은 부정에는 여유롭지 않은 사정에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더 많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기억은 부정적인 경험을 더 인상 깊게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적기 위해 엄마가 건넸던 수많은 거절이 떠올려보고 나니, 마지막에는 엄마가 흔쾌히 된다고 했던 경험도 떠올랐는데, 어쩌면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나의 미래, 나의 교육에 관해서는 엄마가 안 된다고 한 적이 없다는 사실도 같이 생각났다. (엄마 미안..^^)그런데 그래도 엄마의 “안돼"를 곧이곧대로 따랐던 사건 중에 고등학교 때 남자친구를 사귀지 말라고 했던 사건은 두고두고 후회한다. 처음 남자애한테 고백받은 날 엄마한테 말했는데, 그때 엄마는 공부해야 하지 않겠냐며 사귀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가끔 내가 이토록 연애랑 멀어진 건 그때가 시작이지 않았을까, 그런 농담 가득 진담 조금 담은 우스갯소리를 해본다.


엄마랑 날마다 부딪치며 엄마를 더 자세히 관찰하게 되는 요즘은 엄마가 “안돼”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자꾸만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모습이 엄마의 성향이 아니라 환경 탓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가난하고 엄격한 할아버지 밑에서 장녀로 커서, 엄마가 만들지 않은 위기를 대신 감당해야 하기도 했고, 꿈을 꾸는 것보다 삶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상황에 자주 놓였다면, 작은 바람에도 쉽게 휘청이는 사람들을 보고 자라서 용기보다 두려움의 뿌리가 더 굵어졌다면. 그렇게 엄마의 인생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조금씩 듣고 조각 조각 맞추어가다보면 엄마는 여전히 작은 손에 소극적이지만 아주 조금씩 알을 깨고 있는 사람이 아닐지 생각한다. 위험을 감수해가며 하고 싶은 떡 공방을 차렸고,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최선을 다하는 게 힘들지만 열심히 하려고 하고, 새로운 주문을 받을 때마다 무섭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해내고 있으니까. 


엄마는 자신에게 건넸던, 또 우리 가족에게 건넸던 숱한 “못 해”, “안돼”라는 말을 조금씩 “돼”, “될지도 몰라.”, “해볼까”로 바꾸어가는 과정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속도와 빈도는 아주 느리고, 평생 큰 손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게 바로 엄마를 지금까지 지탱해 온 정체성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포장 재료를 딱 10개만, 식재료를 1kg만, 아주 조금만 더 사라고 말할 생각이다. 


“엄마 괜찮아! 조금만 더 해도 돼!”

이전 20화 나도 모르게 내는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