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분주했던 엄마의 손
“사장님, 너무 예뻐요!!”, “이 재능을 어쩌면 좋아?”, “이걸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고?” 엄마와 나는 이제 제법 우리가 만든 떡케이크나 화과자를 향한 칭찬을 온전히 뿌듯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 주문이 들어오면 예쁘게 잘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잘 만들어 놓고도 조금 더 신경써서 배치했어야 했는데, 꽃이 더 매끄러워야했는데, 색을 더 다채롭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부족한 부분을 곱씹느라 우리 자신을 온전히 칭찬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은 엄마도 나도 우리가 만든 케이크가 마음에 든다. 꾸준히 우리 케이크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많이 얻고 있다. 무엇보다 손을 벌벌 떨면서 울상이 되어 케이크를 만들던 엄마가 차분하게 자신만의 속도로 케이크를 완성해내는 모습이 보며 정말 많이 기뻐하고 있다. 늘 손재주가 좋았던 엄마가 드디어 자신의 재주를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엄마는 요식업이나 공방을 한번도 업으로 삼은 적은 없지만, 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엄마는 유치원에 출장을 다니는 영어 강사 일을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과 별개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다양한 교구를 직접 만들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엄마는 거실에 색색의 부직포를 펼쳐놓고, 영어 단어 카드를 코팅하고, 벨크로를 붙여가며 몇 시간씩 교구를 만들었다. 나는 그 옆에 앉아 부직포 조각을 마음대로 오리고, 뜨거운 글루건을 한 번 써 보고 싶다고 옆에 꼭 붙어 칭얼대기도 했다. 엄마는 몇 시간씩 한 자리에 앉아 언제나 차분한 표정으로 까다로운 모양을 슥슥 오려내고, 수평 수직을 잘 맞춰 붙이고, 색 배합도 알록달록하게 해서 꼭 파는 것 같은 교구를 만들어 냈다.
손재주가 좋은 엄마를 만난 덕분에 초등학교 1학년 때 생일파티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엄마는 아마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 해의 생일이니까 더욱 잘 준비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잔뜩 차려주고, 게임도 하고, 케이크에 초도 불고 즐거운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엄마만 할 수 있는 이벤트로 친구들에게 부직포로 작은 손가방을 만드는 일종의 만들기 체험 수업을 해주었다. 엄마는 교구를 만들 때 쓰는 부직포와 장식을 잔뜩 꺼내와서는 친구들을 둥글게 둘러 앉혀 놓고 각자 좋아하는 부직포 색을 골라보라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엄마가 준비해 둔 도안을 따라 꽃을 그리고 오리고, 끈을 달고, 장식을 붙이고, 색연필로 귀여운 표정을 그려 손가방을 만들었다. 저마다 색이 조금씩 다른 귀여운 꽃모양 가방에 과자나 문방구에서 파는 작은 소품을 넣어 웃으며 집에 돌아가던 친구들의 뒷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작은 손을 꼬물 거리면서 친구들과 가방을 만들던 시간은 언제 떠올려도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그렇게 주말마다 교구를 만들면서도 엄마는 가끔 취미로 십자수를 하는 사람이었다. 십년 가까이 엄마는 틈날 때마다 십자수를 했고, 160cm정도 되는 액자도 여러개 완성해 선물할 정도로 십자수에 푹 빠져 있었다. 그때는 그게 대단한 줄 몰랐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엄마는 엉덩이 힘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한 자리에서 한 자세로 오래 집중해야하는 일이라 피로도가 높은데도 엄마는 순수한 즐거움으로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엄마의 십자수실 보관 상자는 해마다 더 커졌고, 나는 옆에서 미묘하게 색이 다른 실이 번호 순서대로 실패에 묶여 가지런히 상자에 들어있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 했다.
과거를 돌아볼수록 우리가 다양한 색으로 꽃을 만들고 케이크를 디자인하는 일에 동시에 흥미를 느낀 건 우연이 아니란 확신이 든다. 엄마는 사실 언젠가는 손으로 먹고 사는 일을 할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엄마의 손재주를 물려받은 나도 언제가는 손으로 하는 일을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젊은 날의 엄마도 지금의 엄마도 여전히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다만, 시간이 흘러서 찾아 온 노화 현상 때문에 눈도 안 좋고, 체력도 안 좋아져서 엄마가 더 이 일을 욕심내고 싶어도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엄마를 주눅들게 할 뿐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돈을 버는 일이 되어버려서 가끔 생각했던 것보다 큰 부담을 견뎌내야하는 순간을 겪는다. 팔꿈치 보호대를 양쪽에 차고, 새벽 작업이 무섭고, 까다로운 주문은 못하겠다고 “ㅠㅠ” 이모티콘을 보내도, 어떻게든 일을 해내고, 예쁘게 완성된 케이크를 보며 환한 웃음을 짓는 엄마에게 떡케이크를 만들고, 공방을 운영하는 일은 제법 운명적인 일이 아니었을까. 언제나 분주했던 엄마의 손이 이제는 앙금과 떡을 만났고, 엄마의 금손은 오늘도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엄마의 손재주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동시에 예쁘고 맛있는 엄마의 작품으로 기쁨을 줄 수 있어 덩달아 마음이 환하게 밝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