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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간병일기 5

과거 속으로

과거 속으로


엄마에게 섬망증세가 나타난 건 입원 다음날부터였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부스럭대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엄마가 침상에 앉아 있었다.

“왜요? 물? 화장실?”

“일어나, 빨리 쌀 씻어서 밥 혀.”

“밥? 이 밤중에 무슨 밥?”

“저기 어른들 다 와 있는데 빨리 밥 해드리야지, 어서 일어나.”

아닌 밤중에 무슨 일인가. 말로만 듣던 섬망이 엄마에게 시작된 거였다.

하루 전 입원하며 관장을 했고 기본 검사와 함께 복부 엑스레이와 CT촬영을 마쳤다. 장염 증세가 있었고 CT 판독은 다음날 듣기로 했다. 노환일 뿐 몸에 큰 이상은 없어 보인다는 게 임시 소견이었고 다만 빈혈 수치가 심각할 정도로 낮아 긴급히 수혈을 받았다. 다음날 한 번의 수혈을 더 앞두고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갑작스럽게 당황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게 방심하고 있는 사이 엄마의 정신이 궤도를 조금씩 이탈하고 있었던 것일까?

“누구누구 왔는데요?”

“아버지도 오고, 할아버지도 오고, 고모도 오고, 작은 아버지들도 오고 다 왔잖니.”

엄마는 오히려 나무라는 투로 대답했다. 엄마가 말하는 그 들은 수십 년 전 혹은 불과 1년 전 모두 고인이 되신 분들이었다.

돌아가실 때가 되면 자꾸 망자들이 보인다더니 엄마가 정말 먼 길 떠나실 준비를 하는 걸까. 그 밤 내내 엄마는 내게 밥 할 것을 종용했고 새벽까지 나는 그런 엄마를 달래느라 휠체어에 태워 병원 복도를 서성였다.

다음날 담당의에게 CT판독 결과를 들었다. 여기저기 약간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엄마의 상황으로 보아 더 검사를 하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치료가 힘든 상황에 검사가 무슨 소용이겠냐는 거였다. 다시 한번 현재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퇴원하면서 엄마는 같은 병실 세분의 노인 환자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치 지금 밭에서 김이라도 매고 있는 상황인 듯 할머니들에게 말했다.

“일 좀 그만허셔, 이제 그만헤두 되겄시유, 며느리가 시키면 그냥 못 허겄다구 허셔.”

마치 자신은 젊고 노인들은 일에 지친 상노인으로 보이는 듯이 말했다. 실제로 화장실에도 휠체어를 타고 가 간신히 서있던 전날과 달리 위태롭긴 했지만 직접 걸어 다니며 인사를 나누는 거였다.


집에 와서도 섬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점점 심해졌다. 며느리는 물때 없이 바닷가에 조개를 캐러 다닌다고 믿었고 망자들은 자꾸 나타났다. 엄마 역시 과거로 돌아가 그때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설마 치매는 아니겠지 생각하면서도 두려운 게 사실이었다. 퇴원 후 3일은 밤마다 긴장감에 밤을 꼬박 새웠다. 섬망과 함께 호흡이 불안정했고 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입이 마르지 않도록 적신 거즈를 대줄 것, 손발이 차가워지는지 살필 것, 피부가 파래지는지 살필 것, 호흡을 살필 것, 혀가 말리는지 살필 것…. 그건 모두 임종 전 증상을 말하는 거였다.     

 어쩔 수 없이 그 순간이 오고야 마는 것인가, 불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엄마에게 최대한 내색하지 말아야 했다. 설사 그런 순간이 온다고 하더라도 당황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짐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엄마를 살피는 행위가 마치 엄마의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스스로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자주 섬망이 오고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감각에 혼동이 오긴 했지만 그 외의 시간에 정신은 여전히 또렷하고 분명했다. 그러다 오빠의 생일날이 왔다.

“엄마, 오늘 오빠 생일인데 그럼 오늘이 며칠이게요?”

엄마는 별로 망설이는 기색 없이 바로 대답했다.

“이월 열하루지”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몸의 기능은 다 소모되었지만 정신만큼은 여전한 게 믿어지지 않았다. 잠깐씩 에러를 일으키는 건 쇠약해졌기 때문이지 결코 죽음의 시그널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불안한 사흘 낮밤을 보내고 엄마는 다시 조금씩 컨디션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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