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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간병일기 6

우려하던 일이 생기고 말았다

  우려하던 일이 생기고 말았다.


  사실은 지난 토요일에도 그럴 뻔한 일이 있었다.

  토요일 밤은 일요일 생신을 위해 미리 모인 네 딸이 엄마와 한 방에서 잤다. 잠자면서도 수시로 엄마를 살피기 위해 네 딸이 침대를 향해 발을 뻗고 자는 형태였다. 그렇게 하면 몸을 굳이 일으키고 살피지 않아도 엄마의 상태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새벽 한 시쯤 둘째 언니의 놀란 목소리에 일시에 잠이 깼다. 엄마가 가장 바깥쪽 내 발치에 서 있는 것이다. 화장실에 가려고 했단다(화장실은 정 반대) 혼자서는 서있기는커녕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엄마가 딸 넷의 귀를 속이고 혼자 일어난 거다. 그 자체도 놀랍지만 넷이나 되는 딸들의 다리를 넘어 몇 걸음 옮기도록 hen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도둑 한 사람을 열 사람이 지키지 못한다는 말처럼 엄마는 도둑처럼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던 거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신경 써 엄마의 생리 현상을 살피고 있으며 특히 한 밤중 수시로 엄마의 수면 상태를 살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처럼 오늘 새벽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엄마의 침대에 바짝 붙어서 잔다. 혹시라도 침대를 내려올 경우 나를 밟게 하여 깨려는 방책이다. 수시로 깨어 엄마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일이지만 침대에 꼭 붙어서 자야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밤새도록 거의 잠을 설치고 난 새벽 6시, 바로 옆 주방에서 올케 언니가 일어나 아침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얼마 후 나는 깜박 잠들었던 모양이었다.

평범하지 않은 소리에 깜짝 놀라 침대 위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없었다. 벌떡 일어나 옆을 돌아보니 엄마가 쓰러져 있었다.

“똥 누려고 그려”

 놀란 나에게 엄마가 잔뜩 기 죽고 무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3월 9일 병원 관장 이후로 3주가 지나도록 변을 못 보고 있어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어제저녁에 변비약을 먹였다. 하룻밤 자고 나서 신호가 왔지만 자고 있는 나를 깨우지 않고 혼자 해결하기 위해 무리를 한 거였다. 잠귀 밝아 조금만 부스럭대도 금세 알아차리는데도 나는 깜박 속았다. 원래 사고라는 게 모두 방심한 사이에 일어나기 마련이긴 하다.

너무 놀라 일으켜 세우고 일단은 침대 옆 의자 변기에 앉혔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울고불고 화내고 짜증 내고 사정하고 한 번만 더 그러면 요양원에 보내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보통을 뛰어넘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자 울고불고하던 와중에도 성공했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엄마는 여전히 자신이 변을 봤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굵은 변 한 줄이 변기에 당당하게 놓여 있었다. 엄마를 다시 눕히고 나서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제발 나를 깨우라고 다시 사정하고 설득하고 협박했다. 잠시 뒤 다시 신호가 오고 먼저와는 다른 형태의 묽은 변이 변기에 가득했다. 그리고 엄마는 또 잠에 빠졌다.

나 혼자 울고불고 그렇게 놀라 소리치고 하는 동안 집안은 평온했다. 며느리는 귀 한쪽이 어두워 못 들은 모양이고 아들 역시 그 사간 집 밖에 나가 있었는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 끝난 다음에 내가 형제들 단톡 방에 올린 상황을 보고서야 뒤늦게 나타났다.

내가 우려하고 염려하는 일들이 바로 그건 상황이었다. 같이 살지만 늘 바쁜 자녀들은 대부분의 시간 집을 비운다. 누군가 24시간 보고 있지 않은 이상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혼자 돌아가셔도 모를 상황이 일어난다면 어쩔 것인가. 그런 경우 어쩔 수 없이 함께 살던 가족은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누구도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엄마를 보낼 수 없어 주중엔 내가, 주말엔 세 언니가 번갈아가며 돌보기로 한 거였다.

그렇게 결정하기까지 24시간 마음을 놓을 수 없을 만큼 위독한 상황이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적이기에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잠깐 방심한 생각을 했던 걸까. 어쩔 수 없는 자책과 후회가 맨 몸에 맞은 채찍처럼 아팠다.     

24시간 간병인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해서 요양원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만약 이 상태의 엄마를 요양원에 입소시켜 얼마 못 가 돌아가신다면 그건 더 참을 수 없을 거 같다.    

병중의 노인이고 누워만 있는 노인도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 이상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누누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게 정말 눈앞에서 벌어지니 뭐라 말할 수 없이 착잡하다. 이제 정말 자는 동안 묶어놓기라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오늘은 요양원 보낸다는 말로 겁을 줘서 다신 안 그런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안심할 수 없다. 진짜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잠시도 엄마 곁을 떠나선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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