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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간병일기 11

엄마를 팔았다


엄마를 팔았다

아픈 엄마를, 그것도 죽음을 앞두고 있던 엄마를 팔았다. 작가의 운명이란 그런 것이었다. 작가들에겐(나에겐) 어느 것이나 글의 소재가 되곤 한다. 작가는 끝없이 무언가를 쓰고 어떤 상황이든 그게 글이 되는지 저울질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게 다 작품이 되지는 않는다. 

작가가 쓰는 글이 다 작품이 된다면 과연 좋을까? 나는 쓰는 글마다 다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쓰는가?

만약 누군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렇지 않다고 고백하고 싶다. 브런치에선 힘을 빼고 작가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소설가이면서 브런치에 소설을 올리지 않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점점 사회성이 떨어지는 걸 자각하고 있다. 사람을 대면하는 게 점점 힘들고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래서 자꾸 피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관종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브런치를 하고 다른 SNS를 계속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정상 마주 앉아 못할 이야기, 해봤자 시간만 아까운 시시한 이야기, 별별 이야기들로 불특정 다수를 향해 일방적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반응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곳은 어차피 내 대나무 밭이니까.

그래서 뻔뻔하게 죽어가는 엄마까지 팔았다. 차마 입으로 내뱉을 수 없어서 자판을 두들겼다. 

그런데

이 연재는 어느 정도 공공성?을 아주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내 상황이 그랬다. 엄마를 간병하면서 내 치유를 하고 싶었다는 처음의 고백처럼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그 과정에 있어 어느 정도 정보를 공유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슨 의료진도 아닌데 과정 하나하나를 자세하게 기술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까 처음의 생각처럼 흘러가지도 않았고 정보 공유의 기능도 다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이 연재는 망했다는 것을 이렇게 비겁하게 구구절절이 변명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엄마의 안식을 위한 기도를 하는 중이다. 불교신자였던 엄마를 위해 49재를 절에서 모시기로 한 것처럼 기도 역시 불교식으로 하고 있다.  

꽤 여러 날 한 번에 약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기도로 불자가 아닌 내가 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기꺼이 시작했고 계획한 대로 할 것이다. 매일 그 기도를 올리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이 연재를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연재를 할수록 내가 업을 짓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간병은 끝났지만 이미 써놓았으나 아직 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글을 순차적으로 올리려고 했다. 순전히 내 욕심이고 작가로서의 습관 같은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 또한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나는 많이 아팠고 많이 섭섭했고 많이 상처받았다. 그걸 연재를 하면서 풀어보려고 했던 건 내 부질없는 욕심일 뿐이었다. 

그걸 깨달았으므로 이 연재를 닫는 것에 미련이 없다. 


이 연재에 관심 가져주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특히 위로의 댓글 달아주신 몇몇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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