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Part I
“언젠가는 나도 나에게 꼭 맞는 인연을 만날 수 있겠지?”
바보같은 나의 질문에 송삼은 그럴 수 있을거라고 다독여주었다.
“그는 왜 나의 인연이 아니었을까,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인연이 아니었으면 아예 몰랐으면 좋았을텐데…”
“너랑 그애는 거기까지가 인연이었던거야, 딱 거기까지만.”
우리는 인연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말처럼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걸까?
그런데 왜 나는 자꾸 여기가 끝이 아닐 것 같다는 미련을 떠는 걸까?
Part II
“언젠가 다시 그에게 연락이 올 것 같아?”선배가 물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절대 다시 내게 연락을 하지 않을 거예요, 아마…” 내가 대답했다.
그때 선배는 그런 말을 했다.
“언제나 ‘절대로’ 라는 건 없는 법이야. 그러니 미리부터 실망도, 그렇다고 기대도 하지마.”
언젠가 우리가 심하게 다투던 날 밤처럼
하늘에 별이 많은 것을 핑계 삼아 전화해줄 거라는
그런 기대를 해봐도 될까?
[로마에서 만난 달걀 이모]
로마에는 잊을 수 없는 민박집이 하나 있다.
떼르미니 민박(http://www.terminikim.com/)집이 바로 그곳이다.
화장실이 낡고 좁아서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민박집 주인의 친절함으로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2007년 3월,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로마로 여행을 갔을 때 이곳에서 50대 초중반의 조선족 정계란 여사를 만났다. 민박집을 운영하는 사장은 따로 있고, 그녀는 하루 24시간 내내 민박집에서 여행객과 함께 먹고 자면서 민박집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녀는 음식 솜씨가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그간 영국에서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구경 못하던 차,그녀가 해준 한국 음식들은 우리를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친절했지만 나를 특히 더 예뻐해주었고, 나 역시 그런 그녀를 이모라 부르며 잘 따랐다. 그곳에서 머무는 동안 나는 계란 이모에게 내 이름 대신 ‘달걀’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이모가 나를 ‘달걀이’라고 부르는 순간 나는 그녀에게로 가 닭이 되진 않았지만, 그때부터 우리는 매일밤 젤라토를 사먹으러 산책을 나가거나 밤새 수다를 떨면서 잠을 자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러던 어느날, 이모는 내게 트레비 분수의 영험한 기운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곳에서 소원을 빌면 신기하게도 반드시 이뤄진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믿고 트레비 분수에서 그를 생각하며 동전을 던졌다.
이모는 나중에 내가 짝사랑하고 있는 그와 함께 로마로 여행을 오게 된다면 제일 크고 좋은 방을 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어느덧 예정된 시간이 흘러 로마를 떠나야 할 때가 됐다.
나는 이모에게 다음에 꼭 다시 로마에 들르겠다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아쉬운 로마에서의 여행을 끝내고 파리에서 일주일을 더 보낸 뒤, 우리는 영국으로 무사귀환 했다.
영국에서는 ‘트레비 분수의 기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그가 내게 고백을 한 것이다(이 모든 운명의 시작은 신비로운 기운이 가득한 로마에서 시작 된 거라고 아직도 나는 믿고 있다). 로맨틱한 사건을 계기로 그와 나는 연인이 되었다. 그로부터 100일 후, 그는 홀로 유럽여행을 떠났다. 로마에 도착했다는 그의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그에게 ‘떼르미니 민박’에서 묵을 것을 권했다. 그는 그곳에서 이모의 환대를 받으며 편하게 머물다 왔다.
그때 그를 만났던 이모는 내게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가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스타일이라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을 것 같다고.
그날로부터 반년이 흘렀다.
홀로 야근을 하다 갑자기 문득 이모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다.
“이모…그녀석이랑은 헤어졌어요. 같이는 못갈 것 같아….
혼자서라도 여행갈 테니까 그때까지 건강히 있어요.”
“무슨 일이야, 갑자기? 그애 좋은 사람이던데, 왜 헤어졌어, 올해는 같이 오겠지 했는데…”
“그렇게 됐어, 이모. 근데 이모…그는 좋은 사람이고, 나는 좋은 사람 아니야? 그래서 헤어졌나….우리?”
“무슨 그런 말이 다 있어, 우리 달걀이도 좋은 사람이지. 얼마나 예쁜데. 둘이 잘 안 맞았어?”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왜 우리가 헤어졌는지 나조차도 그 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와 나는 서로에게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던 걸까? 정말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직감]
직감이란 지구상에 오롯이 여자만이 부여 받은 능력이며 특권이다.
무서울 정도로 정확한 여자들의 직감. 그날 아침, 그는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주었다.
보통 때라면 그는 나와 함께 730번 버스를 기다려줬을 거다.
그런데 그날은 맞은편에서 그의 누나가 그녀의 남자친구와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누나가 있는 곳으로 길을 건너가면서 밝게 웃으며 내게 손인사를 했다.
나도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손을 흔들던 그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도 길을 건너고 있었던 그가 사라져버린거다. 5년 같은 5분이 흘렀고, 그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그였다.
“밧데리가 없어서 누나 전화 빌려서 전화하는 거야, 길게 통화 못해. 잘 들어가.”
“앞으로 그렇게 갑자기 없어지지마. 네가 사라진 줄 알고 놀랐단 말이야.”
수화기 너머의 그는 ‘바보, 조금 있다가 전화할께’ 라고 말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 후로 거짓말처럼 나는 그를 볼 수 없었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끝도 없는 일들이 수 천 가지가 넘는다.
[피곤하고 곤란한 여자친구]
나는 내게 팔짱을 요구 할 때의 그의 눈짓과 몸짓을 사랑한다.
함께 길을 걸을 때나 버스에 앉을 때 그는 언제나 내게 팔짱을 껴달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못 이기는 척 그에 팔에 팔짱을 끼곤 했는데 실은 나도 그에게 팔짱을 끼는 게 무척이나 좋았다.
회사 앞으로 오기로 한 그가 여느 때처럼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던 그날 세종로 네거리.
종로로 가기 위해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눈짓으로 내게 팔짱을 요구했다.
일민 미술관 건물에 부착된 미디어 보드를 바라보고 있던 나는 약속 시간에 늘 5분씩 늦는 남자친구가 뭐가 예쁘다고 팔짱을 끼냐며 툴툴댔다. 그때 그는 "있을 때 잘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로 애교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까다롭고 피곤한 애인이었다.
오죽하면 눈먼곰은 내게 ‘곤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을까. ‘피곤하고 곤란한 여자’라는 뜻이다.
그냥 한 두 번쯤 못이기는 척 먼저 팔짱을 끼며 그의 팔에 안길 수도 있었는데 나는 늘 그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난 어쩌면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사랑이 언제까지 변함없을까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 끊임없이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먼저 전화해주기를 바랐고, 그가 먼저 사랑한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소중한 가르침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가슴 아픈 이별을 선물하신 건 아닐까 하는.
처음 그가 내게 사랑을 고백했을 때 나는 그가 하나님의 선물이요, 돌아가신 아빠가 보내 준 운명의 상대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사랑이란 서로에 대한 신뢰가 기본으로 되어야 하고, 기다리면서 바랄 게 아니라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은 시작하는 것보다 지키는게 더 중요하단 것도 알았고.
오늘도 나는 기도를 한다.
소중한 누군가 다시 나를 찾아왔을때 그를 잘 지킬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그의 사랑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내가 나의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는 동안 말 없이 나를 지켜봐 주는 거야. 힘들 때도 있을 테고, 기대고 싶거나 쉬고 싶을 때도 있을 거야. 그때 말없이 옆에서 가만히 미소 지어주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과 사랑하고 싶어”
언젠가 그가 내게 들려준 그의 사랑관이다.
그때 나는 그를 이기적이라고 몰아붙였다.
그가 그의 길을 향해 쉼 없이 달리는 동안, 홀로 남겨진 상대방 생각은 해 본적 있느냐고.
아마 그런 여자는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설사 있다 해도 그녀는 무척 힘들거라 말하자 그가 물어왔다.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나는 그 사람만 바라 볼 껀데?”
“그래도 나라면 싫을 것 같아.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 힘들 것 같아.”
그때 나는 왜 그렇게밖에 대답하지 못했을까…
그가 그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 그가 온전히 나만 바라봐준다면 10년이 걸려도, 아니 평생이 걸린다 해도 기다릴거면서 왜 속마음과 다른 말로 그를 속상하게 만들었을까? 여자들은 어리석다. 말하지 않아도 그가 내 마음을 전부 알거라고착각한다. 장담컨대 이세상 어떤 누구도 상대가 말하지 않는 한,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도리는 없다. 남자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단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신이 아닌 사람이라서 말하지 않으면 복잡한 뇌구조를 가진 여자들의 마음을 알 수 없을 뿐이다.
하물며 보통 여자들의 백만배는 넘는 복잡한 상념들로 가득한 나 같은 여자의 마음을 공대생인 그가 알아내기란 더욱 더 힘들었을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늦다.
[헤어짐의 이유]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그와 이별을 결심하게 된 확고한 이유들이 모두 부질없다고 느껴진다.
나 혼자 생각하고 잘못 판단해서 우리가 이별을 하게 된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기억해내야만 했다. 내가 왜, 그토록 사랑해마지않던 그를 떠나 보내야 했는지를.
하나, 그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나는 언제까지 베일에 가려진 존재여야 하는가?
He says “내 미니홈피에 들어오는 친구들 정해져 있고, 그 친구들은 이미 다 네가 내 여자친구라는 거 알고 있어. 나는 그냥 유별나게 티 내지 않았던 것뿐, 그렇다고 숨긴 건 아니야. 나랑 가까운 지인들은 모두 너를 알고 있었어.”
Monologue 언젠가 한 번 그로부터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나는 왜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걸까..
둘, 너무 바쁜 그대
He says “나라고 온종일 내내 도서관에 있는 게 좋았겠어? 나도 너 보고싶을 때 볼 수 없고,
집까지 바래다 주지 못했던 것들 많이 미안했어.”
Monologue 내 방에 새 침대가 배달되었을 때 그에게 조립을 부탁했다. 그러나 과제가 많아 도와줄 수 없다고 그는 거절했고 나는 과제를 해야하는 그의 일정은 이해하나 내심 서운했다. 그런데 그가 과제를 일찍 끝내고 와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헤매가며 침대 조립을 해주었다. 그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단지, 소소한 일상을 함께하고 싶었을 뿐인데 당시에 그는 너무 바빠 데이트는 커녕 일주일에 한번 얼굴보기도 힘들었다.
셋, 배려라는 이름의 무심함
he says “친구들과 스키장 갔다가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운전하는 친구에게 방해 될까봐 나는 네게 전화하는 대신 문자를 넣었었지. 너는 내가 친구를 지나치게 배려하는 것 같다고 화를 내면서 네기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지만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그때도 나는 너를 처음처럼 사랑하고 있었어. 내가 사랑한다고 했지만 너는 안 믿었지. 그게 문제야.”
Monologue 그는 내가 화를 낼 때마다 내게 화 풀리면 연락하라는 배려를 하곤 했다.
나는 그가 화를 풀어줬으면 하고 바랐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헤어지자고 말하던 날, 그는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이미 닫혀버린 그때 그 마음으로는 차마 사랑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넷. 미래
he says “부담없이 조금만 더 편하게 만나보자는 말은 네가 우리 관계에 대해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힘듦 덜어주고자 했던 말이야. 아직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으니까 주위 사람들 이야기 신경쓰지 말고 조금 더 만나보자는 뜻이었어. 하지만 넌 그 말을 오해해서 들었지.”
Monologue 바보같은 녀석. 그때, 그렇게 부연설명도 해주지 그랬어. 밑도 끝도 없이 부담 없이 편하게 만나자는 말에 어느 나같은 여자가, 그래 그럽시다. 하겠어?
그는 나의 미래였다.
하지만 그의 미래에 내가 놓여 있는 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왠지 그는 나와 같은 미래를 향해 있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럴 바에야 헤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분명 조금 더 깊게 생각했어야 했다. 자존심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서로 충분하게 대화를 했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다. 머리를 짜내서 생각해낸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건 이러한 것들에 비해 헤어지지 않아야 하는 이유의 가치가 조금 더 크기 때문이라. 사랑하면서 그를 보낸 건 아무리 변명거리를 찾고 핑계거리를 찾아봐도 내 잘못이다.
[헤어진 후 한달]
헤어진 후 한달 만에 그를 만났다.
그는 예의 그 수줍은 미소로 내게 다가왔고 나는 웃으며 그에게 안겼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닌 것.
‘헤어질 때 네가 내게 했던 말 곰곰히 생각해 봤어.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나는 졸업도 해야 하고 또 대학원에 진학하게 될지도 모르는데…넌 결혼이란 걸 해야 하는 나이가 됐고…네 말처럼 우리는 갈 길이 다른 것 같아.”
나는 그에게 울며 물었다.
나는 한 달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며 힘들었는데 그는 어쩌면 그렇게도 쉽게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는지를.
한 달 후면, 그는 다시 하루하루 빡빡한 타임테이블에 맞춰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 졸업을 하기까지 2년 동안 딴 생각 할 틈도 없을 거라며 다른 여자를 만나는 일도 아마 2년 후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그는 정말로 2년후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계획적인 노무시키....)
나를 만나러 와준 그를 보내며 안녕이라는 인사와 함께 입을 맞추었다. 우리는 둘다 멋적어 웃었다. 헤어졌는데. 습관처럼 입을 맞추다니.
이제 정말 우리가 연인으로 보는 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전해들은 순간, 나는 처음보다 더 아니 꼭 그만큼 가슴이 먹먹하고 아팠다.
우리 연애가 진짜로,
끝. 났. 다.
[동상이몽]
그는 사랑해, 라고 말했고 나는 고마워, 라고 대답했다.
나는 사랑해, 라고 말했고 그는 사랑했었어, 라고 대답했다.
한때 우리는 동시에 사랑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그런 적도 있었는데 이제 그런 일은 우리의 추억 속에서나 가능해졌다.
이제부터 온전히 나를 위해 살면 된다.
언젠가 우연히 그를 마주치게 되는 날,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그의 앞에 내 모습이 초라하지 않도록 나를 위해 살자.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두 여인]
동거인의 의무로서라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그녀를 보살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해본다.
‘애정의 결정체’ 라 칭하던 언니의 Bar가 오늘로 영원히 사라진다. 그녀와 함께 가게를 정리하느라 오랜만에 동이 틀 때까지 깨어있었다. 갑자기 이 새벽,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내가 전화를 하면 그는 분명 예의 그 자상한 마음씀씀이로 나를 위로해 줄 텐데. 언니 많이 위로해주라는 당부도 잊지 않을 테고.
하지만 차마 전화를 걸 수가 없다.
그와 함께 걷던 허버트 애버뉴가 떠오른다.
그와의 모든 추억이 응축되어 있는 곳.
어쩌면 그와 나의 꿈같던 사랑은 이미 영국에서 끝나버렸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은 끝나버린 사랑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운 연인들의 의미 없는 시간일 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다.
사람은 한 번 만난 사람과는 영원히 헤어질 수 없다.
기억이란 것이 있는 까닭에서다.
5년 혹은 10년이 훨씬 더 지난 후에라도 그가 문득 새벽녘에 전화를 걸어온다면 나는 그때도 분명 단번에 그의 목소리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도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따뜻한 그의 눈빛]
만나고 싶다는 그의 제안을 뿌리치기에 아직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은 그대로였다.
아직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그렇다. 결국 그를 만났지만 나아질 것은 없었다.
추억을 회상하는 것에서 그치면 좋으련만 그때 그의 행동을 원망하고 탓하기도 했다.
그저 보고싶어서 만났는데, 그의 앞에서 울고 있는 나때문에 그는 또다시 안절부절하고만 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또 못내 안타까워 나는 또 애써 웃어 보인다.
그의 따스한 눈빛과 아직도 여전히 따뜻한 손길에 자꾸만 그를 붙잡고 싶어진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그도 참고 있으니 내 쪽에서도 참아내야만 한다.
같은 사람과 헤어짐은 단 한 번이면 족하다.
한번으로 충분히 괴롭다.
“나는 아직 겨울인데, 너는 봄 같다…”
명동의 어느 호프집에서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대꾸 할 수 없었다.
그날 새벽, 다시 걸려온 그의 전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내 속을 하나도 거르지 않고 말끔히 다 꺼내 보여주었다. 아직 내게도 봄은 오지 않았다고, 나도 너처럼 아직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하지만....그는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개강 첫날]
거의 모든 대학이 개강을 하는 날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학기 잘 시작하라는 메시지라도 한 통 넣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Send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우리의 텔레파시가 아직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아마도 내 응원을 받았으리라.
봄같이 풋풋한 새내기들이 개강일에 맞춰 한껏 멋을 부리고 학교에 왔을텐데.
나이 어린 새내기와 복학생 선배의 로맨스도 바야흐로 시작이 될 테고. 봄은 그런 계절이니까.
학업과 토익 성적 올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반듯한 복학생 다람쥐군(나의 그녀석 별명이다) 또래보다 진중해 보이는 어여쁜 새내기의 로맨스를 상상해본다.
어제는 일을 마치고 민을 만났다.
민을 통해 다시 듣게 된 우리의 이야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혼자 듣기엔 아까울 정도였다.
코치 안에서 그와 내가 사랑스럽게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 나누던 모습,
파리에 있는 동안 스퀘어에서 그와 민이 나눈 대화들,
그리고 우리가 잊고 있던 부분과 미처 내가 알지 못한 부분에 대해 민을 통해 듣는 순간 나는 다시 또 그가 그리웠다.
[화이트데이 다음날]
베프 조씨와 <온에어>라는 뮤지컬을 봤다.
깜짝 게스트로 이금희 아나운서가 등장했는데, 그녀의 오랜 꿈은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아나운서 대신 꼭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녀는 오래 갈망한 꿈을 담아 무대에서 솔로곡을 불렀다.
마흔이 넘었거나 마흔즈음이 되었을 그녀지만 무대 위에 선 그녀는 한창 첫사랑 열병을 앓고 있는 스물서너살 학생처럼 여전히 순수하고 앳되어 보였다.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그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열창한 곡은 서영은의 ‘내안의 그대였다’.
이 노래는 그야말로 가사가 압권이다.
‘어떡하죠? 첫사랑은 슬프다는데 나 지금 누구라도 사랑하고 올까요?’
그와 헤어진 후 내가 딱 그 심정이었다.
마음에도 없는 누구라도 붙잡고 사랑을 연습한 뒤 그에게 돌아가 두번째 사랑을 제대로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불러주고 싶은 노래가 있어서 전화했어.
(최대한 해맑고 유치하게 부르는 것이 포인트다)최**~최**~대머리 깎아라.”
그는 얕게 웃더니 요즘도 소개팅은 하고 있는지,
화이트데이에 사탕은 받았는지,
머리는 얼마나 짧게 잘랐는지,
영어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는지,
회사는 잘 다니는지를 물어왔다.
“보고싶었어, 어제.” 내가 말했다.
“전화하지 그랬어..”
“전화했으면 우리 볼 수 있었을까?”
아마도, 라고 그는 대답했다.
‘아마도’ 라는 확률에 헤어진 연인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 용기 있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아마도라니. 나쁜놈.
딱히 더 할말이 없었던 나는 잘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고 그는 내게 좋은 꿈 꾸고 잘 자라고 했다.
정말 오랜만에 그에게 들어본 말이다. ‘잘 자’라는 말
그날 밤 그는 또 꿈속으로 나를 찾아왔다.
어느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인 그와 나. 꿈속에서 그는 내게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며 늘 그랬던 것처럼 등뒤에서 포근히 나를 감싸 안아주었다아주 오랫동안, 아주 따뜻하고 설레이게 말이다.
꿈은 꿈일 뿐이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행복했다.
특별히 약속을 정하지 않아도 주말이면 당연히 만나던 사람. 이제 그 사람과의 만남이 이제는 무척이나 힘들어졌다. 특별한 일 없이는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새벽, 잠실새내]
“힘들 때 전화하면 위로해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온 거야”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그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그래서 집 앞으로 오겠다는 그를 말리지 않았다.
새벽 2시 33분. 키노극장 길 건너 편의점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는 그를 보았다.
가슴이 떨렸다.
이 새벽에 갈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아 우리는 가장 가까운 횟집에서 가볍게 청하 한 병을 마셨다. 짧은 머리가 더 잘 어울리네, 라는 그의 말에 일단 마음을 놓는다.
그는 나와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사실은 내 쪽에서 더 고마웠다.
찾아와주어서.
크리스마스 때 주려고 했던 선물을 오늘이라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전하지 못한 선물만큼 무겁게 느껴지는 게 없는 법인데 말이다.
우리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앨범을 보고 그는 어떤 생각을 할까? 미처 다 채우지 못한 앨범 뒷부분도 함께 찍은 사진으로 채워나간다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