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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May 29. 2020

김밥이 뭐라고

2019년 설날의 기록


김밥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저릿하다.


당시 우리는 해마다 *밤벌농장이라는 곳으로 봄소풍을 갔다.

아이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데다, 작은 동산에서 보물찾기를 할 수 있어서였는지 국민학교를 졸업할때까지 봄소풍 장소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날 아침, 엄마는 김밥대신 2만원을 쥐어줬다.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한가로이 밥에 소금치고, 참기름 두르고, 곱게 지단을 부쳐서, 햄, 단무지, 오양맛살을 넣고 김밥을 돌돌 말아 쌀 시간이 없었다.

하필이면 소풍가는 날이 그야말로 '장날'이었기 때문이다.

앞밭에 있는 배추며, 무, 시금치, 깻잎등을 따서 장에 내다 팔아야 하는데 조금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을 거다. 늦게가면 자리도 뺏기고, 아침손님도 뺏기니까.

이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날 엄마가 김밥대신 돈을 준 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내 나이 고작 아홉살이었다.

나는 그저 엄마가 야속했다.

장날을 소풍날로 정한 학교도 싫었다.


엄마는 임대료 잡아먹는 번듯한 가게 대신 길가에 물건을 내놓고 파는게 낫다고 주장하는 야채장사였다.

길거리 야채장수가 우리 엄마라고 국민학교때부터

내가 놀림을 받건말건, 사춘기 여학생이 챙피하건 말건,

임대료 안나가는 게 최우선인 '실용주의자’


평소 내 도시락 반찬은 거의 김치다. 도시락뚜껑이 변변치 않아서였는지 자주 가방에 김치국물이 쏟아져서 점심시간마다 책이며 노트에 묻은 김치국물을 닦아내느라 바빴다. 다른 친구들처럼 '오늘 점심은 무슨 반찬일까' 하는 기대가 1도 없었다. 나도, 친구들에게 환영받는 소세지나, 햄, 동그랑땡, 미니돈까스 같은 반찬을 싸가고 싶었다.  아니 아무래도 좋으니까 제발 오늘은 도시락에 국물없는 마른반찬이 들어있었음, 했다.


그래도 김밥은 언제나 우리 김밥이 색깔도 제일 예쁘고 맛있었다. 그래서 소풍이나 운동회날은 은근히 엄마 김밥 자랑을 하곤 했는데, 그날 엄마가, 김밥대신 돈을 준거다.

막내딸의 마음까지 헤아리기에 엄마의 삶은 이미 너무 폭폭했고, 고됐을 거다. 지금은 안다. 딸 다섯을 위해 매일아침 5개 도시락을 싸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하고 대단한 일인지. 하지만 그땐 그것까지 헤아리고 싶지 않았다


당시 2만원이면 꽤 큰돈이었다.

근데, 나는, 돈 따위는 필요없었다. “누가 돈 달랬나, 김밥 싸달랬지!!!” 나는,  엄마의 가슴을 찢어놓겠다는 일념으로 밭고랑 사이로 힘껏 '2만원'을 집어던졌다. 엄마가 있는 밭에까지 가 닿으라고 똘똘 뭉치고 구겨서 온갖 심술과 투정을 다 담아서 냅따 던져버렸다. 

보란듯이 닭똥같은 눈물도 흘려가면서.


이쯤되면, 엄마 가슴에 못을 좀 박았겠지.

못된 맘을 가지고, 씩씩거리며 학교엘 갔다.

평소라면, 빗자루를 들고 쫒아와 욕을하며 때렸을텐데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왠지 모를 찜찜한 마음으로 소풍 대열에 합류했다.


엄마가 봄소풍을 망친건지, 내 못된 성미가 망친건지는 모르겠지만 심란한 마음으로 짝꿍과 손잡고 한참을 걸어가는데, 저 멀리서 흙이 잔뜩묻은 양말만 신고 자전거페달을 밟으면서 달려오는 엄마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과 창피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아씨....신발이나 신고오지'


엄마는 기어코, 내가 집어던진 2만원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늦지 않으려고, 흙이 잔뜩 묻은 양말로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고 왔을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좀 풀렸다.


이제 김밥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날 소풍은 꽤 즐거웠다.

친구들 김밥을 나눠먹었고, 엄마가 준 돈으로는 그 친구들에게 사이다를 사줬고, 장난감도 몇개 사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에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엄마 나이 45세. 내 나이 9살이었다.

지금 엄마 나이 75세. 내 나이 39세.


엄마는 더이상 자전거 페달을 밟을 수 없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생긴 마비 증상 때문에 온전히 걷기도 힘들다. 그와 함께 세상에서 제일 맛있던 엄마의 총각무도 사라졌다. 적당히 달콤하면서도 깊은맛이 우러나는 우리 엄마 전매특허 식혜도 맛볼수 없다. 새해가 되도 이제 엄마는 더이상 떡국 끓일 생각을 안한다.간신히 끼니는 때우지만, 요리같은 건 할 수 없게 됐다.


보통 20줄 정도 김밥을 싸는 3번+4번 언니

올해 설날엔 떡국대신 김밥을 먹었다. (올해라 함은 2019년 기준이다)

넷째언니 뚱아가 떡국대신 김밥을 말아줬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입짧은햇님 방송을 보다 참치김밥이 먹고싶다고 했더니, 아침나절에 부지런을 떤 모양이다. 곱게 지단 부치고, 당근 볶아서 손질한 재료들이 들어간 김밥이 식탁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저탄고지 다이어트 중인 큰언니를 위해서는 밥알 몇톨에 야채와 치즈를 듬뿍넣어서 저탄고지용 김밥도 싸놓고. 시댁간 둘째 미저리 언니와, 몇해전 돌아가신 시어머니 화장터에 다니러간 셋째 미도리 언니를 위한 김밥도 남겨뒀다.


설날아침 괜히 눈물이 난다.

음식은 단지 음식이 아니다. 가족이고 추억이고 사랑이고 아픔이다. 유튜브세대 먹방을 보는 아이들도 그걸 알랑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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