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창조가 된다는 것 &모계 유전
부활절인데 예수님은 뒷전에 두고 신화콘서트에 갔다.
저 문장은, 내가 지난해 유일하게 쓴 한줄의 일기였다.
<39세에 신화창조가 된다는 것> 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소재를 담아두었는데, 어느덧 마흔하고도 한살을 더 먹고나니 더이상 신화창조라는 주제로 진정성있는 글을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왜냐면, 이제 더이상 에릭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이제 에릭에 대해서는 한 줄도 제대로 쓸수가 없는 거다.
매주 금요일 양평에 내려간다. 임영웅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유튜브 영상을 찾아서 틀어주는 정도의 땀한방울 안나는 효도봉사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요즘 새벽까지 내맥북으로 임영웅 덕질을 시작했다.
주중에도 자주 전화해서 임영웅 이야기를 들려준다. 홍진영이 임영웅에게 관심있는게 틀림없어서 기분나쁘다거나, 오늘은 사랑의 리퀘스트에 어떤 사연이 나왔는데 그 사연 끝에 반갑게도 임영웅이가 나와서 노래를 또 멋들어지게 불렀다거나, 오늘은 임영웅이보다 영탁이 노래가 더 가슴을 울렸다면서. 시시콜콜한 그의 이야기와 그를 둘러싼 미쓰터 트로트 분들의 일상까지 전해준다. 어젯밤엔 급기야 내게 예언을 하나 하겠다고 했다. "두고봐라. 임영웅이가 나훈아보다 더 크게 될 꺼야. 엄마 말이 맞나 틀리나 봐봐"
엄마 말이 틀릴지 맞을진 나는 잘 모르겠지만, 듣는 나훈아는 혹은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대 나훈아 님은 괜히 서운하겠단 생각이 든다;
우리 최여사님 나이 올해 77세.
유튜브 클릭은 커녕, 미스터 트롯 투표 문자도 보내지 못하지만 임영웅에 대한 열정만은 한때 내가 지디때문에 6개월 밤낮을 설쳤던 것 못지않다. 참 대단한 체력이다. 그러면서 이제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큰언니와 나, 그리고 큰언니와 나의 닮지 않았으면 했던 면만 쏙 빼닮은 조카 윤콩이의,
근원을 알 수 없는 덕후기질. 금사빠 성향. (지가 원하는 분야에만 생기는) 열정과 몰입의 근원에 대해서.
아! 이것은 모두, 강력한 모계유전자의 힘이었구나.
이런것들을 무려준 우리 엄마한테, 감사하다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주도, 하루 종일 임영웅 보여주려고 가방에 맥북을 넣었다. 질릴때까지 틀어드려야지, 생각하면서.
아마 엄마도 나와 같다면 질릴만큼 보고 또 봐야 그 늪에서 헤어나올 수 있을거다.
일단 나오려면 들어가야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P. S. 한때 나를 열광케하고, 그로인해 그 순간들, 감성들을 풍부하게 해준 그대들도 부디 잘 지내길.
이밤 그대들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지는군요.
나에게 리더십을 가르쳐준 남자 에릭.
아저씨같은 섹시함을 알려준 주지훈.
도리안그레이를 소개해준 남자 김준수.
무도보다 미소에 빠져든 지디 그리고
진짜 결혼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음악대장 하현우
모두 굿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