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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Oct 12. 2020

매일아침 신변을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10개월 만에 페북엘 들렀다. 기분이 묘했다.

이미 고인이 된 한 대표님과 맺은 인연이 십년이 되었다는 알람을 보면서 잠시 그를 추억했다. 

나의 2011년을 빛나게 해준 한 대표님. 아직도 신치는 그가 떠난 후 해마다 그를 위해 등을 올린다고 했다. 대단한 녀석이다.


한대표님을 처음 만난 건 2011년 여름, 허름한 교대의 2층 사무실이었다. 아무것도 갖춰진 게 없었고 달랑 긴 책상 하나에 의자 서너 개. 청년창업가 다운 이미지대로 백팩을 메고 똘똘이 스머프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순대국을 사주면서, 꼭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고 순수하지만 당당해서 조금은 거만하게도 보였던 분. 


그, 사람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스타트업 생활을 시작했다. 새벽 서너시까지 일하는 것은 기본이요, 끝나고 새벽다섯시까지 술을 마시고서도 다음날 10시면 어김없이 출근해서, 돈이 없다고 읍소하면서 블로거, 기자들을 찾아가 우리 앱을 알리는 일에 매달렸다. 우리 모두는 진심이었고, 사람들은 그걸 알아봤는지, 지금도 갚아야 할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살아계셨다면 좋았을텐데. 

술한잔하자던 예의 그 전화가 마지막일줄 몰랐다. 알았다면, 모든 핑계와 열일을 제치고 그를 만나러 갔을거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바로 일주일 전, 금요일 그의 전화를 받았다. 


쑥쑥 팀장님, 금요일인데 술한잔해요. 


스타트업을 철수하고, 일을 하지 않았을땐 술마시자는 그의 제안에 매번 응했지만 그땐 다시 딜로이트에 입사해서 일을 하고 있었던 터라, 나름 안정적이고 별탈없을거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굳이 내가 시간을 내서 위로 하지 않아도 평온한 상태고, 괜히 심심한 불금 술생각이 났겠지 싶어서 거절했는데 그게 우리의 마지막 통화가 될줄은 정말로 몰랐다.

알았다면, 

무조건 그를 만나러 갔을거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음 술약속을 잡았으리라.


추석연휴에 지인 두분이 유명을 달리했다. 

장례식장에 다녀온 언니는 유언 비슷한 걸 했다. 

주변을 정리하지 않고 급작스레 떠나는 이별이 남기고간 후유증을 너무도 많이 겪은 탓이리라. 

우리, 아빠만큼은 달랐지만.


아빠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몰핀없이는 통증을 참을 수가 없어서 매시간 약을 복용하고 고통때문에 제대로 잠을 잘수 없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방구들장을 교체해주는가 하면 집 돌담을 다시 쌓도록 사람을 불러 지시했다. 

작은아빠에게는 재산 일부를 정리해줄것을 부탁했다. 아빠가 쓴 병원비와 농가주택을 지을 당시 있었던 채무를 모두 변제하기 위함이었다. 남은 전재산은 모두 큰언니에게 상속했다. 

막내인 나는 아빠 결정에 불만이 1도 없다. 우리 아빠의 깊은 뜻이 있었으리라. 

그때 내나이 고작 스물, 스물하나둘.


아빠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자식들에게 빚이나 짐을 남기는 대신 어떻게 살고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남기고서. 아빠 장례식장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아까운 사람 죽었다는 것. 

가장 슬펐던 순간은, 아빠에게 받은 것 아직 다 갚지도 못했다는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을 볼때였다.

참 잘다가셨다, 우리 아부지.


아빠 없이 흐른 20년이란 시간 혹은 세월. 그 사이 스무살 철부지 막내는 (아직 책임질 가족은 없지만) 어느새 불혹의 나이가 넘었다. 불혹이 넘은 막내딸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아빠처럼, 살다, 죽는 것. 누구에게도 폐끼치지 않고. 



갑작스런 지인의 죽음과, 그리운 이의 죽음들을 떠올리다, 든 생각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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