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면허였던 나는 속초에서 지내는 동안 운전 실력이 일취월장하였다. 서울에서 지낼 때에는 교통 체증 때문에 차 보다 대중교통을 선호했는데, 지방에 살다 보니 시간 맞춰 버스를 타는 일도, 기다리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고자 하는 구간에 버스 정류장이 없는 경우도 많아 운전이 필수였다.
주말에는 관광객들로 가득한 속초를 자동차로 누비며 복잡한 곳에서의 운전도 두렵지 않게 되었고,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부지런히 오가며 고속도로 운전에 익숙해졌다. 내비게이션 없이 속초의 이곳저곳을 누비는 나를 보며놀러 온 친구들은 신기해하곤 했다.
집순이 체질이 아닌 내가 만약 운전을 못 했다면 정말 답답했을 것 같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을 때, 하루에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해야 했을 때에도 차가 있으면 원하는 곳에 가고,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었다.각종 검진 일정으로 병원에 갈 때도 차를 이용하면 몸이 덜 고되게 느껴졌다. 장거리 운전에따른 체력 소모는 어쩔 수 없었지만,운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래도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자주 듣는 노래를 틀어놓고 흥얼거리며 운전하는 것은 생각 정리와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답답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차를 몰고 나가 고성의 화진포까지 바닷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다녀오면 마음이 양껏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물론 오른쪽에는 동해 바다가, 왼쪽에는 설악산이 품어주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평일 낮 한산한 국도를 달리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또 하나의 기쁨은 '요리'이다.
사실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라면 물도 잘 못 맞추는 요린이(요리+어린이) 후보생이었다. 엄마는
"시집가면 다 할 텐데 벌써부터 할 필요 없다."
고 나에게 집 안 일을 시키지 않으셨고, 성인이 되자마자 아팠던 나는 그것을 핑계 삼아 엄마가 차려준밥만 열심히 받아먹었다.
부모님 밑에서 안락한 삶을 살다가 작년에 결혼하여 분가를 하게 되면서 오롯이 나만의 살림살이가 시작되었다. 가끔 친정에서 엄마가 해준 반찬을 받아오긴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직접 만든 식단들로 밥상을 차렸다.
직주근접(職住近接)으로 남편의 회사가 집 바로 앞이었기 때문에 매일 점심과 저녁을 신랑과 함께 먹었다. 덕분의 나의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씻고 점심을 차리고, 오후에 운동과 장보기, 한의원 가서 왕쑥뜸 뜨기, 개인 약속 등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일상으로 채워졌다.
처음에는 유튜브를 보면서 따라 하느라 속도도 더디고, 재료 손질도 서툴고, 부엌도 엉망인 채로 요리했지만 점점 익숙해지니 영상이 없어도 뚝딱뚝딱 만들고센스 있게 응용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제철 식재료를 찾아보고, 어떤 제품은 어디 가서 구매하는 것이 제일 저렴한지 따져보고, 재료 소분과 보관 등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지만 모든 것이 흥미롭고 재밌었다.
무엇보다 잦은 투병으로 갈피를 잃고 방황하던 나에게 '할 일이 생겼다는 것, 주어진 일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힘든 일들을 겪으며 자신감과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었다. 요리는 아웃풋이 바로바로 나왔기 때문에즉각적인 만족감을 들었고,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직접 요리를 하지는 않았어도 어머니께서 살림하는 모습을 오랜 시간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장금이를 꿈꾸며
일이 바쁘고 조금만 무리해도 금방 살이 빠지는 남편에게 '집 밥'은 필수였다. 또한 나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은 식재료를 고르고 건강한 방법으로 조리해서 먹는 일은 중요하기 때문에 요리에 대한 욕심을 계속 내볼 생각이다.
최근 들어 결혼을 하고 1년 정도 지났더니 레퍼토리가 소진되어 같은 메뉴가반복되고있어서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요리책도 보고 다른 분들이 한 음식들을 보며 나름대로 연구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기회가 된다면 사찰음식이나 허브, 꽃차, 마크로 비오틱 식단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공부해 보는 것이 목표다.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앞으로 나의 삶을 꾸려갈 때 더 발전하고 싶은 부분이 두 가지 있다. '영어회화'와 '글쓰기'이다. 요리와 운전이 나에게 삶에 필수적인 부분이라면 영어회화와 글쓰기는 자아실현을 가능케 하는 것들이다.
신랑의 경우 1년 간 해외연수의 기회가 있기 때문에 향후 3년 안에 함께 외국으로 나가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남편은 영어로 수업을 들어야 하고, 나도 영어권 국가에서 생활해야 하니 회화 능력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영어회화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가 가장 수월했었다. 문법이 틀리든,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고 내가 하고 싶은 표현을 과감하게 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첫마디를 떼면서부터 '시제가 뭐였지? 여기에 맞는 전치사가 뭐더라...'를 머릿속으로 생각하게 되니 입이 잘 안 떨어진다. 나 역시 주입식 영어 교육이 익숙한 세대라 시험용 영어공부는 그나마 나은데, 실전 회화는 별로 자신이 없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고, 디지털 매체들을 활용하여 영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고 싶다.
한 나라를 '여행'하는 것과 '살아보는 것'은 다른 일이다. 좋은 일만 있다면 너무 다행이겠지만, 곤란하고 어려운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순간도 오기 때문에 의사 표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능력은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어디로 가게 될지 아직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이왕이면 알차고 행복한 순간들로 꽉 찼으면 하는 바람으로 생존 영어 기술을 익히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글쓰기는'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늘 '취미'라는 이름으로 부담 없이 생각했었는데, 본격적으로 브런치를 시작하고 언젠가 내 이야기들을 담은 '수필집 (산문집)'을 출간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고 나니 제대로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야 할 길은 멀지만 많이 읽고자주 쓰며 여러 가지 경험과 식견을 통해 깨닫는 부분들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홀로 고요히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불필요한 마음의 티끌들을 털어버리는 과정도 필수다.
다행인 것은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과거의 기억들, 생의 중요한 순간들에 대한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메모장에 간단히 적어두면 향후에 찾아보고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쓰는 수필은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조급해하지 않고 애쓰지 아니하며 언젠가 풍성하게 열매 맺을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정진해야겠다.
해야 할 것이 있고, 하고 싶은 일도 있지만 예전처럼 서두르지는 않는다. 실력을 측정하고 등수를 매기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평생에 걸쳐 이루어 나갈 것이다.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고, 차로 아름다운 곳을 누비고, 외국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영어 실력과평생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다면.
자주 아픈 나머지 '갓생'은 다음 생으로 미뤄뒀는데, 내가 바라는 이 네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다고 자평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