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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log Nov 17. 2024

행복을 채우는 선물상자

힘이 되어준 책

나에게는 복을 담아두는 선물상자가 있다. 우연히 귀여운 물건을 발견했을 때, 지인들의 생일날 주고 싶은 것들을 보면 미리 사서 상자에 담아 둔다.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누군가의 생일을 챙기는 일도, 축하한다는 인사를 전하는 일도 예전 같지가 않다. 그래도 정말 친한 사람들이나 출산, 결혼을 앞두고 있는 지에게 보낼 선물공들여 준비하는 편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편지'와 함께 말이다.

   

요즘은 카카오톡 메신저가 생일도 알려주고, 나에게 선물을 준 친구인지도 표시해 준다. '생일인 친구' 항목에 업데이트가 되면 온라인 선물하기를 통해 친구 집 앞까지 배송이 되니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과일이나 케이크 같이 빠른 배송이 필요한 신선식품의 경우에는 나도 '선물하기' 용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한 해동안 여러 곳을 다니며 그 사람과 어울릴 것 같은 물건, 상대에게 필요한 것들이 보이면 사부작사부작 구매해 둔다. 장롱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상자가 때때로 짐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열어볼 때마다 분이 좋아진다.


요리를 좋아하는 언니를 생각하면서 산 그릇, 액세서리를 모으는 친구를 위해 구입한 귀걸이, 겨울이 생일인 후배에게 줄 장갑 등 그때그때 발견한 예쁜 것들로 가득한 보물 상자.

때가 되면 주인을 찾아가는 기특한 녀석들이어서 그런지 선물을 받고 좋아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넉넉해지곤 했다.




행복을 채운 선물상자에 가장 많은 종류를 차지하는 것은 단연 '책'이다. 힘겨워하고 있는 친구에게, 입원을 앞두고 마음 졸이고 있을 선배에게... 따뜻한 말과 함께 부담 없이 선물할 수 있는 것이 책이었다. 내가 읽고 좋았던 책들은 몇 권씩 구매해 두었다가 지인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과 마음의 상처로 힘든 시간들을 고 있었 때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 역시 '책'이었기 때문에 이곳에도 소개해보려 .


1. 랜스 암스트롱 <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존율 3%인 고환암을 이겨낸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의 이야기. 세계적인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를 제패한 유명한 운동선수가 폐와 뇌로 전이된 고환암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낸 과정을 담고 있다. 비록 도핑 스캔들로 불명예를 안기도 했지만, 인간 랜스 암스트롱이 암과 싸우며 어떻게 기적을 만들어 냈는지 알 수 있었던 책이다.


암을 앓고 난 후 나는 또 다른 감정적인 원동력이 필요했다. 분노가 아닌 어떤 다른 원동력 말이다. 암은 내게 삶을 위한 계획을 세우게 했다. 그리고 '투르 드 프랑스'의 각 구간 승리를 하는 것처럼 작은 목표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또한 암은 잃는 법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건강이건 집이건 예전의 자신이건 가끔 무언가를 잃는 경험은 인생에서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352쪽)


2. 허지웅 <살고 싶다는 농담>

'오늘도 절망과 싸우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라는 소개가 붙은 책. 작가 허지웅이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 림프종이라는 큰 시련을 겪은 뒤, 인생에 대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시각을 가지고 쓴 에세이 형식의 도서이다.

"불행이 있다면, 거기 반드시 희망도 함께 있다."라고 말하는 그의 간절하고 따뜻한 문장들이 만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아프기 전과 후의 내가 다르다고 말한다. 나는 뭐가 달라졌다는 것인지 조금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로 써서 말하고 싶은 주제가 달라진 것만큼은 사실이다. 나는 언제 재발할지 모르고, 재발하면 치료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 항암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래서 아직 쓸 수 있을 때 옳은 이야기를 하기보다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남기고 싶다. 회복한 이후에 쓴 모든 글이 그랬다.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기를 바라고 불행하거나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안 그래도 상처받을 일투성인 세상에 적어도 자초하는 부분은 없기를 바란다. (217쪽)


3. 박진희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

희귀 척추암을 판정받은 작가가 평생소원이었던 세계 여행을 떠나며 겪은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살기 위해 '치료'가 아닌 '여행'을 택한 부부지만 떠난 지 6개월 만에 진희씨의 건강이 악화되는 위기를 맞는다. 여행을 끝내며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라고 서로를 위로하는 부부. 그 후로 많은 일들이 함께 겪고, 현재 제주도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하며 따뜻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좁은 세상을 벗어나면 꿈과 환상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짐을 쌌다. 그러나 인생길처럼 여행길도 녹록지 않았다. 무거운 내 짐까지 대신 지고 위태롭게 걷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미안함에 울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나아갔다. 이 과정을 통해 삶이 주는 어떤 고통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를 원했다.


 4. 찰리 맥커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탁월한 일러스트레이터 찰리 맥커시가 건네는 힐링과 자기 위안에 관한 그림책으로 <어린 왕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잇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뻔하지 않은 그림들과 담백한 글이 잘 어우러져 조금씩 아껴 읽기에도, 다시 읽기에도 좋은 책이었다. 항암치료 이후 자신감과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나에게 (구)남자친구이자 (현)남편이 선물한 책이기도 하다.



5. 정지혜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

독립책방 '사적인 서점'의 정지혜 대표가 전하는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행복. 먹고살기 바빠서, 내 취향을 몰라서,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겨본 지 꽤 오래된 우리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로 '좋아하는 것을 자주 하고, 싫어하는 것을 덜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간단하지만 명쾌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 BTS의 열렬한 팬인 작가가 고백하는 '덕질의 즐거움'도 엿볼 수 있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내게 준 것들을 떠올립니다. 사랑 덕분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바깥으로 겁 없이 문을 열고 나가는 용기를 배웠고,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들도 누군가에게는 당연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내가 함부로 뱉은 말과 별생각 없이 쓴 글이 타인의 마음을 베고 상처 입히지 않을지 한 번 더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인생의 균형을 잡는 법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법 또한 익혀 가고 있습니다. 마치 영혼에 나이테를 더하듯 무언가를 사랑하는데 쓴 시간들은 제 삶에 어떤 무늬들을 남겼습니다. 그것들이 없다면 더는 지금의 내가 아니게 될 테지요. (149쪽)


6. 조앤 치티스터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물음이 떴을 때 읽어보면 좋은 책. 21세기가 가장 주목해야 할 영성가로 손꼽히는 조앤 치티스터 수녀가 성경 '코헬렛'의 말씀을 묵상하며 얻은 깨달음과 통찰,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 세상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아일랜드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슬픔이 있는 곳에 거룩한 땅이 있다."라고 말했다. 치유 과정에서 우리는 인생을 해롭게 이해한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패기의 상징이고, 넘어섰다는 것은 큰 업적이다. 승리했다는 것은 빛나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 (중략) 우리가 살면서 배우는 고통은 더 깊은 인생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삶으로의 초대다. (92~92쪽)


7. 김수현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2016년에 출간되어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른 이 책은 내가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이기도 하다. 진짜 '나'로 살기 위한 뜨거운 조언과 어른이 처음인 우리들에게 주는 단단한 위로의 문장들이 가득하다. 재치 있는 표현들과 재미있는 그림으로 언제든 부담 없이 읽기 좋은 책.



긴긴밤을 지새며 읽고 쓴 책들이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나는 오늘도 선물상자에 행복을 채우며 사랑하는 이들의 기쁨과 슬픔에 함께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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