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빠져있는 게 있다면 '어싱 (earthing)'이다. 우리 신체가 지면과 직접 접촉하여 지구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을 뜻하는데, 흔히 '맨발 걷기'라고도 한다. 불과 몇 년 전에 비해 맨발 걷기가 많이 보편화되어 지금은 남녀노소 맨발로 걷는 것이 몸에 좋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내가 맨발로 걷는 곳은 '금강 수목원' 안에 있는 메타세콰이어 황톳길이다. 산길이나 흙길에서 맨발 걷기를 하는 것은 지압효과가 크지만 자칫 발에 상처가 날 수도 있기 때문에 살짝 물기를 머금은 고운 황톳길이나 바닷물이 닿는 고운 모래사장이 제일 좋다고 한다. 다행히 집 근처에 맨발 걷기만을 위해 조성해 좋은 장소가 있어서 자주 찾곤 한다.
'메타세콰이어 숲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촉촉하고 말랑한 촉감의 황톳길을 밟으며 걸을 수 있다니. 가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입장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총길이 약 400m 구간의 메타세콰이어 숲길이 보인다.
먼저 세족장에 신발과 물병을 가지런히 두고, 발을 물에 적셔 촉촉하게 만든다. 잘 깔린 야자매트를 지나 황톳길에 한 발짝 내딛으면 현실에서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맨발 걷기를 막 시작했을 때에는 자주 발을 다쳐 땅만 보고 걸었는데,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주변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야 가득 길게 늘어선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서있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정원에는 비비추가 한창이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이곳에 와 걸으며 느끼곤 하는데, 나무인데 잎이 무성해지는 여름과 점차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가을이 특히 아름답다.
황톳길 안쪽을 향해갈수록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데, 서서히 숲을 비추는 햇살이 가늘어지고 특유의 습함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덕분에 주변에 있는 풀과 나무 향기를 더 진하게 맡을 수 있다.
숲길에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있다.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동물은 다람쥐로 황톳길 양옆으로 난 풀숲과 나무 위를 부지런히 오고 간다.
뱀의 출몰이 잦아지는 시기에는 유유히 황톳길 위를 가로지르는 뱀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놀란 가슴에 뜨악하다가도 생각해 보면 저들의 집에 내가 방문한 것이니 그렇게 소스라치며 싫어할 필요도 없지 싶었다. 오히려 한낮의 휴식을 방해받은 것은 저들일 테니까.
한 번은 새끼 멧돼지를 본 적도 있다. 티브이에서 본 것과 똑같이 머리 뒤로 갈퀴가 쫑긋하게 솟아있어 귀엽고 앙증맞았다. 속초에 살면서도 멧돼지는 본 적이 없었는데 신기하기만 했다.
기대되는 장면이 있다면 황톳길 끝에 있는 조류 방사장에 서식하는 공작새 부부이다. 운이 좋으면 날개를 촤르르 펼치고 아름다움을 뽐내는 공작새의 모습을 볼 있다. 일부러 동물원에 가도 보기 드문 모습인데 이곳에서는 메타세콰이어 황톳길을 걸으며 공작새의 황홀한 자태를 덤으로 감상할 수 있다.
날개가 크고 화려한 색색의 나비와 벌, 여름 한철을 나는 매미들은 얼마나 많은지 걷는 내내 귀가 따갑도록 울어댄다. 뜨거운 울음을 토해내다 나무 아래로 떨어진 매미의 사체는 개미들에게 고마운 겨울 양식이 된다고 한다. 부지런히 그 주변을 맴도는 여러 종류의 작은 곤충들을 보았다. 다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신기한 섭리를 비로소 숲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함께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시선이 간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는 노부부, 아이들 등교시키고 나온 젊은 엄마들, 수목원을 찾는 관광객들, 어떤 날은 체험학습을 온 학생들을 마주치기도 한다. 새싹 같은 어린이들은 맨발로 걷는 일이 영 어색한지 연신
"선생님, 신발 벗어도 돼요? 선생님, 발이 아파요."
를 외친다. 그래도 조금 걷다 보면 금방 발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는지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촉감에 신기해하며 신나게 황톳길을 누빈다.
하루는 지적장애가 있는 자녀와 함께 황톳길을 걷고 있는 어머니를 만났다. 아이는 어른의 몸이었지만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고, 다소 과한 돌발 행동을 보이곤 했다. 같은 길을 반복해서 오고 가며 본의 아니게 그 모자를 관찰하게 되었는데, 숲길 안에 보이는 자연의 이모저모를 열심히 설명해 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이가 그 말을 다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최대한 그가 느낄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추어 이야기를 이어갔다.
산책이 끝나고 세족장에서 만난 모자가 물 묻은 발을 닦은 수건이 없는 것을 보고 가져간 손수건을 빌려드렸다. 혹시 눈길이 불편할까 싶어 황톳길을 오가는 내내 시선을 두지 않았는데, 잠깐 올려다본 어머니의 모습은 맑고 편안해 보였다.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 자연이 좋은 곳을 일부러 찾아온 엄마의 사랑이 느껴져 나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무엇보다 이 숲길을 걷고 있을 때면 글을 쓰기 위한 영감들이 샘물처럼 퐁퐁 샘솟는다. 이 아름답고 거대한 자연 속에서는 도무지 불순한 생각이 들 수가 없고, 용서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오늘 집에 돌아가면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지. 이 이야기를 써야지. 저 소재로도 써봐야지.'
생각이 물 밀듯이 밀려들지만 신발을 갈아 신고, 차를 몰고 집에 도착하는 순간 모든 것들은 미풍에 날아가버린다. 집안일을 하며 이것저것 관심을 쏟다 보면 하루가 짧기만 하다. 잊지 않으려고 핸드폰 메모장을 꺼내 적어보기도 하고, 태블릿을 가져와 숲 속 벤치에 앉아 끄적여보기도 했지만 벌레만 쫓다가 오곤 했다.
그래도 숲길을 걸으며 떠올렸던 긍정적인 생각들과 도전의식,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감탄과 생(生)에 감사한 마음 등 아름다운 감정들을 품고 돌아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맨발로 숲을 거닐며 얼마나 많은 마음들을 속으로 적어 보냈는지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에게, 숲에 사는 귀여운 동물들과 향기로운 꽃나무에게, 보고 싶은 사람들과 용서하고 싶은 이들에게, 지금 내 옆을 지나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인연들에게. 마지막으로 고운 바람과 따스한 햇살, 흘러가는 구름을 만들어준 하늘 위의 조물주에게도 수없이 편지를 썼다.
붙이지 않은 편지라 회신이 불가능할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다음 날 숲에 가면 답장이 와있다. 다른 어떤 날 드는 생각들이 며칠 전 쓴 편지에 대한 답이다.
세상 모든 지식이 담겨있는 책과 똑똑한 스승이 없어도 숲길을 걸으면 복잡했던 생각들이 정리되고,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국어사전에서 '평화'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일체의 갈등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숲 속을 자주 찾다 보면 세상 누구라도 이 평화에 다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숲이 뿜어내는 신선한 공기와 맨발을 타고 온몸 가득 퍼지는 지구의 에너지. 무한한 상상력과 영감의 원천인 숲길을 걸으며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편지를 쓰고 사랑을 담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