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이 로또인 이유
나는 신을 믿는다.
세례를 받고 20년 동안 인생의 어떠한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도 그에게 등 돌린 적이 없었다. 잘 이겨내면 삶의 '큰 경험'이 될 줄만 알았던 암이 두 번, 세 번, 네 번... 재발이 되고, 이름만 들어도 먹먹한 폐암이 찾아왔을 때도 나는 열심히 기도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 하지만 나는 지금 냉담 중이다.
'냉담'이란 세례를 받았지만 교회에 꾸준히 참석하지 않거나 성사 생활을 소홀히 하는 신자를 말한다. 주문진으로 이사 온 뒤 겪은 일들은 공고했던 나의 신앙심에 균열을 가져왔다.
1. 거울이 보낸 시그널
이사한 날 입주청소를 했던 업체에서 신발장 서랍에 붙은 유리를 깼다. 깨끗해진 집을 확인하고, 돈을 이체하자마자 직원은 이야기를 꺼냈다. 청소 중에 자기가 넘어져 유리를 깼는데, 금방 고쳐놓겠다고. 며칠 뒤 남자는 서랍장을 가져갔고, 차일피일 약속을 미루더니 급기야 연락이 두절되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노력을 하며 집에서 나는 소리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지만, 의지로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깨닫고 이사를 결정했다. 집주인에게 말을 해야 하는데, 거울이 여전히 원상 복구되지 않았던 것이다.
수소문 끝에 청소 업체를 연결해 준 플랫폼에 연락을 하고 나서야 남자는 가져갔던 깨진 거울을 그대로 가져왔다. 결국 집주인과 삼자대면을 한 끝에 남자가 사과를 하고, 거울 대신 시트지를 붙이는 것으로 끝이 났다.
모름지기 이사에는 '시즌'이 있었고 주문진 또한 그랬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이나 방학, 연말, 연초 등 이동이 빈번한 때가 있는데 깨진 거울과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연락을 피하던 무책임한 사람 때문에 우리는 제 때 집을 내놓지 못한 채 엄한 시간을 흘려보내야만 했다.
2. 생활 지원금의 행방은?
한 가지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우리가 강릉으로 온 것은 '바다'만큼이나 중요한 '생활 지원금'이 보조된다는 이유였다. 연말에 회사에 문의했을 때만 해도 분명히 강릉 발령에 세대가 전부 이사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보조금 티오가 남아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사 직후 신청서를 제출하자마자 돌아온 대답은 올해는 이쪽으로 발령 난 사람이 많고, 가족이 이사 온 경우도 많아서 생활 지원금을 받는데 경쟁이 붙는다는 것이었다. 작년에 이렇게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여기 온 거라고 소심하게 항의도 해보았지만, 이미 담당자는 바뀌어 있었고 상황은 달라졌다.
결국 우리는 생활 지원금 경쟁에서 탈락했다. 우리만 탈락했다. 우리를 포함해서 세 팀이 경합이 붙었는데, 한 명은 포기하고 관사로 들어갔고 다른 한쪽은 아이가 둘, 배우자의 사업장도 강릉으로 옮겨서 높은 가산점을 받은 덕분이었다.
그랬다. 우리는 애도 없었고, 옮길 사업장도 없었다.
다달이 월세와 관리비, 가스비는 고스란히 우리 몫이 됐고 이 집이 백만 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지를 생각하면 더욱 머리가 아팠다.
3. 출몰하는 나방
대환장파티인 일은 몇 가지가 더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이사 온 날부터 출몰하는 나방이었다. 신축 4년 차 아파트 벽면은 모두 화이트톤으로 깨끗했다. 그래서 천장에 앉은 나방이 더 잘 보였다. 매일 세 마리씩, 많이 나오는 날에는 아홉 마리도 잡았다. 분명히 한 겨울이라 이렇게 자주 벌레가 들어올 리가 없는데, 방충망도 막아보고 창문 점검도 몇 번씩 했지만 나방은 화수분처럼 쏟아졌다.
급기야 세스코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사 갈 때 가더라도 사는 동안은 마음 편히 지내고 싶었다. 전문가는 집 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더니 전에 들어온 나방이 집안 어딘가에서 알을 낳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나방이 가장 많이 보이는 부엌과 안방 드레스룸에 붙이라고 박멸 키트 구입을 권했다. 당분간은 보기 흉해도 어쩔 수 없다면서.
예전에 재래시장에 가면 파리 잡는 끈끈이 트랩을 보고 기겁한 기억이 있다. 그것보다는 모양이 좀 더 트렌디하다고 자위하며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나방 박멸을 위한 트랩을 세 개나 설치했다.
4. 낙수 피해
이 집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넉넉한 지하 주차장 때문도 있었다. 영동지역은 폭설이 많이 내리기 때문에 눈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지하 주차장은 필수였다.
폭설 피해는 겨울에만 있는데, 여기는 생각지도 않은 낙수 피해가 빈번했다. 어느 날 자동차 보닛 위로 물 떨어진 흔적을 발견했다. 인근 카센터로 달려갔지만 처치가 불가능하다는 대답이었다. 이미 석회화된 물이 차체에 스며든 것 같다며, 전체 도색을 하거나 긁어내고 뭐를 해야 한다는 데 비용이 상당했다.
함부로 게시물을 붙일 수 없다는 관리소의 말과 달리 '지하주차장 낙수'와 관련된 게시물은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어있었다. '라바콘이 놓인 자리에는 주차하면 안 되며 관리소에서는 책임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라바콘이 있던 자리에 주차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두운 차 색깔 덕분에 커다란 낙수피해 흉터는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관리소에 가서 상황을 설명했지만 보상을 받으려면 피해가 증명돼야 하기 때문에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에 물이 떨어졌는지 CCTV로 확인이 된다고 해야 했다. 보상 범위도 카센터에서 말한 수리 금액에 턱도 없이 부족했다. 결국 우리는 자비로 차를 고쳤다.
그리고 며칠 뒤 새로운 게시물이 붙었다.
<지하주차장 낙수 피해 관련 :
라바콘이 없는 자리에 주차할 때에도 천장과 바닥에 낙수 자국이 있는지 본인이 확인해야 함. 이와 관련된 피해 발생 시 관리사무소는 책임이 없음을 미리 고지함.>
5. 두 집 살림의 폐해
시끄러운 집에서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지면서 컨디션은 점점 안 좋아졌다. 항암 치료 때 달고 살았던 스트레스성 방광염이 재발했고, 심장 벌렁거림과 함께 가슴 답답함, 주말에 몇 시간씩 애가 뛸 때는 과호흡인지 숨 쉬기가 힘들어 집밖으로 뛰쳐나간 적도 있었다. 집은 마음이 편해야 하는 곳인데 마음대로 휴식을 취할 수가 없으니 짜증과 예민함이 이어졌고, 고스란히 같이 사는 남편에게 날 선 말들이 나갔다. 나의 에너지가 이렇게 부정적인 곳에 소모된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무엇보다 건강 이슈가 나에게는 가장 중요했으므로 당장 잠을 잘 수 있는 친정으로 피신하기로 했다.
초반 며칠은 괜찮았다.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집밥을 먹으며 방 하나를 차지하고 누워 모처럼의 호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다 큰 어른 셋이 부대끼고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주말에 남편이 서울로 올라오면 우리 부부는 친정집에, 부모님은 주문진으로 내려가셨는데 하루는 우리 집에 다녀오신 아빠가 나와 남편을 불러 이야기를 시작했다.
본인이 내내 신경 쓰고 귀 기울여봐도, 티비 소리를 엄청 작게 하고 들었는데도 생활 소음 정도지, 이사를 다시 갈 정도로 시끄럽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아빠, 엄마는 집에서 나는 핸드폰 진동 소리도 잘 못 듣고 전자레인지나 세탁기 종료음도 못 들으신다. 반면 나는 항암 치료를 반복하면서 신체의 모든 기관이 예민해진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간 살았던 아파트에서도 층간 소음으로 힘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우리 집은 객관적으로 시끄러운 게 맞다. (녹음 파일 청취 가능)
엄마, 아빠는 강릉에서 분명 아침에 나가 관광하고 밤에 들어와서 잠만 잤을 텐데 하루 종일 나는 소음을 어떻게 다 안다는 말인가? 이해받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부모님과 언쟁을 했고 짐을 싸서 주문진으로 내려와 버렸다.
이제 내가 믿을 거라곤 '시간' 뿐이었다. 신도 이 일을 해결해 줄 수 없고, 가족들도 내 상황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다.
6. 부동산 소동
집주인 내외분을 생각하면 멀쩡한 거울 깨 먹은 것도 죄송스럽고 (물론 내가 깨진 않았지만), 계약 기간을 한참 남기고 집을 나가겠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만큼 오랜 고민 끝에 신중하게 결정했고, 그렇게 한 결정도 번복의 번복을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날 늦은 밤까지 미친듯한 쿵쾅거림이 이어졌을 때 남편과 나는 이 결심을 시행하기로 다짐했다.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더니 우선 본인이 거래하는 부동산에 매물을 내놓겠다고 했다. 인터넷에 우리 집 매물이 잘 올라간 것을 확인까지 하고, 이제 됐다 싶었는데 몇 시간 뒤 집주인과 부동산에서 번갈아가며 전화가 왔다.
"아니, 어떻게 집주인이랑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금액이랑 날짜도 다 마음대로 해서 집을 내놓으셨어요?"
몹시 격앙된 목소리였다. 늘 차분하던 집주인도 다급하게 전화가 와 따져 물었다.
"저희는 따로 부동산에 연락한 적이 없는데요...? 아무 부동산에도 전화한 적이 없어요."
다시 네이버 부동산에 들어가 보니 다른 부동산 이름으로 가격도 반 값에, 이사 날짜도 다음 주 입주 가능하다고 적혀있었다. 우리가 내놓은 매물이 아니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옆 집에서 집을 내놨는데 호수를 우리 집으로 잘못 말했다고 한다. 결국 모든 것은 해프닝이었고 우리는 집주인과 그 부동산에 연락해 우리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오해를 풀어야만 했다.
부동산 소동까지 겪고 우리는 '이 집은 우리와 안 맞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집은 우리에게 '로또'였다. 좀처럼 맞지를 않았다. 맞지를.
모든 일들은 불과 두 달 사이에 벌어졌다.
깔끔했던 나는 매일같이 '나방 헌터'가 되어 벽과 천장을 누비고 있다. 낙수를 피해 자동차는 폭설과 무더위 속에서도 지상 주차에 세워져 있으며 부동산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연락이 없다. 무엇보다 소음은 언제나 나와 함께하는 중이다. 거의 '공기' 같달까?
잦은 투병을 하면서도 하느님을 원망한 적 없는 나지만, 그간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면 희한하기 짝이 없었고 신이 원망스러웠다.
우주가 나를 망하게 하려고 안 당해도 되는 각종 재물 손괴와 손실, 오해와 분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못난 마음에 나는 냉담을 시작했고, 어떤 기도의 말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어느덧 이사 온 지 넉 달째. 며칠 전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드디어 그 희한한 소리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