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이 준 모든 것
나는 살아남기로 결정했다. 암도 겪었는데 이 따위 층간 소음에 내 영혼을 갈아 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겪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층간 소음은 절대 '따위'가 아니다.)
우선 잠을 자는 게 관건이었다. 기존의 내 수면 패턴대로 자는 시간만이라도 확보하고 싶었다. 잠을 자야 다음 날 모든 일이 가능했다. 곤히 잠들기 위해 나는 매일 칼바람을 맞으며 해변을 만보씩 걸었고, 커피를 끊었다. 강릉은 '커피의 도시'라는데, 나는 커피의 도시에 와서 철저히 커피를 외면하고 있다. 잠잘 때 속이 부대끼면 안 되니까 가끔 먹던 야식도 일절,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영양제를 한 움큼씩 먹었다.
무엇보다 윗집이 일어나는 시간이 일정했으므로 저녁 식사 후 뛰던 아이가 조용해지는 시간에 무조건 자기로 했다. 10시부터 2시까지 몸에 좋은 면역 물질이 많이 나온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잘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이만큼 일찍 자는 '새 나라의 어린이'이자 매일 아침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갓생을 살고 있다. 거의 새로 태어났다고 보면 된다.
투병 이후 건강관리를 하면서도 몸이 힘들면 운동을 거를 때도 있었고, 영양제를 소홀히 한 날도 많았더. 커피와 야식은 가끔이었지만 인생에 꿀맛 같은 행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층간 소음은 나에게 있어서 암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였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 아니었고, 노력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도 딱히 없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그리고 지난주. 낮 시간 우리 집을 울리던 그 "쿵덕. 쿵덕. 쿵덕" 소리의 실체를 마주하는 순간 남편과 나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우리는 평소와 같이 지상 주차장에 차를 대고 공용 현관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재활 보행기에 의지해 운동을 하는 할아버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며칠 전에 본 분인데 운동을 열심히 하시네.'
스쳐 지나가려던 찰나 그분이 우리 라인으로 들어가시는 것이었다. 노인은 한쪽 다리가 특히 불편해 보였는데, 앞 발로 먼저 '쿵' 바닥을 내려찍고 뒤에 있는 발이 따라오는 형식의 보행을 하고 있었다.
"쿵덕. 쿵덕. 쿵덕"
익숙한 소리였다. '쿵'에 엑센트가 8, '덕'에 엑센트가 2 정도였다.
공용 현관이 열리고 엘리베이터로 가는 로비에 들어서니 소리는 더 크게 증폭되어 울렸다.
'설마... 설마... 우리 위층은 아니겠지. 위층이면 그 소리 백 프로인데.'
남편은 이미 매의 눈으로 할아버지의 걸음걸이를 관찰 중이었다. 노인은 0층을 눌렀다. 우리 집보다 두 층 아래였다. 우리 둘만 아는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 엘리베이터가 열렸고, 나는 노인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안녕히 가세요."
할아버지께서도 친절하게 인사를 받아주셨다. 노인의 눈에서 총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그분이 몇 호로 들어가는지 숨죽이고 있었다. 오른쪽이면 우리 집 쪽, 왼쪽은 옆집 라인이었다.
손에 땀을 쥐는 순간.
정답은 오른쪽.
그리고 할아버지네 집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쿵덕. 쿵덕. 쿵덕" 소리는 크게,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낮에 나는 여러 가지 소리들 중 제일 희한하다고 생각되는 소리의 비밀이 밝혀졌다. 러닝 머신, 스텝퍼, 절구 빻는 소리도 아닌 그 소리. 발소리라고 하기에는 리듬이 너무 희한했던 바로 그 소리였다. 바로 아랫집도 아닌 아래 아랫집에서 나는 소리가 벽을 타고 올라와 그렇게나 크게 들렸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저 정도로 온몸의 무게를 실어 맨땅을 박차는 거라면 깡통 같은 이 아파트에서는 그런 소리가 나고도 남을 일이었다.
생각 정리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요약해 보면 우리는 1-2 라인을 통틀어 유일하게 아이가 있는 집 (이제 막 뛰기 시작한) 바로 아래, 거동이 불편해 성실히 재활하는 할아버지의 집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있었다. 아침, 저녁, 주말에는 아이가 뛰고 낮에는 아래 위층 할 것 없이 발망치 소리가 날아들었다.
이 집은 하나만 했어야 했다.
아침, 저녁에 조용하거나 낮에 조용하거나.
아니면 나방이라도 나오지 말거나.
아이는 뛰면서 자란다. 나도 안다. 착하고 순한 우리 조카들도 열심히 뛴다. 뛰지 말라고 타일러도 잠깐 뿐이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는 살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점점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요 며칠 날이 따뜻해져 밖에서 걸으셨던 거고, 지난달까지는 추웠으니까 내내 집에서 운동하셨을 것이다. 그 소리와 함께.
밥을 먹으러 방을 나올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우리는 걸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쿵덕. 쿵덕. 쿵덕" 소리가 들리는 시간은 거의 정해져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아침 먹고 한두 시간 점심 식사 후 두어 시간 정도였다. 낮잠은 고사하고 낮 시간 집에서 평화롭게 쉬는 것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 동네에 미친X이 사는구나...'
차라리 알고 나니 속은 시원했다. 그 소리가 아무리 들려도 시끄러울지언정 무섭지는 않았다. 할아버지가 애처롭고 왜 그렇게 사력을 다해 움직이시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그분에게 걸음은 '생존'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할아버지가 오래 사시고, 건강을 되찾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하루빨리 이 온갖 소음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수명을 연장하고 싶은 게 더 솔직한 마음이었다.
지금은 그래도 처음보다 적응했지만 이사 온 첫 달은 정말 힘들었다.
우리는 주말이 되면 속초에 있는 단골 카페로 달려가 종일 시간을 보냈다. 그곳은 아주 조용한 대화만이 허락된 공간이라 목소리 대신 음악이 흐르는 곳이었다.
창밖으로는 화단에 심어놓은 대나무가 흔들리며 '사락- 사락-' 소리를 냈다. 평화로웠다. 여기가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도 안 되는 거겠지...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고양이 한 마리가 카페 앞을 서성거렸다. 가끔 카페 사장님이 밥을 챙겨주는 길냥이였다. 한참을 고양이를 바라보다 문득
'사람인 나도 사람들이 내는 소리가 시끄러운데, 쟤는 얼마나 무섭고 시끄러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보다 덩치 큰 사람들이 발로 차고 위협을 가하고, 육중한 차들은 경적을 울리면서 쌩쌩 달리고. 길 고양이의 삶도 무섭고 시끄러운 것 투성이겠구나 싶어 눈을 질끈 감았다. 고단함이 느껴졌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사십 년 인생에서 나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내가 겪은 게 전부였다. 회사 안 다니고 아프지만 않으면 스트레스가 없을 줄 알았는데,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런 복병을 숨겨두다니.
지금도 여전히 시끄러운 우리 집이지만 나는 소음을 피해 요령껏 산다. 아침에 윗집 발소리에 깨는 일은 그냥 알람 시계라 생각하기로 했고, 낮에는 가급적 나가려고 하지만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글을 쓰는 로망을 실현하고 싶을 때면 '소음 방지 귀마개'나 주변 소음 차단모드로 '아이팟'을 낀다. (사실 그래도 쿵쾅거리는 울림은 어쩔 수 없다.)
이 정도로 안될 때면 혼수로 장만한 블루투스 스피커로 신나는 댄스곡들을 틀어 둠칫. 둠칫 리듬을 탔다. 내 집에서 계속 귀를 틀어막고 있어야 하고, 몇 시간씩 큰 소리로 음악을 듣는 일이 짜증 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살아야지.
하루는 귀마개가 답답해 살짝 빼보았다. 이른 아침 식탁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글을 쓰는 중이었다. 창문 너머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맑고 청아한 소리였다.
그랬다. 나의 귀는 새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그 무수한 소음 말고 새소리도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