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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블룸 <기도의 체험>을 읽고

나의 기도

by 윤슬log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로 시작하는 김남조 시인의 「너를 위하여」라는 시를 좋아한다. 이번 북클럽 도서로 선정된 안토니 블룸의 「기도의 체험」을 읽고, 감상을 쓰기까지 김남조 시인의 이 시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천주교 신앙을 가진 부모님 아래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성당에 대한 기억은 어렴풋하지만, 단 하나 선명한 기억이 있다면 성당 마당을 거닐고 있었을 때 울려 퍼지던 성가였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평화를 주소서.”

아름다운 멜로디와 함께 몇 번이고 반복하는 그 구절이 어른이 된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스무 살에 세례를 받은 후 꾸준히 미사에 참여하면서 언제 어떻게 부르는 곡인지 알게 되었지만, 어린 날 뜻도 모르면서도 그저 아름답다고 여겼던 그 노래는 지금도 간간히 내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안토니 블룸 주교는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루카 18,13)를 인용하여 우리가 늘 기도를 시작할 때마다 가져야 할 마음 자세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주님께서 바오로 사도에게 말한 것을 보면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코린 12,9)라고 되어 있는데, 비단 우리가 죄를 짓고 하느님을 잊어버리는 그런 약함이 아닌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며 있는 그대로 내어 보이는 약함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덧붙여 기도는 안으로 향해야 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께로 향해야 한다는 것과 자신에게 솔직하고 알맞은 말을 선택해 모든 정성을 들여 기도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자신에게로 향하는 진심 어린 기도. 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머니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기도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는 점과 ‘아버지께서는 늘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사람인지라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실망하고, 속상해했다. 무엇보다 좋은 것만 주신다는 자비로운 그분께서 원인 모를 시련을 주셨을 때에는 ‘주님의 뜻’이 무엇이냐며 원망 섞인 비난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모두 지나 삶을 뒤돌아보니 결국 하느님이 나를 위하여 마련해 놓으신 크나큰 뜻 안에서 혼자 이리 뛰고 저리 구르며 동동거리고 있었다.


“아버지” 하고만 불러도 이미 내 안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 고요하고 기나긴 밤.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는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오늘 밤은 조용히 정성 들여 주님께 나를 봉헌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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