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순간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경험을 한 적 있는가?
- 나는 있다.
병원 정기검진에서 통과하지 못하고 '그놈'을 또 만났을 때 그랬다. 아무 생각 없어 병원 문을 들어갈 때와 청천벽력을 맞고 그 문을 나설 때의 공기는 천지 차였다. 낮고 무겁게 내려앉는 공기. 주변의 소음이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분주히 돌아가는 세상 속에 나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느낌랄까.
"휴우-"
길게 한숨을 뱉었다. 또다시 시작이었다. 과정을 아니까 더 무서웠다. 삶이 손바닥 뒤집듯 한순간에 뒤집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진료실을 나와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있는 내게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 돌아오는 차 안은 적막했고,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도 온통 무채색이었다.
문득 나에게는 평화의 끝을 알리는 오늘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미치도록 행복한 날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결혼한 사람, 오늘 프러포즈를 받는 사람, 오늘 태어난 아기, 오늘이 생일인 사람들, 오늘 첫 출근을 한 사람, 오늘이 월급날인 사람...
자연스럽게 그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도 떠올랐다. 오늘이 생에 마지막인 사람들, 오늘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분들, 포화 속 전쟁을 겪고 있는 사람들, 오늘 이별하는 사람, 오늘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
인간이 한평생 살아도 백 년을 살기 힘든데, 억겁의 시간 속에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일들이 모두 스쳐갔다.
'오늘'이라는 단어에는 좀처럼 아무 감정이 실리지 않았는데, '오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나열해 보니 참 많은 것이 가능했다. 나에게는 슬픈 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기쁜 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통하고 더없이 서러운 날 '오늘'.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그래도 지구는 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흐를 테니, 안 죽고 버티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주먼지이자 티끌인 나는 오늘도 이렇게 표표히 소요(逍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