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림자놀이 2부

1. 새로운 시작

by 운정

"실적이 부족해서 원하시는 금액만큼 대출은 어렵습니다. 약 80% 정도 대출될 것 같으나 이것도 심사 들어가 봐야 확실한 금액이 나올 것 같습니다."


지우와 함께 강남의 부동산 사무실을 가보기로 했다.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은 약 2천만 원 정도, 내 수중 여유돈이 2천만 원이니 도합 4천만 원 정도로 상담실을 만들어야 했다. 부동산중개인은 강남의 아파트 단지 가로수길에 있는 건물 6층 공간을 소개했다.


"운이 좋으십니다. 사실 이 건물은 2층부터 6층까지 다 의원으로 들어 차 병원 전용 건물이나 다름없죠. 임대료가 비싼데도 들어오려고 줄을 서는 건물인데 몇 년 전에 6층에 30평 정도 자투리 공간이 생겼죠. 병원 들어오기는 작아 아무도 관심이 없던 공간이어서 비어 있은 지가 한참인데, 암튼 임자는 따로 있다니까요. 건물주가 별 관심이 없는 공간이라 임대료도 보증금 2천에 월 70만 원으로 비어있느니 관리 잘해주라는 의미로다가 싸게 내놓았어요. 이 근처 시세로 보면 거저죠, 거저. 심리상담실이라 했죠?"


중개인은 좋은 물건을 소개해서 기분 좋은 건지, 안 팔리던 물건을 팔게 되어 신이 났는지 모르지만 다소 높은 톤으로 활짝 웃으며 말을 했다. 우리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건물 앞에 서서 양 옆쪽 거리와 건너편 거리 등 주변을 둘러보고 그 건물 6층에 올라가 보았다. 1층에는 큰 카페가 있었는데 건물주 딸이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각층에 테라스가 있었는데 6층은 정신의학과 의원이 테라스 전체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부동산 중개인은 입주인테리어 할 때 인사하면서 테라스의 1/3을 우리가 사용해도 되겠냐고 타협을 하라고 했다. 그냥 요구해도 되지만 이미 사용하고 있으니 타협, 아니 부탁을 해보라는 뜻인 것 같았다.


다음 날, 건물주를 만나 계약서 작성하기 위해 부동산 사무실에 다시 갔다.

건물주는 듣던 대로 당차고 기운이 밝고 명랑한 분이었다. 확실하게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월세 깎아 달라면 깎아 주겠다고 말해보라 했다. 강남에서 이런 목에 이런 가격대의 사무실 구하기 어려운데 이렇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더니, 어쩜 그렇게 이쁘게 말하냐고 칭찬으로 말을 돌려주었다.


"생년월일을 보니 우리 둘째 딸과 37세 동갑이네. 두 분은 부부요?"


"저희는 미혼이에요. 결혼은 아직..."


내가 말끝은 흐리자, 지우는 입 끝을 오므리며 눈 끝으로 살짝 흘기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만 말하라는 신호였다. 곧이어 그녀의 말이 길게 이어져 왔다. 우리는 손가락 깍지를 끼었다 풀었다 하며 듣고 있어야 했다.

“곧 결혼해야겠구먼, 나이도 찼으니. 우리 큰딸은 대학졸업하자마자 결혼해서 애가 둘이우. 큰애가 벌써 중학생이지. 우리 큰 사위가 의산데 우리 건물 2층에 있어요. 아, 나는 딸만 셋 있는데.. 응, 둘째 사위는 검사, 막내 사위는 안정적인 공무원..교사에요. 응, 나 혼자 고생고생해서 우리 딸들 공부시키고 시집보내고...응, 살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내 딸들 잘 키우고 남부럽지 않게 결혼시키고.. 응, 우리 남편이 살아있었으면 얼마나...응, 내가 주책이네. 바쁜데들.. 어서 가봐야지.. 응, 나는 바쁜 사람이라 얼굴 보기 힘들꺼니, 문제있으면 중개사에게 말하면 알아서 처리해줄거요. 걱정들 말고..응.”

그녀는 말끝머리마다 판소리 추임새처럼, ’응‘을 붙이며 소리 한마당을 쏟아내더니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자며 먼저 일어났다. 입도 몸도 참 가벼운 분이었다.


우리는 인테리어에 대한 계획을 짜기 위해 공간을 들러보기로 했다.

부동산 사무실을 나와 거리를 둘러보며 사무실이 있는 건물을 향해 걸어 갔다. 큰 도로가에는 5층~ 10층 정도 되는 건물이 늘어서있고 그 너머에 평생 내가 돈을 모아도 사지 못할 아파트들이 있었다. 강남에 나의 상담실을 만든다는 것을 나는 상상해본 적도 없고 계획에도 없었는데 순전히 지우의 권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나는 교외의 전원주택이나 외진 골목 오래된 이층 주택을 개조해 1층 상담실, 2층은 나의 집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건 당신이 살고 싶은 곳이고요. 상담실은 찾아오기 쉽고 스트레스 많은 사람곁에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즉 도심에 있어야 한다구.”


철없는 동생에게 하듯이 눈에는 미소 가득하게 말투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지우는 나와 동갑인데도 불구하고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와 얘기하면 무엇이든 얘기가 되었다. 그와 나란히 팔장을 끼고 걸을때면 나도 모르게 나의 발걸음이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카페에 들어섰다.

따뜻한 음료를 주문하고 6층으로 올라갈거라 음료가 나올 때까지 그 자리에 서있었다. 직원이 음료를 내어 왔다. 건네는 틈에 말을 걸었다.


"건물 6층에 상담실을 오픈하게 된 김정선이에요. 잘 부탁해요. 카페사장님이신가요?"

"아, 아니에요. 저는 카페 직원 오해랑이에요. 제가 잘 부탁해요. 상담실이 생긴다니 너무 좋아요. 마침 저기 사장님이 계시는데 인사하실래요?"


나는 해랑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카페 맨 끝 벽 쪽에 뒷모습만으로도 앙상하게 말라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지우는 내 팔을 잡고 어서 올라가자고 입으로 소리 없이 말했다.


"아니에요. 나중에 정식으로 인사드릴게요."


옆문으로 나가며 흘낏 그녀를 보았으나 이미 그녀는 창밖이 보이는 자리로 돌아 앉아 고개 숙인 채 휴대폰을 보고 있는 긴 머리의 마른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인테리어공사 때문에 거의 매일 건물에 짬짬이 드나 들었지만 그녀와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학부지도교수였던 한교수님의 추천으로 다음 학기부터 교양학부에서 심리학개론을 강의하게 되어 있었다. 강의 준비로 바빴지만 오랜 숙원사업인 상담센터 오픈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지우는 안산시향으로 직장을 옮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크리스마스 시즌 연주회준비로 바빠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오후에나 서로 얼굴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는 매주 일요일 오후가 되면 양손에 시장을 그득하게 보아 내 집에 나타났다.

그는 오자 마자 장본 재료들을 쏟아내 놓고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했다.

요리라곤 잼뱅이인 나와 달리 그는 맛깔나게 요리를 잘했다.

그의 레시피는 언제나 간단했다. 그런데 맛이 있었다.


"요리에 여러 가지 맛을 살리긴 어려워요. 어떤 재료가 오늘의 주인공인지 정해야 해요. 그 재료의 맛을 한층 돋보이도록 다른 것들이 도와주어야 해요. 요리는 교향곡의 하나의 악장과 같아요. 하나의 악장은 그 자체가 교향곡이죠. 어떤 악장에서는 바이올린이, 어디서는 피아노가, 그리고 어디서는 관악기가 주인공이 되는 거죠. 오늘의 요리의 주인공은 바로 감자예요.

이 감자의 맛이 어떠냐에 따라 오늘 요리의 성패가 달려있어요.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하하"


닭볶음탕이라 해놓고 주인공은 감자라니, 그날의 요리에 대한 해석은 늘 신박했다.

놀라운 것은 그가 말한 요리의 주인공은 정말 맛이 있다는 것이다.

고기류가 조연으로 역할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그가 말한 요리의 주인공으로 고등어조림의 무맛이 그러했고 제육볶음의 양파, 파프리카, 깻잎 등 야채맛이 그러했고 갈비찜의 묵은지가 그러했다.


"고기맛 때문에 야채 재료가 사는 거 아니야?"


내가 반론을 제기했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고기가 야채에서 나오는 즙과 간장, 소금, 후추, 마늘 같은 적절한 양념들 때문에 오히려 풍미가 있어지는 거죠. 저는 야채 자체의 풍미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최대한 야채의 즙이 덜 빠져나오도록 온도조절과 간조절을 하는 것이 제 요리의 극강의 비법입니다요. 하하. 자아, 아가씨는 자기 일하시며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는 뉴욕에서 처음 만났을 때에도 자기 숙소로 나를 초대해 요리를 해주곤 했다.

그 시절 나는 가난한 유학생이었고 그는 대기업 주재원이어서 나의 물주 노릇을 했다.

그는 나에게 견딜 수 없는 유학생활의 지루함과 피로감을 덜어주고 잊을 수 있는 시간을 줌으로써 유학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존재였다.


나의 길거리 연주는 돈을 벌려고 한 것이 아니라 유학생활의 무미건조함을 덜어보려고 갖은 시도 끝에 시작된 것이었다. 도무지 재미도 없고 신나지도 않은 유학생활에서 무료함을 달래주는 것이 노래였다.

그러나 기숙사에서 인도에서 온 룸메와 함께 살고 있는 나는 노래 부를 곳이 없었다.

그래서 일요일이면 센트럴파크나 브로드웨이 스트리트, 그리고 광장으로 기타를 들고나가 노래를 불렀다. 버스킹이 아니라 아예 노래와 기타 연습이라고 해두어야 할 정도였다. 길거리 버스킹을 대담하게 할 만큼 노래와 기타 연주실력이 좋지 않았지만 나에게 도파민을 활성화시키는 데는 제격이었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타국에서 사람들의 눈치, 시선 따위를 전혀 의식할 필요 없이 한국에서는 가질 수 없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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