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림자놀이 1부

10. 공명

by 운정




그녀의 상담센터 사무실은 마치 도서관 같았다.

상담센터 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걸어 들어가니 반투명유리 중문이 있었다. 미닫이 중문을 미니 소리 없이 열렸다. 천정까지 닿은 웅장한 책장의 면이 점점 커지며 나타나 마치 어느 성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주 보이는 벽에 천정 닿게 책장을 짜 넣고 책을 채웠다. 양 옆벽은 길이 절반부터 천정높이까지 책장에 책이 꽂혀 있었다. 꼭대기열에 있는 책을 내리려면 사다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정말 책장과 책장사이 모서리에 사다리가 있었다.

좀 웃음이 났다.

일본 여행 중 보았던 어느 호텔의 로비에 만들어진 도서관이 연상되었다.

크림색 소파는 길게 디귿자로 놓여 있고 바닥은 나무재질의 샌드베이지색 데코타일이었다.

소파의 크림색에서 책장의 진한 갈색까지 톤다운된 차분한 색감 때문에 책장 안에 꽂힌 책의 표지와 글자들이 더 선명하게 살아 움직이는 듯 돋보였다.

어릴 때 내가 읽었던 책제목 들도 눈에 띄었다.


나의 코끝에 종이 냄새와 새 집 페인트냄새, 그리고 나무향 사이사이에 작고 희미하게 유칼립투스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나는 냄새에 민감하여 아무리 좋은 향수라도 머리가 아팠다. 심지어 섬유 유연제도 거의 냄새가 없는 제품을 사용할 정도였다.

딱 하나 유일하게 유칼립투스잎 입욕제만 소량 사용했다.

욕조물에 유칼립투스 입욕제를 넣고 몸을 담그고 있으면 멀리서 바람결에 실어오는 듯한 옅고 간들간들한 향이 몸을 감싸다가 사라지는 동안 그 안에서 잠들곤 했다.

그녀의 공간에서 익숙한 향을 맡자 이상하리만치 안도감이 느껴졌다.

양쪽 복도 길이만큼 왼쪽은 간이 주방 같은 공간이 있었고 오른쪽은 상담실이 있었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문을 마주하니 ‘까꿍‘이라는 글자가 까꿍 했다.


“풉”


문은 방화문같이 매우 육중해서 상담실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미동과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까꿍이라는 글자 아래 자그많고 희미하게 연한 병아리 노란색으로 ‘노크해 주세요 ‘ 글이 있었다.



그녀와의 공식적인 첫 만남은 그녀의 상담실이었다.

나는 착하고 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나는 매우 까탈스럽고 예민한 다루기 어려운 내담자였다.

질문에 대답을 잘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녀의 질문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니 잘 못 알아들었다고 말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 제가 도와드리면 될까요?”


“모르겠어요. 제가 왜 왔는지.”


나의 혀는 제멋대로 말하고 있었다.


‘지우의 팔짱을 끼고 걸어가던 그녀가 궁금해서 왔잖아, 질투하는 거지, 너.‘


내면의 누군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니아, 난 질투하는 게 아니야, 나에게 문제가 많다는 거 알잖아, 그래서 온 거잖아, 난 도움이 필요해!‘


내면아이가 말했다.


"그냥... 다음에 올게요. 할 말이 있을 때.."


그녀가 일어섰다.


“오늘 말할 기분이 아닐 수 있어요. 우리 음악을 좀 들을까요? 아무 말하지 않아도 돼요.”


그녀는 블루투스를 켜고 휴대폰에서 음악을 검색했다.

그녀가 일어나자 짧은 머리카락 아래 하얀 목덜미가 보였다

그녀는 푸른색이 도는 회색의 정장바지에 하얀 니트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키 작고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의 몸짓은 활기찼다.

그녀의 목소리는 중저음으로 약간 우웅거리며 딕션이 분명하여 마치 마이크로 말하는 느낌이 들었고 그 소리들은 그녀와 나 사이 공간에서 마치 비누물방울처럼 퐁퐁퐁 떠다니다가 내 가슴으로 천천히 날아 들어왔다.


블루투스에서는 용재오닐의 비올라연주로 '섬집아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무너지듯이 그 자리에 멍하니 주저앉아 소리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 그냥 편하게 음악감상이나 해요. 우리. 편안하게 앉으시고요. 숨을 길게 내쉬고 어깨긴장 푸시고.. 눈을 감으셔도 돼요."


처음에 몸 둘 바를 모르다가 음악소리에 젖어들며 나도 모르게 긴 숨을 내쉬며 엉덩이로 소파를 깊숙이 눌렀다. 허리도 고개도 무릎도 아래로 아래로 숨을 따라 내려갔다.


처연한 비올라소리가 가슴에 파고들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눈물만 주룩주룩 흘렀다. 그녀가 휴지를 가만히 손에 쥐어 주었다.

조금씩 눈물이 잦아들자 숨이 길게 더 길게 쉬어졌다.

천천히 비올라소리가 아래로 흐르며 가슴에서 아랫배로 그리고 온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점점 깊이 깊이 몸이 내려가고 있었다. 눈이 완전히 감겼다.

그리고 나는 오래 잠을 자며 긴 꿈을 꾸었다.







* 그림자놀이 1부를 마칩니다.

* 2025년 8월 4일부터 그림자놀이 2부를 시작합니다.

* 그림자놀이는 연결되어 있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그림자놀이 2부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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