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림자놀이 1부

9. 직면하기

by 운정





그녀의 심리상담소 이름은 '마음그늘'이었다.


엄마는 건물에 입주하는 업체에 오픈날에 맞춰 큰 화분을 보내곤 했다.

어느 날, 누가 버렸는지 알 수 없지만 개업선물로 준 식물이 시든 상태로 화분과 함께 통째로 버려진 것을 보고는 케이크로 대체하여 카페에서 파는 조각케이크를 직원수대로 맞춰 넉넉하게 보내주었다.


지우와 팔짱을 끼고 마주 보던 그녀의 모습이 문득 떠오를 때마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지우의 잘 생긴 눈과 부드럽게 곱슬거리던 머리카락을 쳐다보고 있었을까?'


지우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선선한 눈매에 속꺼플이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진지함과 부드러움이 어우러진 단아한 아름다움을 보았다고 그에게 말해준 적이 있었던가?

그와 키스하면서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던 감각은 아직도 나의 손에 남아 있는 듯했다.

그 감각이 느껴지면 일렁이는 물결하나가 가슴에서부터 아랫배까지 흘러가는 것 같았다.

다시 머리를 흔들었다. 감각에서 깨어나 현실 속으로 돌아왔다.


상담소 개소가 이슈가 되자, 직원들은 나를 볼 때마다 지우와 그녀가 함께 인테리어 때문에 거의 매일 오다시피 한다고 보고했다. 나는 무심한 표정으로 건성으로 듣는 척했다.

겨울 시즌 음료가 직원들의 손에 익숙하게 만들어지자 나는 카페에 거의 나오지 않고 있었다.

오전에 잠깐, 그리고 저녁에 잠깐 나와 직원들의 얘기를 듣고 카페 운영상황 점검만 하고 들어 갔다.

상담소 개소식을 한다는 현수막이 걸리고 크림색 건물 외벽에 짙은 진청록색 주물판에 크림색으로 글자가 새겨진 간판이 부착되었다.

12월 20일이 개소일이라 했다.


'마음그늘이라니, 상담소 이름이...'


12월이 되자,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상가내부의 트리장식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상담실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받고 싶어요. 언제 할 수 있을까요?"


가슴이 죄는 느낌으로 숨을 간신히 쉬며 말했다.


내일 오전 11시 상담예약을 하고 전화를 끊자 막힌 숨이 뚫린 듯이 길게 새어 나왔다.


그녀를 직면하게 된 것이 곧 나의 마음을 직면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6년 전쯤, 그녀와 지우는 주말에 뉴욕브로드웨이에서 한 거리에서 만났다.

그녀는 뉴욕에 있는 대학에서 상담심리석박사과정 유학 중이었고 지우는 근무하던 대기업 미국 주재원으로 파견근무하고 있었다.

그녀는 주말이면 기타를 메고 뉴욕거리를 활보하다 맘에 드는 자리가 나면 길거리 버스킹을 했다.

그녀가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K-가요와 팝송을 부르는 모습을 보고 지우는 첫날부터 그녀의 버스킹이 끝날 때까지 남아있는 관객이 되었다.

그렇게 그들의 연애는 시작되었다.


그녀는 지금도 술자리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 노래를 불렀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사람들은 어련히 노래 부르겠지 하는 눈으로 대수롭지 않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사람들 시선을 개의치 않고 천연덕스럽게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그녀가 노래 잘해서라기보다 노래를 즐기고 음미하는 모습에 감동을 느끼는 것 같았다.


처음 그녀의 상담실을 방문하던 날, 나는 6층에 있는 상담실까지 계단으로 천천히 걸어서 올라갔다.

그때까지 나는 알지 못했다.

땅바닥에 엎어져있는 나의 마음이 왜 이 상담실 문을 열기 위해 일어나고 있는지,

밖은 베일 듯 날카롭고 안은 데일 듯 뜨거운 나의 마음이 선선하면서 부드러운 미풍에 이리 쉽사리 무너질 수 있는지,

주변 사람과 상황에 마음하나 낼 수 없는 무심하고 무기력한 나의 마음이 깊은 내면에서 올라오는 어떤 힘으로 인해 이리 쉽게 세상을 향해 문을 열어재낄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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