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림자놀이

7. 두개의 얼굴

by 운정

평소보다 카페에서 일찍 퇴근을 했다. 오후 2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마치 어떤 약속이 있는 것처럼 황급히 나왔다.

남편은 직원들과 커피마시다 오후 2시가 되기전 일어설텐데…

다른 날에도 종종 단체로 커피마시러 오곤 했는데…

남편을 피하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닐텐데, 나는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처럼 길을 헤매고 있었다.

도로에 늘어진 늦가을의 가로수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어 11월 오후의 햇살을 막아주지 못했다.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입구에 섰더니 햇빛에 눈이 부셨다.

시계추가 진자운동하듯 머리속에서 댕댕거려 두통이 일며 지끈거렸다.

햇빛으로부터 눈을 가리기 위해 이마에 손을 얹는 순간, 건너편에 지우가 보였다.

그의 얼굴이 너무나도 선명하고 또렷이 클로즈업되어 내게 다가왔다.

곧바로 뒤로 돌아 약국으로 들어갔다.

출입문 오른쪽벽에 즐비한 비타민영양제를 고르는 척하며 창밖을 보았다.

신호가 바뀌어 그가 길을 건너 이편으로 오고 있었다.

그의 겨드랑이 아래 다른 사람의 팔이 그의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여자였다.

짧고 상큼한 헤어컷을 한 여자가 지우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하고 있는 듯했고 그의 턱선은 그녀를 향해 마중나가 있었다.

그들이 다 건너오고 등을 보이자 영양제하나 집어들어 계산하고 건성으로 약사에게 인사하고 약국을 나왔다.

그들은 내가 카페에서 걸어오던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지우는 곤색 트렌치코트에 블랙백팩을 메고 있었고 그 여자는 코코아색 핸드메이드 반코트에 작은 핸드백을 크로스로 메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바람은 좀 찼지만 햇살은 여전히 눈부셨다.

갑자기 흐읍 숨을 들이쉬고 내밷었다. 내가 우스웠다. 다시 바라보니 그들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카페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 갔다.

카페에 들어가니 해랑이 놀라며 말했다.


"사장님, 교수님 올라가셨는데... 아, 뭘 두고 가셨구나. 퇴근하신줄 알았어요."


"아니, 그냥 영양제 사러요." 하며 해랑에게 영양제를 건넸다.


"아, 감사해요, 사장님. 뭘 이런걸 다, 제가 술마셔서 얼굴이 좀 안좋죠."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 사장님, 우리 건물 6층에 정신의학과 옆에 남아 있던 작은 공간아시죠? 거기에 심리상담센터오픈 한다고 하네요. 오늘 계약서쓰러 온다던데요. 아아, 사장님 어머님이 잠깐 오셨다가 교수님에게 그러시더라고요. 부동산사무실가신다면서요."


다른 의원들은 의료기계들이 많아 한층을 다 써야 했지만 6층에 자리잡은 정신의학과는 2/3정도만 필요하다고 하여 분할하여 임대를 주었다.

남은 공간에 상담소가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오후 3시면 다른 직원인 경원이 올테니 기다렸다가 이 둘에게 겨울시즌 새로 출시한 새음료 레시피 보여주고 설명해줄 참으로 조금 한가해진 카페 안쪽 벽 자리에 앉아 있었다.

벽끝에는 1층 로비로 난 문이 있었다. 계단층마다 화장실이 있었고 로비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화장실이용고객이나 위층 병원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카페안에 있는 그 문을 이용해야 했다.


문이 딸랑거렸다.

'어서오세요' 하는 해랑의 목소리가 들리고 옆얼굴이 보인 지우와 그에게 팔짱을 꼈던 여자가 이제는 팔을 풀고 뒤따라 들어와 주문대에 나란히 서는 것이 보였다.

잠시 서있던 그들은 테이크아웃용 용기에 담은 음료를 두손으로 받아들고 해랑이와 무슨 얘기를 나누는 듯하더니 내가 앉은 자리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문으로 나가려는것 같았다.

칸막이와 테이블 야자나무로 가려져 전혀 마주칠 염려가 없음에도 행여나 그들과 마주칠까 나는 그들이 내 등뒤로 돌아갈때까지 벽을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그들이 칸막이 뒤로 가자 몸을 돌려 길가로 난 창을 바라보게 고쳐 앉았다.

그들은 마주보고 얘기를 나누면서 내 등뒤의 칸막이를 지나쳐 문을 열고 1층 로비로 나갔다. 문을 열면서 웃음 소리같은게 들리는 것 같았다.

카페 음악소리가 지나치게 컸다.

신경이 곤두섰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사장님, 보셨어요, 보셨어요? 아까 그분들, 옆문으로 나가신 그분들요. 그 여자분이 상담센터를 오픈하는 거래요. 그 둘이 부분가? 연인인가? 암튼 상담실은 인테리어하고 한달정도 뒤에 오픈한대요."


누가 물어봤나? 신경이 날카로워짐을 느꼈다.


"잘됐네요. 엄마가 좋아하시겠네."


그때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근무하는 경원이 들어왔다.

해랑이는 그가 오면 일얘기 뿐만 아니라 여차저차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았다. 경원이도 해랑이가 소개해서 온 직원이라 그들은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그들에게 새 음료 레시피를 설명해주고 카페를 나와 집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집에 도착하자 몸이 무너질듯이 피곤함이 몰려왔다.

소파에 앉아 있으니 해가 지는지 발코니 창너머 한강다리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시의 밤은 두개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밤하늘에는 별조차 반짝거리지 못하도록 탁하고 어둑한 검은 장막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 밑에는 차량 불빛이 꼬리를 물며 연속적인 빛의 물결이 일었다.

한강다리와 고층빌딩들은 저마다 빛으로 물들여 매혹적인 자태를 드러내며 빛의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도시의 밤하늘과 도심 야경은 어쩐지 나와 닮아 있었다.

밤하늘의 어두운 장막은 어둡고 깊은 나의 심연과 같았고

도심야경의 화려함은 나를 포장하고 있는 배경들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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