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림자놀이

6. 전경

by 운정





엄마를 마중하러 극장 앞에 나갔던 그때,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엄마를 마중 나가지 않았다.

하루하루 엄마가 집에 오길 기다렸고, 엄마에게 그 일을 말할 기회를 기다렸다.


‘이리 와, 얼마나 혼자서 힘들었냐. 이제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엄마가 나를 안아주는 장면을 상상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엄마가 괜찮다 해주니까 나 이제 괜찮은 것 같아.'


이렇게 말하리라 연습하곤 했다.

그런데 좀처럼 말할 기회는 오지 않았고, 어쩌다 막상 엄마와 단둘이 있으면 내 몸은 얼어붙었고 내 입은 굳게 다물어졌다.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를 하거나 징징대면 엄마는 화를 내거나 속상해했다.

누군가가 속상할 것 같은 말은 걸러내고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점점 나의 감정과 생각은 걸러 내고 짧게 간단하게 사실만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표정을 살피고 그 사람의 생각을 읽고 그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내려는 순간 갑자기 심장은 덜덜거리고 머릿속이 하얗게 아득해지고 입은 얼어붙은 듯 다물어졌다.

숨을 가다듬으며 조용히 소리 없이 엄마옆에 그리고 사람들 옆에 붙어살고 있었다.


점점 그렇게 나는 내 마음과 멀어져 갔다.

멀어져 간 내 마음의 존재를 부인하며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순하게 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에게 순하도록 하려면 내가 더 순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안전한 세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원했다.

가족과 몇 안 되는 친구사이, 그리고 아빠와 나의 서재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외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은신처에서만 머물렀다.


그러나 점점 내가 접해야 할 세상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넓어지고 있었다.

사람이 많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멀리 더 멀리 가야 했다.

은신처와 멀어질수록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내 몸과 마음은 긴장하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나의 움직임의 지도적 면적이 넓어질수록 내적 두려움도 커져만 갔다.

긴장이 반복되면 적응을 하는지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함께 점심을 먹고 가끔은 산책을 하면서 긴장이 풀어질 때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하는 몇몇 친구도 생겼다.


그러나 내가 예측할 수 없는,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넘어지기 일쑤였다.


내가 중학3학년이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가장 일찍 학교 교실에 들어섰다.

책상 옆구리에 튀어나온 고리에 가방을 걸고 신발주머니에서 실내화를 꺼내고 있는데 내 뒷자리 친구가 들어와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 아이는 내가 뒤돌아 같이 점심도시락을 먹던 친하게 지내는 몇 안 되는 친구였다.


“안녕”

나는 반갑게 먼저 인사하며 그녀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도는 순간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자그만 눈이 치켜 올라감과 동시에 소리가 쨍 칼날이 부딪히듯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야, 그거 내 앞에서 치우지 못해! 더럽게! "


그녀는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나의 손에 들린 실내화와 실내화주머니를 내려다보며 아무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몸이 굳어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러워서 있을 수 없다며 책상과 의자를 박차며 교실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어찌할 줄 몰라 쩔쩔거리며 낯빛과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갑자기 가슴 찢어지는 통증으로 숨을 쉴 수 없어 자리에 털썩 쓰러지듯이 앉았다.

잠시 넋을 잃고 앉아있다가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염없는 눈물이 폭포처럼 흘렀다.

반 아이들이 하나씩 내 주위로 몰려오고 담임선생님이 조회를 하러 들어올 때까지 어깨를 들썩이며 가슴을 웅크리며 소리 없는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선생님이 복도로 따로 불러 이유를 물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우느라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친구의 돌발적 행동에 충격을 받은 나는 나를 개방하는 것에 겁을 먹었다.

때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노출이 되면 호흡곤란과 함께 정신을 잃기도 했다.

그대로 땅으로 꺼져가는 내 몸뚱이를 붙잡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낯빛이 어두워지다가 창백해지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무서워했다.

갑자기 내 안에서 뭔가가 폭발하면서 내 입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낮게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작은 소리로 , ‘으아악’, ‘아 씨‘ ‘아아악‘ 소리를 냈다.

어떤 무엇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나오고 싶어 했다. 그것은 나에게 시한폭탄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으려 할수록 몸이 떨려왔고 심장은 터질 것처럼 요란한 북소리를 내며 고동쳤다.


가슴속 깊이 묻혀있는 돌덩이가 튀어 오르며 가슴을 헤집으면 내 입에서 쌍욕이 나왔다.

혼잣말로 조용하지만 단호하고 짧게 고개를 땅으로 숙이며 욕을 했다.


“씨발!”


이러한 발작적 흥분은 점점 더 자주 더 많이 공격적 에너지를 동반하고 쓰나미처럼 내 가슴을 헤집고 튀어나왔다.

어찌할 바를 모르니 숨을 수밖에, 나는 사람의 눈을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그저 끄덕끄덕하는 순한 아이가 되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학교를 오가는 시간, 쉬는 시간, 숙제를 하거나 시험공부를 하는 시간에 음악을 들었다.

오로지 음악을 듣는 순간은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잊었다.


고1이 되어 더 낯설고 더 큰 학교에 다니게 되자, 더 얌전한 아이가 되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학교방송국에서 음악을 들려주며 교내 실내악단의 연주라고 아나운서가 말했다.

학교 음악 동아리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배울 신입회원을 뽑는다는 말도 했다.

마침 엄마는 우리 자매에게 어릴 때 돈 없어서 못했던 피아노 배우기를 강권하고 있었는데 그때를 기회삼아 나는 말했다.


“난 비올라 배우고 싶어요.”


엄마는 비올라가 뭔지 모르지만 바이올린과 비슷하다는 말에 ‘그래, 그래, 배워봐라.’ 허락해 주었고 나의 부탁으로 학교에 가서 신청 접수까지 해주었다.


비올라의 음색이 맘에 들었고 독주곡이 별로 없어 솔로를 맡아야 할 것도 없고 바이올린과 첼로 등 다른 현악기의 보조적 역할을 하여 비교적 배우기가 쉽다고 생각했다.

고1부터 실내악단 동아리 멤버가 되어 비올라를 배우고 협주를 하면서 음악을 듣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

적어도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는 시간은 내 가슴이 진정이 되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내 안의 무거운 돌덩이로 누르고 있는 뭔가는 틈만 나면 꿈틀거렸다.

대학에 가서도 여전히 나는 실내악단 멤버가 되었고 음악은 나의 없어서는 안 될 마음의 안정제가 되었다.


나에게 더 깊이 다가오려던 지우를 밀어내고 도망치면서 나는 왜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왜 그렇게 못 견디는지,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처음으로 나에게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무서웠다. 끝없는 절망으로 추락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다시 외면하고 말았다.


나의 뮤즈이자 천사인 나의 딸을 충동적 분노로 때리던 그때,

아이를 때리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으면서 머릿속 어딘가에서 희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때서야 절망했다. 나는 미쳐가고 있었다.


아이의 방문학습지 선생이 문을 나가다 말고 뒤돌아서서 망설이는 듯 한숨을 쉬더니 윗입술 끝을 살짝 말아 올리며 말했다.


"어머니가 아프신 것 같아 말 안 하려고 했는데요. 어머니가 매일매일 체크하셔야 해요. 사실 아이가 숙제를 안 하는 건 엄마가 제대로 관리 안 하기 때문이에요."


그것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속 응어리가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그 순간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그동안 잘도 누르고 살아왔는데, 나를 마비시키며 그동안 조용히 살아왔는데...‘


나의 어린 딸의 여리디 여린 볼과 등을 나의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내 입에서는 욕이 튀어나왔다.

아이는 어리벙벙한 표정을 하다 눈물을 꾹꾹 참아보았지만 이내 눈물을 뚝뚝 흘렸다.

분노가 잦아들고 내가 숨을 쉬자, 아이는 나의 허리를 작은 두 팔로 감싸 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못했어요, 엄마, 미안해요, 엄마 아프지 마."


잘 살아온 줄 알았다.

나를 더 죽였어야 했는데, 숨 쉬지 말았어야 했어.

숨 쉴 자격도 없어. 살아 있을 자격도 없어.

수도 없이 내 안에서 나를 죽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조명이 꺼지고 주변 사위는 어둡고 나만 홀로 푸르스름한 조명 한가운데 서 있어 몸속의 물이 말라비틀어지면서 쪼그라든다.

가슴속 응어리가 푸른 조명에 오롯이 드러나 보인다.

순간 강렬한 빛이 나를 물들이며 점점 내 존재는 사라져 갔다.

결국 나의 딸은 내 곁을 떠나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외부의 자극에 따라 움직이고 생각하고 순응하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누구에게 말을 먼저 걸고 대화에 끼어 들어가지 않아야 했다.

요가학원에서 만난 둘째아이반 학부모는 같은 아파트 산다며 신발을 찾아 신을 때까지 나를 세워놓고 함께 가자 했다.

브런치 먹으러 가자고도 했으나 나는 '일 때문에'라고 핑계를 댈 뿐 전혀 응하지 않았다.

나의 모습이 배경보다 더 튀어나오지 않도록 잘 숨어 있어야 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였는데 말이다.

나의 딸에게 나의 금지된 자아를 분노로 표출한 댓가로 나를 죽이는 것으로 벌줄 속셈이었는데 말이다.

내게 감정이 있다거나 생각이 있다거나 욕구가 있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는데 말이다.

그녀와 마주 앉아 있는 그 얼마 지나지 않는 시간에 나를 드러내고야 말다니.

나는 벌거벗고 그녀 앞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민망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사슬에 묶인 듯 꼼짝할 수 없었다.

어느새 그녀의 눈빛이 내 몸속으로 스며들듯이 들어와 버렸다.

마치 수술대에 오른 환자가 오롯이 조명을 받아 선명하고 극명하게 감추어진 환부를 드러내듯 그녀의 눈빛 조명은 나의 치부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녀는 나의 배경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환부를 바라보았다.

이럴 수는 없다. 눈앞이 뿌엿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미정 씨, 정신줄을 놓지 마세요. 제 이마를 바라보세요. 평시를 하시고요.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으세요. 자, 잘하고 있어요.”


그녀의 단호한 목소리가 에코박스에서 나는 것처럼 웅웅거리며 아득히 멀어지다, 가까워지다를 반복했다.

그녀가 시키는 대로 호흡을 일정한 속도로 들숨과 날숨을 의식하며 반복하자 누군가 나의 가슴에 따뜻한 손바닥을 대고 있는 듯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길게 숨을 내쉬며 눈을 뜨고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녀의 얼굴을 아니 전체적인 실루엣조차도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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