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타협
대학졸업을 앞둔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이브에 8살 연상인 남편과 선을 보았다.
그는 친구와 우리 학교에 실내악 공연을 보러 온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 하며 크게 웃는 그의 잇속이 하얗게 보였다.
그는 11살 무렵 부모와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외국학교생활은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막내였던 그는 부모님과 7살 차이 나는 형이 있었지만 부모는 편의점 하느라 바쁘고 형은 대학 기숙사로 들어가 늘 혼자라서 외롭고 낯설어 집 밖에 나가는 것이 무서웠다고 했다.
15살 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큰 고모댁에서 살게 되면서 부모형제와 떨어져 지내는 또 다른 이민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엄마에게 매우 살가운 사람이었고 아들이 없는 엄마는 그를 마치 아들 다루듯이 스스럼없이 등을 토닥거렸다.
그는 프러포즈할 때 들뜬 목소리로 감격스럽다는 듯이 나에게 말했다.
“가족이 멀리 있어 외로웠는데 너를 만나 나 너무 행복해. 엄마 같은 장모님과 이쁜 동생들도 생기고, 무엇보다 착하고 나만 바라봐주는 너를 만난 건 행운이야,
미정아, 나와 결혼해 줄래?”
"김서방이 부모 없이 고모집에서 자라서 얼마나 고생했겠니, 여자가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는 것만큼 큰 복이 어디 있겠어, 엄마 말 들어, 김서방이 의사겠다.
너는 김서방에게 따뜻하게 잘해주면 돼, 너는 고생 안 하고 살아서 가난한 남자, 무능한 남자 만나면 안 돼, 엄마처럼 사업할 능력도 안되고.
그래도 네가 엄마보다 팔자가 좋아, 김서방의 부모도 미국에 있어 시집살이도 안 하고, 네가 복이 많지, 엄마보다, 응, 안 그러니?"
그가 얼마나 외롭게 지내는지, '짠해, 짠해' 하며 엄마는 결혼을 서둘렀다.
나는 우길 힘도 엄마를 이길 논리도 없어 결혼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청소년기에 그는 외국이나 한국이나 다 외로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사교적인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그는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깨달았다고 했다. 한국에서 공부 잘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그는 친척이나 어린 사촌들의 과외는 도맡아 했다. 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 기타 동아리 등 활동을 통해 스스로 자기 입지를 만들어갔다.
그는 공부도 잘했지만 사회문제, 경제소식, 역사지식 등으로 화제가 풍부해 그의 주위에는 사람이 늘 바글거렸다.
그가 결혼식에 초대한 지인들의 수는 양가 가족친지들보다 두세 배는 많았다. 그는 병원, 협회, 취미동아리 등 어디에서도 인싸였다.
그는 재치 있게 말하는 재주가 있었고 타인의 실수에 대해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신입 간호사가 실수해도 경력 많은 간호사에게 잘 가르쳐주라 부탁하는 등 자상하고 배려가 깊은 사람으로 통했다.
너그러우면서도 유머스러운 그는 어디서나 인기가 있었다.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개업 의원의 직원들도 남편을 존경하고 잘 따랐다.
개원 후 직원들이 거의 이직하지 않은 걸 보면 알 수 있기도 했다. 그가 병원을 개업한다고 했을 때 그를 따라 개업의가 된 친구들이 많았다.
그는 엄마의 빌딩을 단숨에 각종 의원으로 채워 넣었고 이 오래된 건물의 부동산가치를 올려놓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와 나는 처음 본 지 반년도 안돼 약혼식과 결혼식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는 결혼하기 전부터 숙박소라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원룸보다 엄마의 극진한 대접을 받는 우리 집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다.
올 때마다 그의 넓은 등을 토닥거리는 엄마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엄마에게 웃음을 주는 딸이 어릴 적부터 되고 싶었건만 정작 엄마는 남의 자식인 사위를 보고 활짝 웃었다.
그는 힘들고 길었던 전공의과정을 마치고 대학병원에서 내과 전문의로 막 시작하려던 단계여서 결혼식과 신혼여행에 시간적인 여유를 낼 수 있었다.
그와 나는 뉴질랜드의 제3의 도시라 하는 남섬의 크라이스처치를 시작으로 뉴질랜드에서 한 달을 머물기로 했다.
뉴질랜드의 북섬과 남섬의 경치 좋은 호텔과 스파를 즐기는 것이 신혼여행의 골자였다. 이것을 제안한 건 그였다.
몇 개국 몇 개 도시를 돌아다니는 관광패키지는 생각만 해도 피로감이 몰려와 딱 질색이었는데 그는 나를 배려하여 신혼여행을 기획한 것이었다.
그런 그와의 결혼은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기에 내게 안심을 주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그와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장장 13시간의 비행 후 크라이스처치에 도착했다.
남섬에서 2주를 보내고 마지막 2주를 오클랜드에서 묵으며 북섬을 여행할 계획이었다.
남편에게 나는 수줍음이 많고 내향적이며 자주 긴장하고 어리바리하여 챙겨줘야 하는 어린 여자아이였을 것이다. 궁금하긴 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온실 속에 화초처럼 자라 자생력 없는 힘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이미지로 볼까?
아니면 가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르는 새침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보고 있을까?
결혼준비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엄마의 경제력과 남편의 직업과 친절한 언행 모두 나의 배경일뿐 나와 상관없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 때 허무함에 빠져들기도 했다.
초민감성은 나의 일상성이기에 그와의 관계에 대해 감응이 없고 공허로운 느낌이 들 때 나의 못되게 세상을 외면하는 냉정함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나의 예민함을 무시하고 사회적 통념과 딸들의 결혼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엄마의 시선으로 선택한 그것, 그것에 대한 대가는 신혼여행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고는 잠자리를 하지 못했다. 못했다고 하는 것은 그는 맨 정신으로는 나의 몸을 안지 못했다.
그는 퇴근 후 식사하는 자리에서 마시기 시작한 술병을 침실에 가지고 들어 왔다. 술을 먹기 시작한다는 것은 그날 잠자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가 어떤 상태더라도 상관없이 그에게 응해줘야 했다. 그의 술버릇은 여자와 자는 것이었다.
크라이처치 시내 호텔에 체크인을 했을 때 여행 출발한 지 16시간 만이라 우리는 매우 피곤해 있었다.
간신히 룸서비스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예민한 나조차도 곧바로 잠이 들 정도였다.
다음날, 남섬에 갈만한 여행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안내소도 들렸다. 가이드도 붙여주는 여행코스가 있어서 우리는 여행계획을 짜며 공원을 거닐고 얘기를 나누었다.
내 취향에 맞는 여행을 기획해 준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미소가 해사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는 그의 통통한 얼굴과 두툼한 콧방울과 입술을 복스럽다고 표현했다.
여행 온 지 3일째, 그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가볍게 술 한잔 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관계를 가졌다.
그를 남자로 받아들여 잠자리를 한다는 게 두렵기는 했으나 경계심이 거의 사라져 있는 상태여서 성인 여성으로서 의젓하게 성관계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선을 보고 결혼식까지 6개월 남짓 기간에 한 번도 손 이외에는 나를 만지거나 딥키스를 하는 행위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러한 그의 신사적인 행동이 그가 나를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루는지,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대하는지에 대한 태도로 보았고 그를 신뢰하고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게 되었다.
그는 거의 매일 잠자리에서 술을 마셨다.
그가 외로운 청소년과 청년기를 어떻게 견뎌왔는지 알기 때문에 처음엔 그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안쓰럽기도 했다. 사람들의 관계가 많아지고 맡는 직분이 많아지며 직업적 위상이 높아질수록 그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그의 피로와 긴장은 술을 통해 풀기 시작하여 섹스로 완결을 짓는 것으로 연합되어 가고 있었다.
첫째 예진이를 가지고 낳는 기간 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던 그의 술버릇이 다시 시작할 무렵,
나의 몸과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나의 몸은 그의 몸을 거부했다. 그의 체취가 다가오면 나의 안쪽 근육에서부터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다가오면 나의 몸 어디에서 오는지 모를 통증이 몰려왔다. 성적 환희와 쾌감이 통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나의 몸과 마음은 무너져갔다.
이제까지 그렇듯 나는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원래 아픈 사람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결혼 후, 나의 엄마는 시름시름 힘이 없는 딸을 챙겨줘야 했고 나의 아이는 지 어미가 죽지 않을까 걱정해야 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3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남편과의 잠자리를 신경질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술냄새가 지긋지긋하다고,
내가 왜 당신의 작부가 되어야 하냐고,
내가 왜 당신의 오물통이 되어야 하냐고,
악을 쓰면서 말하고 싶었다.
차마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나, 많이 아파요. 미안해요."
그는 이불을 머리까지 올리고 긴 한숨을 쉬면서 등을 돌렸다.
그가 때때로 학회세미나참석이나 협회업무 등으로 출장을 가면 술을 마시고 여자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으나 마음에 동요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적당히 타협을 했던 것이다.
아내와 남편관계는 유지할 수 있으나 여자와 남자로서의 관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난 아프니까...'
우리는 적당히 타인의 시선을 돌릴 수 있는 기분 좋은 이슈를 주는 사람이면 되었다.
카페에서 만나면 미소로 화답하는 부부, 때 되면 직원들에게 성과급 보너스를 넉넉히 챙겨주는 사업가 부부, 변하지 않는 표정과 작은 미소만으로도 우아함을 사는 건물상속자 부부,
돈다림질로 구김살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의 적당한 동경이 버무려져 나의 불행감은 감추고도 남았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기반 위에서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살면 되는 거였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내면의 힘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나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내가 알아들을 것이라 여기는지 자꾸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해대었다.
그녀는 말했다.
"누구를 위한 타협인가요?"
"그래서 당신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무엇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당신을 아무 데나 내려놓는 겁니까?"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말문이 막혔다. 답답했다.
그녀에게 오면 쉴새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날,
막힌 말문이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너는 누구니?‘
그녀의 첫 질문은 이랬다.
"저를 어떤 계기로 찾아왔는지 궁금해요.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