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림자놀이 2부

2. 사랑, 그 가벼움에 대하여

by 운정

어느 날, 어떤 남자가 연못 건너편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멀리 있어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젊은 남자였다.

보통 버스킹할 때마다 10여 곡쯤 노래를 부르는데 구경하는 사람은 5~6명 남짓이었고 끝까지 남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던 것 같다.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의 멜로디가 외국인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들릴지 말지 전혀 알 수 없었고 나 또한 관심을 두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정미조 님의 '귀로'와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는 나의 마지막으로 부르는 두곡이었다. 다른 레퍼토리는 그때 그때 달랐다.

그렇듯이 마지막 노래 '귀로'를 마치면 나는 침잠과 고요함으로 들어갔다.

나의 눈은 5센티는 안으로 들어가는 듯 침침하고 검어졌고 나의 혀는 배속 저 아래에 숨어들어 똬리를 틀고 자리를 잡았다. 누구와도 말하지 않았다. 댓거리할 힘이 없었다는 게 적절할 것이다.

이제까지 버스킹 한 뒤 누구와도 대화 나누는 적은 없었다. 나의 손놀림과 걸음걸이와 호흡은 느려져 마치 흐느적거리는 듯 늘어진 상태가 되었다. 악보와 악보대를 주섬주섬 천천히 거두어 가방에 넣었다.

서서히 해는 저물어져 숲은 까맣게 보이고 연못가 가로등이 켜져 불빛이 물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있더니 곧 그 가로등 빛을 가려 나를 어둠에 서게 했다.

그는 너무도 가까이서 또렷한 발성으로 작지만 빠르고 단단하게 말했다.


"일요일마다 어디서 연주해요? 매주 하나요? 혹시 제가 옆에서 바이올린을 켜도 되나요? 함께 연주하면 어때요?"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토씨 하나 빠지지 않고 한껏 이완되었던 나의 청신경을 곧게 세우고 나의 생각의 뇌에 바로 꽂혔다. 지우는 마치 나를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내 옆으로 다가와 질문폭탄을 던졌다. 그의 말들은 나의 감각에 파동을 일으키며 신경계를 자극하며 혈류를 빠르게 돌게 하며 심장이 고동치게 만들었다.


지우는 우연히 브로드웨이에 왔다가 나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기타연주에 인상이 깊었다고 했다. 다음 일요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다시 와보았지만 나를 만나지 못해서 좀 실망스럽긴 했지만 여행자일 수도 있으니 찾는 것이 어렵겠구나 싶어 포기했더랬다. 아쉬운 마음인지, 허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가슴에서 몽글몽글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생소한 감정의 여운이 한주 내내 남아있었다고 했다. 시간이 갈수록 필름사진처럼 눈감고 노래하는 모습이 또렷이 떠오르다 사라지기를 반복하자, 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느 날 아침 꿈인지 모를 음악소리에 잠을 깨어 의식이 돌아오며 갑자기 기타 연주에 바이올린소리를 얹으면 어떤 하모니가 될까 상상하며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그는 일요일마다 뉴욕의 광장들과 공원들을 싸돌아 다닌 지 3주 만에 어스름한 저녁 조명이 채 켜지지 않아 어둑어둑한 센트럴파크 연못둘레 길 위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는 나를 드디어 찾고야 말았다.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그의 질문폭탄에 대답하려고 준비하는 나의 혀의 움직임에 갑자기 나는 당황스러웠다.

나의 혀 때문이든지 그의 말 거는 행동 때문이든지 암튼 한방에 끝내기 위해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유학생활 3년째 접어들던 나는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어디서 봤다고 친한 척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아왔던 터라 그를 그런 부류쯤으로 생각했다. 그는 나를 빤히 보더니 이제까지의 진지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천연덕스럽게 천천히 입을 삐쭉거리며 볼멘소리 하듯 말했다.


“아, 그렇구나. 저는 떼돈 벌려고 뉴욕 왔는데… 님은 안 그런 분이구나. 아, 어쩐담, 난 돈 많이 벌어야 하는데, 아, 그럼 저 돈 좀 벌게 도와주시겠어요? 다음부터 저와 함께 해요. 네? 저 바이올린 쫌 켜요”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그의 눈과 표정이 너무나 귀여웠다.

갑자기 나는 웃음이 터졌다. 나는 웃음이 한번 터지면 멈추기 어려운 병이 있었다.

꺽꺽거리며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웃음이 났다.

나를 따라 그도 허리를 숙이면서까지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우하하하, 웃음소리가 정말 재밌어요. 우하하하흐억흐흐흐”


나의 웃음소리는 친구들 말을 빌리자면, 깔깔거리고 킬킬거리고 꺼억꺼억거리고 캮캮거린다며 소녀에서 할아버지 웃음소리까지 뭐 다양한 캐릭터가 있다나, 나의 웃음소리가 그렇게 별나게 웃긴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센트럴파크가 울리도록 크게 웃었다.

그러다 또 눈이 마주치면 또 크게 웃으며 센트럴파크를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매주는 아니지만 그의 바이올린과 나의 기타, 그리고 나의 노래 버스킹은 제법 사람들이 모여드는 풍경을 만들었다. 나는 눈을 감거나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땅을 내려다보면서 연주하는데 비해 지우는 관중들의 반응에 교감하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그때 나는 클래식 악곡이나 악기에 대해 문외한이어서 지우가 프로 바이올린 연주자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


뉴욕거리의 버스킹, 미소 있을 듯 말듯한 관중의 시선들, 산들산들 바람, 뜨거운 박수와 휘파람소리는 나의 신체적 감각 속에 저장되어 지금도 힘을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의 만남, 그 가벼움에 대하여, 사랑,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오래도록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도 그와의 사랑이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신기하고 놀라워하고 있다.

지우의 손바닥에 나의 손이 착지할 때 탄탄함이 주는 안도감, 그와 체온을 나누며 느끼는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주는 평안함은 다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사람을 믿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나의 신체감각과 인지에 새로운 지각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사랑이 이렇게 가벼울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나에게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헤어짐, 분리, 결별, 이별, 어둠, 내팽개쳐짐, 침묵으로 이어지는 지옥으로의 마음 행로였다. 내면에 차곡차곡 저장이 되어 나를 조종하고 나를 휘두르고 패대기치는 그런 내면의 어두운 그것들은 죄책감, 원망, 슬픔, 모멸감, 수치스러움이 되어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으면 적어도 내면의 어두운 자아와 마주 칠일은 없었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과 사랑하는 일은 완전히 나에게 다른 것이었다. 이해하면 굳이 사랑할 필요가 없었다. 친구와도 직장동료와도 가족들과도 이해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 굳게 믿으며 마음을 내지 않고도 완전한 관계, 문제없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나의 마음을 보지 않고 만나지 않아 내면자아와 분리된 채로 살아내면서 밝고 건강한 척, 성숙한 척 위장하는 나의 꼼수는 결국 나를 고통으로 몰아가 머나먼 이국의 땅으로 오게 하고야 말았다.


혼자서 버스킹 하는 3년 동안 온전히 나의 꽁꽁 싸매고 숨겨놓은 그것들을 관중 앞에서 있는 그대로 풀어내놓으며 온몸으로 연주했다. 연주하는 내내 경직되고 긴장한 나의 몸 감각을 풀어내느라 거의 한 시간 남짓동안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었다.

비로소 머나먼 타지에서 나는 잠을 잘 수 있었다.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노래하는 동안 신체적 감각을 통해 나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감정과 생각을 알아차리고 그것들에 압도당하지 않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노래마디의 긴 호흡을 통해 토해내었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노래하며 감정과 생각에서 놓여나기 시작했다.

노래와 노랫말을 통해 과거 기억의 재경험화 과정을 거치고 나면 드디어 나의 마지막 노래 '귀로'를 부를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장장 6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로에 오를 수 있었다.

지우와 나의 귀로는 일 년 남짓 차이가 있었다.

그는 나보다 일 년 먼저 파견나온지 2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 이듬해 여름까지 남은 박사과정을 마치고 연구조교 6개월을 더하고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귀국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일을 했고 그와 사랑을 했다.


그는 홀로 남은 아버지를 돌보며 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동업자와의 불화를 겪다 결국 사업이 부도가 났고 사업체는 몇푼 건지지도 못하고 동업자의 손으로 넘어갔다. 아버지는 아들이 바이올린 영재라는 것을 알았지만 예고를 가지 못하게 했고 결국 지우는 공대로 진학하며 바이올린은 취미처럼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동업자를 상대로 지난하고 지리한 소송을 계속하였고 아버지는 결국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을 위해 3년간의 간병끝에 먼저 돌아가시고 말았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는 치매판정을 받았다. 그는 아들을 음악대학에 보내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았는지 지우를 보면 항상 말했다.

“우리 아들, 바이올린 연습은 많이 했어? 우리 아들, 아빠에게 바이올린 연주들려 줄래?” 했다.

아버지가 계신 요양병원을 들릴 때면 지우는 늘 바이올린을 매고 다녔다. 아버지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과 가족, 그리고 병원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바이올린 연주를 했다. 그랬더니 요양병원에서 음악회를 열어 봉사활동을 해보는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지우는 요양원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아버지와 환자들을 위해 연주를 했다. 그는 이미 바이올리스트로 유명한 인사였다.

그런 그와의 사랑이 결혼으로 가정을 만들고 가족을 생성하여 조직된다는 그것이 우리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지우와의 사랑이 현실적인 안정으로 다가오기를 두려워한 것은 나였다.

그와의 사랑, 그 가벼움으로 우리는 오랜 연인이 될 수 있었다.


* <귀로> 노래 정미조

'어린 꿈이 놀던 들판을 지나

아지랑이 피던 동산을 넘어

나 그리운 곳으로 돌아가네

멀리 돌고 돌아 그곳에

담벼락에 기대 울던 작은 아이

어느 시간 속에 숨어버렸는지

나 그곳에 조용히 돌아가

그 어린 꿈을 만나려나


무지개가 뜨는 언덕을 찾아

넓은 세상 멀리 헤매 다녔네

그 무지개 어디로 사라지고

높던 해는 기울어가네

새털구름 머문 파란 하늘 아래

푸른 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서

나 그리운 그곳에 간다네

먼 길을 돌아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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