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림자놀이 2부

3. 헌신과 헌신짝

by 운정

아침 일찍부터 어머니가 서두는 모습이 보였다.

할아버지의 제삿날이었다.

어머니가 상기된 모습으로 서대는 모습은 제사준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예닐곱 살이던 나 또한 꼭두새벽부터 아버지를 만날 맘에 들떴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고 세돌이 지날 무렵, 할머니의 강권으로 새 장가를 갔다.

어머니와 내가 있음에도 할머니는 외아들인 당신 아들의 대를 이을 아들을 갖겠다는 일념으로 일가친척 모두 반대하는데도 아버지의 첩을 들이신 거였다. 누가 봐도 첩인데 돌아가실 때까지도 할머니는 그분을 며느리라 여기셨다. 아버지가 새장가를 간 후 바로 어머니에게 무언의 이혼을 요구하셨다. 아침마다 어머니짐을 싸서 마루 끝에 놓기를 하루 같이 수년을 하셨다.

짐이라고 해야 옷가지 몇 벌이 전부인 어머니의 짐은 마루 끝에 헌신짝처럼 놓여있었다.

매일매일 어머니는 아침밥상을 시어머니에게 드리고 나서 마루에 있는 당신의 짐을 거두어 장롱에 풀어 쟁여두었다. 할머니는 못마땅하면서도 체면에 대놓고 나가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며느리에게 눈꼼질과 모욕적인 말로 미움을 한껏 표현하였다. 헌신짝처럼 버려졌던 어머니의 짐은 어머니가 나의 동생, 이 집안의 장남인 아들을 낳은 그 해, 내가 8살이 되던 해부터 볼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그녀도 큰 딸을 낳았거니와 그 이듬해 우리 집 장남인 동생이 태어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그 장남 손주를 끔찍이 아끼고 위하였다.


하여간 아버지는 제삿날에는 혼자 오셨다가 그다음 날 새벽에 가시곤 했다.

동이 트기도 전 아버지의 기침소리와 어머니의 한숨소리가 나지막이 들리면 나는 가만가만 일어나 세수하고 어머니가 다려놓은 깨끗한 옷을 갈아입고 책가방을 주섬주섬 싸고는 마루 끝에 앉아 아버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나와 대청마루에 서서 먼 산을 한번 바라보다 마루 끝에 앉은 나를 바라보았다.

마루를 내려서며 또 한 번 기침소리를 내고 성큼성큼 대문을 향해 가면 나는 종종걸음으로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다. 아버지는 읍내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떠날 것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걷는 새벽길에 안개가 끼거나 우산을 쓰는 비가 오는 날이면 아버지의 뒷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죽어라고 뛰듯 걸어 아버지의 손이 내 어깨춤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아버지는 힐긋힐긋 나를 보았지만 죽어도 웃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 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으며 함께 걷는 그 새벽길은 아버지를 오롯이 나만 가지는 시간이었고 비록 대부분 뒷모습이지만 나만 아버지를 바라보는 공간이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집과 터미널 중간쯤에 있었다. 아직 너무 이른 새벽이라 아무도 오지 않은 학교 앞에 도착하면 나는 학교 문에 기대어 어서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고 터미널로 향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다려준 하얀 블라우스에 얼룩이 져도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얼마를 그렇게 울다가 학교 교실에 들어가서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어머니의 고생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 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밭에서 일하다 쓰러졌다.

할머니는 9개월을 식물인간처럼 누워있었다.

어머니는 늘 해왔던 것처럼, 늘 할머니의 수발을 들었던 것처럼 정신은 있으나 마나 하고 말도 못 하고 일어나지도 못하고 숟가락도 들지 못하는 할머니를 간병했다. 똥오줌을 받아내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미음을 먹이고 축 늘어진 몸뚱이를 깨끗한 요에 뉘었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근심하는 소리나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으셨다.

매주말이면 아버지는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그녀를 데리고 할머니를 보러 왔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녀에게 온통 향해 있다는 것은 아무리 어린 나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그녀는 그날 할머니의 간병을 자청했다.


"이 년이 어디서 배워먹지 못한 짓을 하는 거야, 어서 나가! 나가! 나가라고! 니가 뭔데, 니가 뭔데에!!"


할머니의 방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났다. 어머니 소리였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소리인 줄 몰랐다. 어머니가 당신 자식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한 번도 큰 소리를 내본 적도 욕을 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서슬이 퍼런 어머니의 절규에 아버지도 그녀도 놀라 자빠졌다.

아버지가 첩살이하는 그 세월 동안 어머니는 말소리나 몸짓이 부드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눈 한번 크게 뜨지 않았고 볼멘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아버지는 추석이나 설명절, 할머니 생신날에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 오곤 했다. 그런 날은 우리를 할머니 방에 재우고 어머니는 옆집 친한 아주머니댁에 가서 잤다.


그렇게 살아온 어머니였다. 참고 살아온 그 세월의 공덕과 헌신을 헌신짝처럼 여기는 그들의 오만을 어머니는 된 소리 한 번으로 물리쳤다. 어머니는 자존심을 그렇게 지켰고 그들에게 수치심을 심어주었다. 아버지는 그녀를 우리 집으로 다시는 데려 오지 못했다.

끝내 할머니는 돌아가시면서 어머니와의 이생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내고 말았다.

돌아가기 전 잠시 정신이 돌아와 아버지의 그녀를 찾았고 그녀를 보고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어머니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그 미소로 할머니는 그녀가 당신의 며느리라는 공식적인 선언을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녀와 자식들 모두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말을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제사, 명절이 되면 혼자서 오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그녀에게로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 어느 날, 어머니는 말했다.


"내가 이겼지, 뭐, 장남을 내가 낳았으니. 어쩌겠어."


나는 맏이이며 큰 딸로 어머니를 도와 살림밑천이 되어야 했으나 어머니는 나를 중학교부터 일찍이 도시로 보내 공부를 하게 했다. 동생도 초등학생이 되자 내가 있는 도시로 보내 공부를 시켰다. 어머니의 시골살이 생활이야 너무나 뻔했고 살림살이 키울 여력도 없었지만 고운 옷 한 벌 사 입지 않고 재봉질로 만들어 입으며 쌀독에 한 줌 한 줌 쌀을 모아 우리의 학비를 대주었다.

어머니의 헌신이 헌신짝으로 버려지지 않았던 그날은 어머니가 할머니로부터,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갈망하는 일을 멈추던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타지로 떠난 자식들에게도 그리 당신 마음을 내비치거나 기대를 드러내는 언사를 하지 않았다. 무심하고 덤덤하게 대하는 어머니는 우리에게 나무그늘과도 같은 존재였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그리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어도 어머니의 그늘에서는 어두웠지만 안전했다.


내 가슴에는 바람이 부는 언덕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 바람 부는 언덕의 허허로움 속에서 나는 추웠다.

언덕을 넘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나의 내면에 누군가를 담아내고 사랑하는 것 따위가 들어 올 틈과 여유가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되어 불우이웃을 돕자던 과대표의 모금함을 지나쳐가면서 가슴이 메말라 강퍅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보아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메마른 눈빛, 표정 없는 표정을 나는 알지 못했다. 늘 언덕에 서서 나의 눈은 하늘에 머물렀고 내 마음은 어딘지 알 수 없는 미래에만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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