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림자놀이 2부

5. 검은 강을 건너다

by 운정

"어이구, 이게 누구야? 어서 와, 어서 와, 자 이리 앉아요. 김정선교수"


한교수는 환한 미소와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맞이했다.


"이게 얼마만이야, 한국 들어오고 얼굴은 이 제보는 구만. 상담센터 오픈은 잘 준비되고 있는 거지?"


"소식 아직 못 들었지? 나도 어제 만나서 들었어. 윤필상 그 친구 다시 학교로 돌아오기로 했어. 벌써 10년이 지났네 그려. 그 사람 참 그동안 부친의 사업을 맡아하느라 고생 많이 했지. 그 친구 보기보단 여간 소심한 사람이 아니거든. 사업엔 성정이 안 맞았을 텐데.. 그때 그일 만 없었더라면 진즉에 우리 대학 교수로 재직했을 텐데. 이제라도 제자리로 돌아오니 다행이지, 뭐. 그 친구 이혼하고 딸아이하나 있는데 엑스와이프가 데려가서 혼자된 지 좀 되었지. 자네 필상이랑 친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지내나? 그래 연락해도 자기 얘기할 사람은 아니지, 좀 말수가 적어야지. 나도 그 회사 인사과에 있던 제자가 얘기해 줘서 알았지."




필상의 연구에 참여한 대가로 나는 대학원에 수석입학을 했고 전액 장학금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석사과정 3학기가 끝난 6월 말에 우리의 계약기간이 만료가 되어 더 이상 연구실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필상은 매일 학교에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석사 논문준비를 하면서 하교시간이라는 게 대중 몇 시라는 것이 없었지만 필상은 언제나 6시 정도에 맞춰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렸다. 저녁을 사준다는 핑계로 거의 매일 데리러 오면서도 그는 한교수나 다른 아는 사람들과 함께 나를 만나지 않았다. 그는 단둘이 있기를 원했고 나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게 행복하다며 한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이제 2년간의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쓰기 시작한 나는 그가 가끔씩 언급하는 결혼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곤 했다. 하긴 그는 나보다 아홉 살이나 많으니 벌써 서른다섯을 향해 가고 있었다. 우리가 만난 지도 벌써 3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는 수원에 있는 대학의 조교수자리를 제안받았고 내년이면 수원으로 거점을 옮겨야 했다. 막연히 그와의 미래를 생각한 적은 있지만 나는 하루하루 벅차게 살아내느라 그와의 사랑에 현실감이 없었다. 석사과정 중 나머지 1년은 학생상담센터에서 상담과 행정일을 하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가 우리의 미래 얘기를 하면 웃으며 농담처럼 넘겼다. 그러다 이렇게 가볍게 웃어도 되는 건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그의 결혼언급이 농담이기를 진심으로 바란 적도 있었다.

이대로 지내는 게 좋았다.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공기처럼, 우주처럼, 하늘처럼 언제나 내 곁에 있어달라고,

아직은 나의 미래를 모르겠다고,

결혼, 우리 미래 그것은 아직 내겐 현실이 아니라고,

그 얘기는 나중에 아주 나중에 내가 준비가 되면 그때 말해주라고,

그리고 나를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나는 말하지 못하고 웃음으로 때우며 그의 말을 막아서며 다른 화제로 돌리곤 했다.


일요일 아침, 10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마당가의 작은 화단에 물을 주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여보세요' 하고 약간 목소리를 높였다.


"나야."


그였다. 반가웠다. 나도 바쁘긴 했지만 요즘 그가 바쁜지 거의 2주가 넘도록 못 만나고 있었다.

논문 심사 전 한교수에게 점검을 받은 뒤에 조금 짬이 날 것 같아 다음 주 수요일 저녁에 약속을 해둔 터였다.


"어어, 목소리가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그의 목소리는 잠겨서 겨우 소리를 내는 듯 말하기 힘겨워하는 듯 착 가라앉아 쉰소리가 났다.


"아니야, 괜찮아.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했어......."


조용했다.


"여보세요? 왜 말을 안 해요?"


"정선아, 알지?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정선아, 사랑해.. 사랑해.. 영원히.. 너를 사랑해.. "


죽으러 가는 듯 곧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그의 목소리에 심장이 두근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 있어요, 어디 가요? 왜 그래요? 어색하게?"


나는 애써 웃어보려 농치듯 말했다.


"아니야, 나중에.. 그리고 이번 주는... 못 만날 것 같다. 다음에.. 다음에.."


전화가 끊어졌다.


갑자기 어젯밤 꿈이 떠올랐다. 그렇잖아도 꿈을 꾸다 정신이 들무렵 나는 울고 있었다.


그와 아무도 없는 어느 강가에 다다라 있었다.

강 저 멀리 안개가 자욱했고 너머엔 온통 검은빛이었다.

작은 배 한 척이 있었다.

그와 나란히 서 있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흐미한 안개 같은 것이 그와 나 사이에 껴있었다.

그가 혼자 배에 올라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따라가려고 움직이려 했으나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뒷모습을 실은 배는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를 불렀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목 놓아 부르려고 애를 쓰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하염없이 그가 탄 배는 멀어져 갔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고 나를 등지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점이 되어 안개를 지나 검은 강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그때서야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입에 손을 모아 그를 불렀다. 목놓아 소리 내어 울면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꿈에서 깨어나보니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어허억 헉'거리며 울고 있었다.

어깨를 진정하고 눈을 뜨니 눈물 없는 마른 울음소리에 목이 아팠고 가슴이 먹먹했다.


'그 사람 지금 어디 있는 거지? 전화 그 목소리 뭐지?'


머리가 지끈거렸고 열감이 느껴지며 몸살 기운이 있었다.

흔들거리는 몸을 겨우 이끌고 물 한잔을 들고 마루로 나와 창가의 햇살을 받고 앉아 있었다.

조금씩 가슴이 진정이 되었다.

집이 작아 한눈에 다 들어오는 집안을 둘러보니 어머니는 나가고 없었다.

벌써 동그란 상보안에 반찬을 차려 덮어놓고 텃밭에 가신 모양이었다.

마당가의 가을꽃들이 시든 꽃과 막 피어나는 꽃, 마른풀과 푸릇한 풀이 뒤섞여 있었다. 물주다 만 양동이가 엎어져 있는 것이 보였지만 자꾸만 까라지는 몸뚱이를 일으킬 수가 없었다.


멍하니 마루 끝에 앉아 마당을 내려다보며 늦가을 한낮의 따사로운 햇빛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잠이 들려했다.


대문이 열리고 김장배추를 솎았는지 한가득 채소가 든 바구니를 끼고 어머니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가, 아가, 워째 얼굴이 이러냐, 응, 뭔 일이냐.. 온몸이 불덩이네, 이것이 왜 이런다냐?"


어머니의 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더니 나의 머릿속은 블랙아웃이 되었다.


차가운 물수건의 감촉이 머리와 손바닥에서 느껴졌다.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가, 정신 들어? 밥 한술 먹자, 밥 먹으면 힘이 날 거야, 그리고 병원 가자, 응? 기운 차릴 수 있겠냐? 응?"


내 어깨 밑에 손을 넣고 일으키는 힘을 받아 상체를 들어 올렸다.

어머니는 마루에 걸터앉아 옆으로 쓰러진 나를 거실 끝에 뉘이고 나를 주무르다 머리에 물수건을 올리고 손바닥과 얼굴, 가슴을 열어 물수건으로 닦아 주며 신체감각을 깨어내 정신이 들게 했던 모양이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남동생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제 늦게까지 설문지를 분석하기 위해 통계처리하느라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새벽에 잠이 들었었다.


어머니의 말에 순순히 따라 밥 한술 뜨고 아스피린 한 알 먹고 나니 지끈거리는 두통과 열이 조금 가라앉았다.

여전히 심장은 벌벌 거리는 듯 미세한 고동이 멈추지 않아 숨을 고르게 쉬기가 어려웠다. 뭐라도 해야 했다.


한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웬일이야, 어디야?"


한교수 숨소리가 가빴다.


"죄송해요. 휴일에 쉬시는데.. 통계처리에 조금 막히는게 있어서요. 오늘 처리를 다해야 내일 교수님을 뵐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 논문이 바쁘긴 하지. 그렇잖아도 오늘 다들 모였는데 자네가 왜 안 보이나 했어. 갑작스럽게 결혼한다 해서 나도 좀 놀라긴 했는데, 그래도 아무리 바빠도 이런 데는 와야지. 나 지금 필상이 그 친구 결혼식 다녀오는 길이야. 그래 어쨌든 난 아직 옷도 못 갈아입었어. 지금 오후 5시니까 이따 6시쯤 통화하자. 그래도 되지?"


전화기를 놓자마자 나는 다시 혼절을 했다.

작은 골목길에 앰뷸런스가 오고 나는 병원에 실려가 수액을 맞고 정신이 들었다가 다시 혼절하기를 반복하다, 삼일이 지나서야 겨우 깨어났다.

그리고 이틀내내 잠만 잤다.


'그놈의 공부 이제 때려치워라, 공부가 아조 사람 잡네, 사람 잡어, 일하랴, 공부하랴, 불쌍한 내 새끼, 워째 이런다냐?'


어머니는 잠든 것이 아니란 것을 알지만 내가 눈을 감으면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머니와 남동생은 번갈아가며 나를 지켰다.

입원한 지 5일이나 지나 겨우 미음과 죽을 먹기 시작하면서 퇴원했다.

겨울로 접어들었는지 몸을 꽁꽁 싸매고도 추웠다.

집으로 가는 길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흘렀다.


나의 석사논문 심사는 기약 없이 미뤄졌다. 한교수는 역정을 냈다.


"이제까지 잘해오다 막판에 왜 이런 실수를 자꾸 하는 거지?"


교수와의 다음날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했고 다시 약속 잡았지만 학교에 가지 못했다.

집을 나서면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골목 끝에 다 달아 큰길로 나서다 돌담벼락에 기대서 있다, 다시 걷다 주저앉았다. 한교수와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했다.

공황장애였다. 신경성 우울증까지 복합 증상으로 결국 휴학계를 제출했다.


동생은 주말이면 나와 놀아주었다.

휴학하고 집에 있는 동안 동생은 기타를 동아리에서 배웠다고 하면서 나에게 기타를 가르쳐주었고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가주었다.


"일하고 공부만 했지, 동아리 같은 거 한번 못해보고.. 이참에 좀 쉬어 누나, 어렸을 때 기억나? 노래 많이 불러줬잖아. 그때 우리 누나 노래 잘 불렀는데.."


이때 나는 낮이나 밤이나 검은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조금씩 안개를 헤치며 밝아오는 빛이 있었다.

그 빛 속에서 가물가물 그의 얼굴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춥고 어두운 회색빛 강가에 홀로 서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어느 날부터 나는 회색빛 안개를 넘어 검은 강 쪽으로 나를 내디뎌 보았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디뎠다.

그리고 검은 강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만치 밝은 빛이 있었다.

밝은 빛을 향하여 검은 강으로 하염없이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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