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림자놀이 2부

6. 창과 방패

by 운정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보이지 않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 없이 살아온 시간이 많았건만 나에게 그가 없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그가 매일 꿈속으로 찾아왔다. 저만치 그가 나에게로 오고 있었다. 분명히 나를 향해 나를 보면서 내 이름을 부르며 왔다.

우리 사이 간격이 좁아져 가까워지면 그는 그냥 나를 지나쳐갔다. 돌아보면 그의 뒷모습을 볼 뿐이었다.

한 번도 그의 팔을 잡거나 얼굴을 만지지 못했다. 나는 매일 밤 울면서 깨어났다.


어느 날 뉴스를 보았다.

그의 사진이 TV화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모회사 D건설을 둔 D그룹 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나고 장남이 회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D그룹 회장은 둘째 아들인 고 윤인상 D건설 부사장이 3년 전 미국 출장 중 교통사고로 사망함에 따라 회사경영권을 자식에게 세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런데 이제 회사경영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던 장남에게 주식증여를 하면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장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평생 일군 회사는 국내 굴지의 건설사와 함께 여러 자회사를 둔 그룹이 되었다.

동생은 자회사 사장의 장녀와 결혼을 했고 아버지의 건설사가 그룹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이루어 주었다.

그는 전혀 회사경영에 관심이 없는 반면에 그의 동생은 재계에서 그룹총수감으로 촉망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나와 함께 연구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그룹경영에 참여했던 동생이 사망했다.

그가 유난히 연구에 집착했던 그의 암울한 가족적 비극의 시기를 나와 함께 건너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경영일선에 나서 줄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그의 완강함에 그의 연구와 박사학위 받을 때까지만 기다려 주겠노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던 것이다.

그는 예감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를 영영 보지 못할 것을 말이다.

사랑에 빠진 남녀가 '영원히 사랑해'라고 말하기 어디 쉽던가?

헤어짐을 예감하지 않고는 그런 고백을 할리가 없지 않던가 말이다.

그는 나를 품에 안고 늘 말했다.


"사랑해, 영원히.. 사랑해."



그도 죽은 동생과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일군 그룹의 성장토대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그는 나의 곁을 떠났다.


그는 그를 알기 전까지 감히 꿈꿔볼 수 없었던 미래라는 불안한 시공간을 나에게 열어주었다.

그의 사랑 그리고 그의 존재가 세상이란 전쟁터에서 가장 위력적으로 나를 대신해 싸워주는 창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랑, 그리고 이별, 이어지는 그의 부재는 창이 되어 나의 심장을 겨누었다.






나의 동생은 소도시에서 손꼽히는 수재였고 지역인재전형으로 그 어려운 대학에 합격했다.

아르바이트하면서도 성적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사는 아이였다.

나보다 7살이 어린 동생은 10살이 넘어서 아버지가 돌아왔지만 동생은 아버지와 거의 함께 지낸 시간이 없었다.

아버지에 대해 남보다 못한 감정이 컸던 동생은 아버지에게 댓꾸를 할 때면 늘 불퉁거렸다.


아버지와 대화하기 어려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아버지의 뒷모습을 졸졸 따라가며 떠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컸던 나는 아버지를 아예 쳐다보지도 못했다.

아버지의 슬픈 눈을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났다.

아버지는 두고 온 다른 자식들이 얼마나 눈에 밟혔는지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슬픔을 눈에 가득 담고 살았다.

나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랑하는 그녀가 왜 헤어졌는지, 아니 아버지가 왜 돌아왔는지 묻지 못했다.

하늘을 자주 쳐다 보고 한숨을 쉬는 아버지를 먼발치에서 바라볼 뿐이었다. 금방 아버지가 다시 떠나버릴까 봐 두려웠다.

아무 말 못 하는 나와 달리 동생은 아버지에게 할 말을 다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눈을 크게 뜨거나 목소리를 높이면 아버지에게 득달같이 대들며 큰소리로 막아섰다.


"아버지가 해준 게 뭐가 있다고 그러세요? 그럴 거면 다시 가시란 말이에요!"


혼비백산해서 들어오는 어머니에게 혼이 나고서야 동생은 씩씩거리며 방을 나갔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두고 집으로 돌아온 지 10년 만에 급성폐렴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마도 짐작컨대 아버지는 평생 가슴 아픈 사람이었으리라. 아버지는 술은 전혀 마시지 않았지만 줄담배를 피우며 그의 삶의 애환과 한숨을 담배연기로 뿜어 내었다.

아버지의 담배 피우며 하늘을 쳐다보던 그 모습은 지금까지도 아버지의 슬픔에 대한 나의 심상으로 남아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시골집과 얼마 안 되는 밭뙈기를 팔고 우리가 있는 봉천동 산동네의 작은 집을 사 우리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동생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나와 지방 소도시에서부터 함께 살아온 터라 우리 남매의 우정과 의리는 각별했다.

집뒤 야산으로 가는 길에 작은 공터가 있어 어머니는 재미 삼아 텃밭을 일구어 채소 푸성귀들을 심었다.

동생이 고생을 자초한다고 짜증을 내도 어머니는 '이것도 일이다냐? 시골일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여.' 하시며 웃으셨다.

서울살이를 시작하면서 재봉솜씨가 좋은 어머니는 아랫동네시장 이불집에서 바느질과 재봉질을 해주며 삯을 받아 생계를 꾸리셨다.

내가 소도시에서 동생과 학교 다니며 일주일에 한 번씩 시골집에 다니러 가면 일요일 오후 집 떠나는 어린 자식들 손에 어머니는 바리바리 반찬과 생활용품을 들려주시더니

이제 함께 살게 되어서도 다 큰 우리에게 여전히 입을 거 먹을 거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나 당신 남편에게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지지대이며 삶의 기둥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두 집살이 15년 만에 돌아왔어도 아버지에게 과거의 일을 묻거나, 왜 그랬냐고 따지거나, 가난함에 대해 탓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돌아와 줘서 고맙다는 말이나 표현을 한 거는 아니었겠지만 그저 상황에 순응하고 당신의 감정과 생각을 남의 것처럼 받아내고 바라보았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우리 남매는 세상살이에 지쳐 쓰러질 지경에 이르러도 왜 절망의 나락으로 가지 않았는지를 말이다.

어머니는 우리의 방패였다. 세상의 모든 창으로부터 막아서는 무겁디 무거운 방패였다.

그와의 이별이 창이 되어 나를 찌르고 피를 흘리던 그때, 삶이 멈춰 선 그 순간에도 어머니는 나의 방패가 되어주고 있었다.

어머니는 무거운 방패를 들고 선연히 보이는 고통 앞에 비켜서지 않고 언제나 마주 서 우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 죽어나가도록 방구석에 쳐박혀, 멍하니 때로는 허억어억거리는 큰딸의 숨죽인 울음소리에 함께 가슴저렸으리라.

어미는 애먼 가슴이 저리도록 어떤 사연으로 딸이 고통을 겪고 있는지 백번은 더 묻고 대신 그 무게를 져주고 싶었으리라.

밤을 지새도록 방문밖을 지키며 인기척을 내며 서성이면서도 왜그러냐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묻지도 않았고 속상함을 내비치지도 않았다.

그저 바라보고 스스로 추스릴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어머니는 나를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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