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림자놀이 3부

3. 삶이 움직이다

by 운정

어느 날 상담이 끝나갈 무렵, 미정은 고백할게 있다며 분위기를 잡았다.

말하기 전에 멋적은듯이 살짝 입가에 미소를 띠우고 정선을 흘깃 보았다.

미정은 한번 숨을 크게 쉬더니 정지우선생은 대학교 실내악단 동아리 후배이며 현재 아들의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고 또한 정선과 지우가 연인임을 상담받기전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단숨에 삼키듯이 말했다.

그리고 한숨을 푸욱 쉬었다.

지우를 언급할땐 눈빛에 미소가 서렸고 '연인'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잠시 숨을 고루었다.

실내악단 공연, 학교 풍경, 지우와의 대화장면을 떠올리며 그녀는 아련하고 꿈꾸는 듯 가느다란 눈을 하며 천천히 이어갔다. 그녀의 말투는 담담했고 차분했지만 밝았다.


“지우는 그 때 참 멋있었는데… 훕, 지금 안그렇다는 것은 아니에요.“


먼저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나중 사람이 좀 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 시절, 그 때의 정취는 그들만의 것이기 때문이리라.

때때로 아름답고 황홀했던 젊은 날이 떠오르는 듯 미정의 눈에는 밝은 불이 켜졌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정선은 미정에게 반짝반짝 빛을 내는 요정이 내려 앉아 있는 듯 보였다.

마치 반딧불이처럼 요정들이 둘 사이를 떠다니는 것처럼 느꼈다.

정선은 덩다라 그들의 추억을 넘나들며 즐거웠다.

미정의 이야기 솜씨에 빨려들어가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났다.


“아드님 바이올린 선생으로 지우를 소개받았을 때 정말 반가웠겠어요.“


“처음에는 놀랐죠. 왜냐하면 동창들과 거의 교류를 안하다가 지우얘기를 들으니 마치 바깥 세상을 처음 본 듯했지요. 우리집에 처음 왔을 때 저는 안절부절 못하겠더라고요. 내가 어떻게 보일까? 그는 어떤 모습일까? 늙었을까? 그대로일까? 한마디로 제 정신이 아니었죠.”


정선은 미정의 추억담을 들으며 대학시절, 그리고 청춘을 아름답게 보낸 그들에게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 시절 알바과외 서너개를 뛰고 근로장학생으로 학교에서도 일하며 공부하느라 바쁘게 살고 있었다.

학교 친구들과 음악동아리 공연을 보러가기는 커녕 어떤 동아리 활동도 정선에게는 사치였던 시절이었다.


정선은 미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시절 자신의 삶이 오버랩이 되면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다른 학교 음대 여대생들이 지우를 보러 원정오기도 했지요. 유명한 중앙신문에 실내악단 공연평이 실리는 바람에 유명세를 치루었거든요.“


미정도 그 시절을 회상하며 잠시 그 시절에 머물렀다.


“아 참, 지우선생님 이야기하다 여기까지 왔네요. 암튼 선생님과 사귄다는 것을 알고 저도 놀라서 한동안 모른 척해야 할지, 말해야 할 지 좀 고민했어요.”


그녀가 지우와 정선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사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그리고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 앞에 세상 주변에 관한 모든 정보와 상황이 펼쳐짐을 의미한다.

그렇다. 그녀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안에는 그녀가 사는 세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그녀가 하나하나 직면하고 경험하며 넘어 가는 것은 그녀의 몫이 될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수용력이 커져있었고 본연의 자신의 능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주변 인물에 대한 질투하는 마음이든 흥미로운 관심이든 어떤 마음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좋은 조짐이었다.

자신을 모른 척하지 않기, 감정과 생각, 그리고 욕구를 알아차리기, 그리고 표현하기는 세상으로 성큼 걸어 나올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즈음 그녀는 자신의 딸을 데려오고자하는 마음을 내었고 드디어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제가 엄마라는 사실을 까먹고 있다가 생각난처럼 소스라치게 놀라곤 해요. 참 우습죠? 애를 낳다고 다 엄마는 아닌가봐요. 제 자신안에 갇혀 전혀 현실을 인식하지 못했던것 같아요.”


그녀의 자각하는 힘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더 증폭하는 것 같았다.


“지금 여기 머무는 이 시간, 이 공간에 우리 예진이와 함께 있고 싶어요. 예진이가 저처럼 살면 안되잖아요.“


그녀가 자신의 삶을 조망하기 시작했다.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마도 곧 그녀의 공간도 움직이게 될것이다.

그녀의 삶이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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