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완벽한 결혼
미정은 예진이를 아예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3개월 정도는 미국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 예진이를 국제중으로 보내야 할지, 동네 근처 가장 가까운 학교를 보내야 할지 여러 사람을 통해 상담하고 알아보느라 미정은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빴다.
미정이 없는 동안 아침마다 예솔이와 함께 식사해라, 학교에서 가져오는 가정통신문이나 휴대폰으로 오는 연락사항 등을 체크해라, 관리비며 이것저것 지출확인해라 등 뭐라 뭐라 잔소리를 끝없이 해대었다.
창규는 미정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바삐 움직이는 미정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미정이 상담을 받기 시작하고 벌써 3개월이 지났다.
6층에 새로 생긴 상담소에 다닌다고 했다. 요가와 수영도 하러 다닌다고 했다.
창규는 그녀의 컨디션이 좋아지면서 내심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어쩐지 한편으로 좀 께름칙한 게 개운치가 않아 자신도 상담을 받아봐야 하나?라고 생각하며 픽 웃었다.
미정이 눈빛이 달라졌다. 달라진 건 눈빛만이 아니었다.
창규를 쳐다보며 말을 했으며 목소리톤이 높아졌고 커졌다.
집안일을 할 때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았다.
여기저기 휙 휙 집안 곳곳에서 그녀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이렇게나 말이 많았나? 싶은 정도로 말을 많이 했다.
심지어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놀란 것은 장모도 마찬가지였다.
미정이 좋은 일이 있다고 소리 내어 웃을 사람이 아닌 것은 장모는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장모에게 반대하는 말도 따박 따박, 그것도 웃으며 했다.
아니 웃음소리만 내는 게 아니라 얼굴을 들고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눈을 반짝거리며 밝은 미소로 말했다.
"엄마 말씀은 알아들었어요, 예진이와 예솔이 학교문제는 제가 애들 아빠와 상의해서 결정할게요. 그리고 엄마, 엄마가 일일이 간장게장이니 뭐니 반찬 만들지 마세요. 드시고 싶으시면 제가 담가서 가져다 드릴게요.
필요하면 부탁드릴 테니 저 없을 때 제발 저희 냉장고에 갖다 넣지 마세요, 아셨죠?"
미정이가 하는 말에 눈동그라 지며 놀라다 급 시무룩해지는 장모의 얼굴을 쳐다보다 눈이 마주쳐 어색한 웃음을 지은 적도 있었다.
사실 미정이가 달라졌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녀가 아파 보이는 눈빛과 얼굴색이 원래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된 것이지 달라진 것은 아니니 말이다.
창규는 아내의 힘이 없고 아픈 모습이 일상적이고 본디 모습이라고 착각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생생하고 발랄하고 몸짓이 힘 있고 건강한 사람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가고 놀랐다.
놀랄 뿐만 아니라 흥분이 되었다. 몸속 어디선가 활기가 마중 나오고 있었다.
미정의 카페에서 일하는 해랑이를 처음 보았을 때 그랬다.
해랑의 건강하고 발랄함은 빛이 났으며 창규를 흥분하게 했다.
미정의 달라짐은 분명 놀랄 일이었다.
창규가 미정을 소개받아 처음 만난 날부터 그녀는 힘이 없었고 말이 없었다.
신접살림살이 하나하나 장모가 나서서 골라 사주었다.
창규는 미정이가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하고 내향적이어서라고만 생각했다.
미정과 같은 여자와 결혼하다니, 창규는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완벽한 여자였다. 창규가 결혼하기에 매우 완벽한 여자였다. 예쁘고 차분하고 조용했다.
그리고 부자였다.
농담처럼 친구들은 가장 부러운것은 장모가 바로 강남의 건물주라고 말했다.
결혼하고 내내 그녀의 혈색은 돌아오지 않았다.
예진이를 낳고 조금 나아지는 듯했으나 다시 그녀는 우울하고 힘이 없는 모습이 원래 모습인 듯 돌아갔다.
그녀의 우울증은 만성이 되었다. 그런 모습에 익숙하고 오히려 편하기까지 했다.
늘 보는 환자들처럼 그녀의 고개 숙인 모습은 측은함을 불러일으켰다.
창규는 다정하게 그녀의 어깨를 안아주거나 머리를 기대게 해 주었다.
그의 다정함이 겹겹이 계를 치고 자신을 꽁꽁 싸매고 돌아 앉아 있는 미정에게 가 닿지 않았지만 말이다.
수년이 지나도 미정은 남편 창규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창규가 학회를 핑계 대고 해랑의 집에서 잠을 자고 들어와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완벽한 결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속적으로 경제적 우위를 지킬 수 있는 직업을 가진 남자와 부모의 보호 속에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난초 같은 여자의 조합은 안정 그 자체였다. 그리고 타인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다만 지루했다. 창규에게 그것은 문제랄 것이 없었다.
직장에서든 동창모임에서든 그가 한번 우스개소리하면 다들 빵빵 터졌으며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그는 의사로서, 사업가로서의 그 자신을 사랑했다.
그의 나르시시즘은 그에게 재미를 넘어서 쾌감을 주었다.
미정은 창규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었다.
그의 인생은 진지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볍고 가볍고 가벼웠다.
그리고 흥분할 일은 차고 넘쳤다.
장모의 딸 사랑은 지극했다.
장모가 그녀를 잘 돌보아줄 것이었다.
아내는 자신의 엄마에게조차도 마음을 열지 않는 것 같았다.
아내의 우울증은 결혼한 후 발병한 것이 아니었다.
창규는 아내의 열지 않는 속내를 알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복잡해질 것이다, 분명히. 그것이 딱 싫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 것만 같았다.
그 안에 뭐가 들어 있을지 두려웠다.
흐린 눈으로 집안을 흐느적거리며 다니는 아내,
남편으로서 그녀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면 되었다.
창규는 점점 그녀가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접었다.
우리는 완벽한 결혼을 했으니까, 그것으로 족했다.
그런데, 아내가 달라졌다.
아내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달라졌다고 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어느 날, 예솔이 바이올린 선생이라는 사람을 아내가 소개했다.
그것도 대학 후배라 하며 얼마나 반가운지 길고 하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소리 내어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해사한 얼굴에 곱슬머리가 이마에 찰랑거리는 '예술가' 티가 나는 사람이었다.
아내는 그가 오면 반색을 하며 몸짓이 빨라지며 화사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미소 짓는 표정은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언제 어느 때 본 적이 없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창규는 아내가 그를 보고 웃는 모습을 본 뒤로 그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때로 창규가 있는 데도 그에게 저녁식사를 권했다.
그가 거절하긴 했지만 아내의 그런 태도가 못마땅했다.
"아빠, 화났어요? 병원에서 안 좋은 일 있었어요?"
예솔이는 마치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큰 소리로 물었다.
"아니, 아빠는 엄마가 늘 물가에 내놓은 아기 같아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아내와 아들이 동시에 창규를 쳐다보았다.
창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스갯소리나 장난기 어린 코맹맹소리를 하곤 했다.
집에서 특히 아내 앞에서는 해본 적이 없었다.
창규는 이상하게 아내에게 예의를 차리고 점잔을 떠는 자신이 좀 한심하게 여겨졌다.
능청스러운 창규의 말이 아내와 아들에게 생소하게 들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최근에 아내의 혈색이 돌아오고 목소리에 힘이 생겨났다.
그리고 창규를 똑바로 쳐다보면 오히려 창규가 눈을 내렸다.
그녀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듯 빛났다.
그러는 아내가 반가웠지만 어쩐지 다가서지 못할 위엄이 서려 있었다.
창규는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자기 내면에 숨어있는 찌질이가 자꾸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숨어있는 이 '찌질이'야 말로 창규의 순수한 인간성의 결정체일지도 모르는데
창규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어쩌면 사랑을 받고 싶은 나를 '찌질이'로 몰아 무시하고 있는 게.
'설마... 나? 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