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림자놀이 3부

6. 등불이 비추는 만큼 나아가기

by 운정

창규는 예진이를 데려 오겠다는 미정의 말에서 이미 많은 것을 결정한 것같아 불안했다.

미정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서 예전에 보지 못한 빛을 보았다.


미정이 미국에 간지 2주가 지난 어느 날, 창규는 정선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저희 집사람이 상담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상담받을 수 있습니까?"


"부부라도 개별적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배우자의 호소문제를 알려고 하거나, 상대방을 조종하기 위해 상담자를 이용하려 하거나, 대신 설득해 달라고 하는 등은 용인되지 않습니다. 물론 배우자와 관계에서 발생하는 심정이나 생각은 말씀하실 수는 있습니다. 상담은 김창규 씨의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는 것뿐입니다. 본인의 이야기를 하셔야 한다는 말씀이에요."


창규는 머뭇거렸다.

내심으론 미정의 심정과 남편인 창규에 대한 생각 등을 상담사를 통해 알고 싶었다.

좀 답답한 거 빼고는 자신이 딱히 무엇을 도움받고 싶은 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상담받을 생각을 하셨나요? 제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내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창규는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는데 이 말이 무심코 툭 나왔다.

그 말에는 많은 욕구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곧 자신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임을 창규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아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군요. 그럼 김창규 씨는 어떠세요? 행복하십니까?"


"제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저는 노력한다고 하는데 아내가 힘들어하고 불행해하니 그것이 문제였지요."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약간 투덜대듯이 말했다.


"제가 행복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내가 우울해하고 불행해하니 마음이 쓰였던 것이죠."


"마음이 쓰인다는 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보실까요? 마음이 쓰였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요?"


창규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드는 말과 행동을 하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보통 다른 사람들에게 아내의 행복과 건강에 마음 쓰고 있다고 말하면 사랑꾼이란 칭송을 듣곤 했다.

적어도 미정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남편의 존재의 목적은 마치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조차도 어떻게 행복하는지 모르면서 말이다.

사람은 심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타인을 불편하게 할 수는 있으나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다.

행복은 그야말로 각자도생이기 때문이다.

행복의 조건은 사람마다 다르며 삶의 행로도 다르기 때문이다.

남들과 비교할 개념이 아니며 객관화하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창규는 아내에 대한 자신의 애정에 대해 미화하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과 친화력, 성격 등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몰입되어 어둠 속에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태양만을 바라보며 자신이 타들어가는 지도 모르는 불새처럼 그는 열정을 식힐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긍정편향성이 심한 편이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늘 말하곤 했다.


"걱정 마,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잘 될 거야."


'긍정편향'이란 '긍정적'이란 의미에 신비적 힘을 발휘하는 기적논리로 비화되기 쉽다.

또한 비합리적인 신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긍정적 생각으로 모든 감정을 덮여버릴 때 그러했다.

창규는 부정적 감정을 감당하기 어려위 했다.

그래서 어디서 본 글귀들을 되뇌거나 닮고 싶은 위대한 인물을 찾아내어 그 것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긍정적 생각과 긍정적 미래상으로 덕지덕지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덮어 버렸다.

그는 부정적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 지를 배우기도 전에 '긍정'이라는 아름다운 방법으로 부정적 감정을 물리치는 법을 터득했다.


그가 부모님과 미국으로 이민 갔을 때 그는 부모가 바라는 대로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였다.

미국인 선생님은 아이들이 그 앞에서 눈을 양옆으로 잡아당겨 가늘게 만들어 놀릴 때에도, 영어 발음 흉내를 내어도 방관했다.

선생님은 기분이 상해 있는 그에게 다가와 'Never mind, Don't care.'라고 말하며 아이들과 함께 웃었다.

미국아이들은 그에게 신체적 폭행을 하지 않았다. 그는 찌질이가 될까봐 울지 못했다.

어린 창규는 가슴에서 치받혀오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피가 나거나 상처난 것도 아닌데 우는 소리로 하소연을 해봤자 별거 아닌 것으로 유난 떤다며 찌질이로 취급받을 것 같았다. 자신이 이상한 아이로 취급받을까 봐 두려웠다.

그 이상한 아이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찔찔 짜는 찌질이였다.


중학생이 되어 한국의 친구 그리고 사촌들과 인터넷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유일한 재미였다.

한국친구들이 재미있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 찌그러사는 자신과 대조되었다.

어디서나 자신의 찌질한 모습이 보였다. 자신을 경멸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부모님에게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연극하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아니 부모님이 미웠다. 한국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곳에서 고생하는 부모님이 너무 미웠다.

하소연하며 찔찔 짜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부모가 매우 속상해할 것을 알기에 더 부모가 미웠다.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곳도 참 좋은 곳이지만 한국처럼 바쁘게 살아야 하는 역동적인 곳이 자기에게 맞는 것 같다고 설득했다. 언어장벽이 너무 심하고 자신의 능력을 여기서는 펼칠 수 없을 것 같다고 울면서 말했다.

한국에서 의사가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멋진 남자가 되었다. 자기 관리를 잘하는 남자였다.

건강식을 먹으며 운동을 하며 매력적인 슈트를 입고 최고급 향수를 뿌리는 멋진 남자였다.

적어도 남들이 보기에는 그랬다.


부정적 감정이 올라오면 바로 즉시 긍정적 격려와 지지의 구호를 외치며 마치 퇴마의식이라도 하는 듯 단숨에 물리쳐 외면하였다. 부정적 감정을 숨기고 감추고 도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신체적, 심리적 에너지가 소진되는지 알지 못했다.

그의 대부분의 부정적 감정은 존중받지 못한 채 어둠에 갇혀 찌질이로 이름이 붙여졌다.

창규는 미정을 보면 긴장이 되었다. 그녀의 말없이 깊은 눈을 하고 바라보면 온 몸이 굳는 것 같고 머리가 쭈빗거리며 숨이 찼다. 그래서 농담을 하며 일부러 소리내어 웃었다.


그는 술을 마셨다.

그는 술을 마셔야만 아내와 잠자리할 용기를 내었다.

성행위는 그의 신체적 긴장감을 높였다.

생리적으로 긴장하고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죄의식이 없어도 되었다.

쾌감과 함께 감각이 요동이 치면 모든 것을 잊었다.

아내가 준비가 되어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그녀도 즐거운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감각적 쾌감이 어떻게 심리적 안정과 충족감을 주는지, 아내와 충분히 나눈 적이 없었다.

마지막 극적 순간을 향해 전력을 다하고 그는 죽은 듯이 바로 잠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에게 성행위는 그저 수면제로서 역할을 할 뿐이었다.

창규는 아내에게도 배려하지 않았지만 자신에게도 감각적 쾌감을 오래 즐기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이러한 부부생활은 미정에게 통증과 상처만을 주었을 뿐이었다.

미정의 심리적 그리고 신체적 피폐함은 그러한 폭력적인 성행위에서 왔다는 것을 창규는 미처 알지 못했다.


상담이 5회기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내의 웃는 모습을 좀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하고 일할 맛도 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비위를 맞춰야 할지.. 눈치를 보게 됩니다."


"만약 비위를 맞추지도 않고 눈치를 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창규는 이런 질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침묵이 흘렀다. 목이 갑갑한 듯 그는 셔츠 단추하나를 풀었다.

그의 손바닥에 땀이 찼다.

자신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자신감으로 넘치는 자신의 모습과 엎어져있는 자신의 모습이 번갈아 떠올랐다.

나르시시스트 같은 자신의 모습이 역겨웠다.

고개 숙이고 혼자 있는 자신이 측은했다.

어쩌면 미정을 보면서 자기 연민을 투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목이 탔다. 그는 자신이 타인의 비위를 맞추는게 아니라 사실은 자신을 감추기 위해 가짜 자기를 보여주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닌데 내면에서 들려왔다.

끝내 미정의 어두운 얼굴을 보는 것이 두려워 뒤돌아 나가는 자신의 모습이 영화필름처럼 지나갔다.

미정이 무언의 불평을 해와도 모른 척했던 것은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자신의 내면에서는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는 미정과의 결혼이 이만하면 '완벽한 결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외로웠다.

이렇게 완벽한 결혼은 없다고 자신에게 늘 주지 시키며 외로움을 회피하며 방관했다.

그는 자기가 미웠다.

외로움과 자기 모멸감을 감추며 '있어 보이는 나'로 포장하기 위해 죽도록 노력했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 불사조처럼 빛을 향해 날아야 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바보 같은 놈'


자신의 가슴을 쳤다.


진즉에 아내의 눈을 보았어야 했다.

진즉에 아내의 손을 잡았어야 했다.

그녀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어야 했다.

진즉에 아내와 맑은 정신으로 대화를 했어야 했다.

아내가 아파하는 신음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했다.

아내를 오래도록 안아줘야 했다.

그는 술을 마시며 아내의 불행을 못 본척했고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창규는 못난 자신을 감추고 잘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외려 자신의 그림자를 아내에게 드리웠음을 깨달았다.

오열이 터져 나왔다.

아내에게 한없이 한없이 미안했다.


정선은 울고 있는 그에게 휴지를 건네며 위로했다.


"이제까지 살아내느라 수고하셨어요. 우리는 모두 생존하기 위해 저마다의 필사적인 노력을 하지요. 자신의 그림자가 타인에게 드리워지는 줄을 모르기에 남의 탓을 하기도 합니다. 함께 등불을 들고 가는 길이 결혼이라고 생각해요. 등불이 비추는 만큼 함께 나아가는 거죠. 그러면 두 분의 그림자는 앞으로 드리워져 서로 볼수 있지 않겠어요?"


'등불이 비추는 만큼 함께 나아간다'는 말이 오래도록 창규에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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