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자리로 돌아오기
“여보, 예진이한테 3월 말쯤에 가려고요.”
창규는 멈칫거리다 말했다.
“6월이면 예진이가 방학이라 올 텐데, 뭐 하러…, 정 가고 싶으면 가보든가.”
미정은 남편의 그런 태도가 못마땅해도 예전 같으면 ‘네, 알겠어요.’ 하고 말았을 것이다.
“예진이를 데려오는 게 어떨지 생각하고 있어요. 저번에 예진이 왔을 때 예진이가 한 말이 맘에 걸려요.”
남편이 의아한 눈으로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미정은 피하지 않고 말하고 있었다.
예진이는 방학에 한국에 오면 미정의 무릎에 앉아 엄마의 가슴에 기대어 있는 것을 좋아했다.
제 동생 예솔이 ‘뭐야, 누나가 아기야? 응애 해봐, 어디?’ 하며 놀려도 예진이는 미정의 무릎에서 내려오려 하지 않았다.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 방학 동안 집에서 지내며 예진이는 유난히 어리광을 많이 부렸다.
“엄마 이제 안 아프죠? 엄마가 아플 때까지 미국할머니댁에 있는 거라고 아빠가 그랬는데, 이제 다 나았지, 엄마? “
14세 중학생이 되는 그 나이 청소년이라면 성인 흉내를 내고도 남을 시기였지만 이러한 예진이의 퇴행적인 행동에 대해서 미정과 남편은 못 본척해왔다.
못 본척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예진이는 미국에서의 학교생활, 방과 후 활동뿐 아니라 교우관계까지 매우 활발하게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끼는 어미의 상태를 본능적으로 체크하고 있었다.
미국으로 떠나갈 당시 11살이던 예진이는 그 나이에 비해 동생이든 어른들이건 대하는 태도가 의젓하고 말씨에 배려가 배어있는 아이였다.
“엄마가 아프시니 우리 예진이가 엄마 도와주면 안 될까? 미국할머니댁에서 지내다 엄마가 건강해지면 그때 다시 엄마랑 살자, 응?”
제 아빠의 이런 말에 징징거리는 법도 투정 부리는 일도 없던 아이였다.
예진이는 미국에 있는 할머니댁에서 지내다 방학이나 긴 휴가시즌이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언젠가부터 조금씩 다가오더니 이제는 아예 제 엄마 곁에서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방학 내내 예진이는 미정이의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다.
외할머니댁에서 자고 가라 해도 미정이가 안 자면 예진이도 자지 않았다.
미정은 남편이나 친정가족이 이런 예진이를 보고 ‘왜 저래?’라고 눈으로 물어도 모른 척하고 예진이를 두 팔로 안고 있었다.
무릎이 저려도 놓지 않았다.
학기가 시작되면 예진이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의젓한 모습을 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정은 예진이가 집에 와 있는 동안 녹초가 되어도 그건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엄마로서 자식을 가까이 두고 키우지 않고 있다는 것에 죄책감이 언제나 짓눌렀다.
미정은 예진이를 데려와야 한다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막기 위해 약을 먹고 자신을 학대해 왔다.
막상 데리고 오려해도 감당할 자신이 서지 않았다.
정선은 상담 중에 이 문제를 다루며 미정에게 몹시 역정을 내었다.
미정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의 꾸지람이라고 들었다.
정선의 말은 칼날처럼 가슴에 와 꽂혔다.
"예진이는 엄마가 돌아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제자리로요. 건강한 엄마자리로요. 아이는 기다리고 있어요."
미정은 결심했다. '제자리로'라는 말에 그냥 결심이 서버렸다.
아이 곁에 부모가 평생 있을 필요는 없지만 아이와 부모가 함께 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엄마옆에 너무나 오랫동안 아이로 있어왔음을 알아차리고 오열이 터져 나왔다.
엄마에게 투정 한번 부리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바로 예진이 자신의 딸임을 보았다.
얼마나 더 엄마로 살아가기를 미룰 것인지, 이제 미정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자신도 예진이를 평생 엄마의 사슬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한 자신처럼 ‘네네’ 거리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정말 끔찍했다.
미정은 10살 어린 날에 그 끔찍한 일을 겪고도 부모에게 입 한번 벙긋하지 못한 것이 부모가 못 미더워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렸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미정은 너무나 어렸다.
미정은 어린 미정이에게 용서를 빌었다. 너무나 외롭게 혼자 놔두어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었다.
지쳐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돌아오는 엄마에게 밝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고 싶고 학교생활, 친구 잘 사귀며 잘 지내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어린 미정이를 꼭 안아주었다.
“네 탓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그 시절의 엄마 아빠는 힘들게 살고 있었다.
자식 앞에서는 한숨을 감추고 자식의 재롱과 잘 커가는 모습으로 위안을 받으며 몰래 숨어 울던 이들이었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어린 날 못해준 경제적 여유와 풍요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죄책감에 시달린 미정은 착실하고 얌전하고 순한 딸로 엄마의 욕구에 맞춰주는 큰딸이어야 했다.
결혼하고 제 아이를 낳고 살면서도 그러니까 정작 어른으로 살아야 할 나이에 미정은 제 자신으로 살지도 못하고 퇴행을 거듭했다.
엄마에게 걱정거리가 되지 않으려하다 되려 염려와 걱정을 끼치는 어린아이가 되고 만 것이었다.
미정은 자신의 시간을 멈춰 버리고 자신을 방치한 어리석음을 예진이에게 대물림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예진이의 시간이 멈추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예진이는 어리다. 아직 늦지 않았어. '
미정은 남편 창규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예진이 옆에서 거기에서의 생활을 잘 정리하도록 도와줘야 할 것 같아요. 봄학기 마칠 때까지 예진이와 함께 있다가 데리고 함께 올게요.”
창규는 미정을 처음 보는 듯 눈이 커지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을 달싹거렸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미정은 곧바로 확인해놓았던 비행기시간을 예약했다.
그리고 미국 시어머니에게 언제 언제 방문하겠다고 짧게 전화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