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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다시 May 09. 2023

여자의 착각은 무죄

 

두 번이나 모델이 되었다. 지난 강좌에선 강사가 내 외모를 칭찬했다. 이런저런 말을 했는데 지금 기억나는 건 '비율이 좋고 웃는 모습이 예뻐서' 모델에 적당하다는 것이다. 공공도서관 문화프로그램 ‘내 삶을 디자인하는 스마트폰 사진’ 강좌에 다니고 있다.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모델에 발탁되다니, 나 아직 죽지 않았나 보다. 기분 좋다.

"로미야, 엄마 송혜교 닮은 것 같아."

올해 백상 예술대상에서 송혜교가 대상을 탔다. 송혜교를 보니 나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혜교의 앞가르마와 내 가르마가 같았고 머리스타일도 비슷했다. 눈과 눈썹도 비슷했다. 내가 송혜교와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았다. 사진 강사의 칭찬을 들은 후로 내 자존감은 하늘로 치솟아 있었고 난 감히 송혜교에 비교했다.     


우리 반 지민이가 그림 한 장을 건넸다. 아주 예쁘고 지적으로 생긴 여자를 그려놨다.

"선생님이에요!"

난 지민이를 보고 활짝 웃었다.

"고마워, 지민아!"

'내가 이렇게 예쁘다니 역시 아이들도 사람 보는 눈은 있어.'

며칠 후엔 다율이도 그림 한 장을 주었다.

"선생님을 그렸어요."

다율이 그림엔 지민이 그림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여자가 있었다. 지민이의 것이 세련되고 지적이었다면 다율이의 것은 블링블링 러블리한 여자의 모습, 즉 내가 있었다.

"다율아, 사랑해!"     


코로나가 창궐했던 첫해에 난 오십 살이었다. 내 나이 오십 대 초반 3년 동안 마스크 속에 나를 꽁꽁 가두고 다녔다. 얼굴의 반을 덮은 마스크 속에 내 모습은 물론이고 나의 자존감과 삶의 의욕까지 모조리 감춰 버렸다. 교사이기에 코로나에 감염되면 큰일 날 것이라 생각하며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끊었다.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두꺼운 마스크에 나를 맡기며 직장과 집만 오갔다. 내 얼굴과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3번의 여름과 겨울이 가고 있었다. 지난겨울 어느 날 거울 속 내 모습을 보았다. 푹 꺼진 눈 밑 피부, 입 주변 팔자 주름, 쏙 빠져버린 양 볼살, 거뭇거뭇한 크고 작은 반점과 여기저기 자그마한 쥐젖이 보였다. 이게 사람인가 귀신인가. 절망했다.      


코로나 전에 왕성하게 모임 했던 지인들로부터 '동안이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당시엔 입에 발린 소리라 여기며 아무 생각 없이 흘려들었다. 그런데 거울 속에서 폭삭 늙어버린 나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젠 동안이긴커녕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것 같았다.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다. 실제로 1년 만에 만난 선배 언니는 말했다.

"너도 늙어가는구나." 

어떤 모임에선 내가 가장 막내라서 늘 생기발랄했고 젊다고 부러워했지만, 이젠 함께 늙어가는 나와 그들의 외모는 나이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평준화가 되어 버렸다. 마스크를 벗은 후 한동안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가 많이 달라져 있어서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의식하며 살았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마스크를 벗는 것 괜찮았지만 예전에 나를 알았던 사람에겐 마스크를 벗은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급격히 노화된 내 모습을 보고 '나이 앞에선 장사 없구나' 생각할 것 같았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 학기부턴 마스크 착용은 개인의 자유였다. 누구는 쓰고 누구는 안 썼다. 콤플렉스가 된 노화된 얼굴을 언제까지나 가리고 다닐 수 없었다. 더구나 코로나블루까지 동반된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바로 ‘마스크’였다. 마스크 는 자신은 물론이고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시켰다.

“마스크를 벗고 새마음 새 출발!”

마스크 속에 꽁꽁 숨어있는 자존감과 자신감을 커밍아웃하기로 했다. 자신을 가감 없이 당당히 드러내리라 결심했다.      


마스크에서 해방된 지 2달이 되었다. 이젠 누구 앞에서든 나를 떳떳이 드러내고 있다.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다. 사진 강사가 나를 모델로 세운 건 예뻐서가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기 때문이리라. 초등학생 아이들은 누구나 자기 반 선생님에게 후한 점수를 주기 마련이다. 그 옛날엔 자주 듣던 예쁘단 말을 들은 지 오래되었지만 난 나이 든 지금이 좋다. 숱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어느 순간 빠져나와 평안함을 유지하고 있는, 돈에 연연하지 않고 현실에 맞춰 사는, 무엇보다 자식이나 남편에 거는 기대보단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며 사랑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      


*어린이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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