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가 그린 슈베르트,
클림트는 슈베르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오스트리아 상징주의 화가이자 빈 분리파 운동을 주도한 클림트이다.
우리가 아주 사랑하는 화가이다.
클림트의 '키스'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그림이다.
그림을 아는 것이 아니더라도 장식, 커피잔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그림이라
많은 분들이 아는 그림이다.
클림트 화가는 여성의 신체, 에로티시즘으로 유명하다.
스캔들이 적지 않은 화가로 유명하다.
1897년 ‘빈 분리파’ 반 아카데미즘 운동을 주도하면서 '빈 분리파'의 수장으로 활동하며
빈에서 새로운 시대를 연다.
키스, 유디트, 아델르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피아노 치는 슈베르트 등
금을 사용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클림트이다.
에곤 실레가 클림트를 찾아갔을 때 에곤 실레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클림트이다.
에곤 실레의 평생 스승이 된 클림트,
클림트의 그림을 오마주 하며 영향을 받았던 에곤 실레이다.
클림트가 1899년 그린 그림이다.
클림트가 슈베르트를 만나서 그린 그림일까?
클림트는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태어났다.
슈베르트는 1828년에 세상을 떠났고, 클림트는 1862년에 태어났다.
왠지 슈베르트를 만나서 그렸을 것만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러면 그는 왜 슈베르트를 그렸을까?
빈에 거주하던 그리스계 사업가이자 예술 후원자 니콜라우스 덤바가
저택의 뮤직룸을 위해 주문한 그림이다.
덤버가 사랑했던 작곡가가 슈베르트였다.
그래서 자신의 저택의 뮤직룸에 슈베르트를 모시고 싶었던 것이다.
멋지다.
덤버는 슈베르트의 친필 악보 198점 수집해 빈 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할 만큼
슈베르트에 진심인 덤버였다.
덤버는 빈 시립공원에 슈베르트상을 세우고,
빈 남성 합창단에 거금을 기부하였다.
건물에는 돈 쓰지 말고 슈베르트를 추모하며 연주를 해주기를 요청하였고,
덕분에 슈베르트의 음악이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 있다.
오늘까지도 합창단은 독일 미사곡을 연주한다.
그림 속의 여인들은 슈베르트 시대의 드레스가 아니라 클림트 시대의 드레스를 입고 있다.
화면 왼쪽에 서서 정면을 보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은
클림트의 연인이다.
오스트리아 작곡가이며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가난과 타고난 병약함 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600여 편이 가곡, 13편의 교향곡, 소나타, 오페라 등을 작곡하였다.
660여 곡의 가곡이 수가 많아서 가곡의 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시라도 슈베르트의 손을 거치면 아름다운 명작으로 탄생한다.
슈베르트의 가곡은 눈앞에 영상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곡의 왕'이라고 불릴만하다.
베토벤을 엄청 존경하던 슈베르트는 진작에 만나고 싶었지만,
수줍음이 많고 열등감이 많았던 슈베르트는 대음악가 베토벤을 선뜻 찾아가지를 못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베토벤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 1827년 3월 18일 베토벤 만났다.
베토벤의 장례식에도 참석하며 애도를 표했던 슈베르트이다.
이런 슈베르트의 모습을 클림트를 통해서 우리가 다시 보게 되어 좋다.
클림트의 그림을 보면서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을 때 참 마음이 평온하면서 묘하게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