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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 보고서

국가의 문제인가 개인의 문제인가

by HuwomanB

내 기숙사 방은 셋이서 화장실 두 개와 부엌을 공유하는 공유플랫이다. 문을 열면 부엌과 화장실이 있는 공용공간이 있고 각자의 방은 방문으로 나뉜다.


런던 인구의 3분의 1은 인도인, 3분의 1은 중국인인 것 같아 보이는 상황에서 하필 내 룸메이트도 인도, 중국이다. 그리고 나는 이들의 행동에서 이들의 민족성을 본다. 선입견과 편견은 좋지 않은 것이지만, 한 인간이 다른 나라에 갔을 때, 아무리 그 인간이 자신의 나라에선 보편적인 자신의 나라 사람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았다 해도 그는 민족성을 뚜렷이 나타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낀다. 나 역시 나는 다른 한국인들과 다르다 생각해도 여기서 얘네가 보는 나의 모습은 지극히 한국적이겠지. 그래서 더더욱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고 느끼는데, 그렇게 느끼는 것 자체가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인 것 같다.


얘넨, 그냥, 그런 의식이 없다.


인도애는, 절대,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을 하지 않는다.

여기서 그녀에게 손해라 함은 자신으로 인해 타인까지 이익을 보는 것도 포힘이다.

공용공간에 관한 문제가 있을 때 그녀는 그 민원을 스스로 기숙사팀에 말하는 것이 아니라 “Hey, we should complain this.”라고 말한 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내가 그래서 리셉션에 말했어? 하면, 안 했단다. 그러다 내가 말해? 하면 너무 좋은 생각인 거 같단다.

‘당번’을 정하지 않은 일은 절대 스스로 하지 않는다. 바닥에 무언가 떨어진 걸 보아도 ‘다음 청소당번이 할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절대 줍지 않는다. 우리는 쓰레기통을 꽉 찰 때마다 보는 사람이 비우기로 했는데, 쓰레기를 가장 많이 버리는 것은 인도이고, 가장 적게 버리는 것은 한국이며, 그것을 갈아 끼우는 것은 중국과 한국이다.

영국에 오기 전, 영국에서는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을 반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손이 빠르기도 하고, 또 자신의 일의 범주를 조금 넘어도 그냥 하는 우리의 성실한 인성 때문이란다. 예를 들어 테이블 10개를 닦기로 했으면, 인도애들은 딱 10개만 닦고 그 옆에 묻은 것은 계약사항이 아니라고 안 닦는데, 우리는 닦는 김에, 손 한번 더 뻗어서 닦으니까. 알 만 하다.

그런 민족성을 가지고 어떻게든 영국에 붙어 있으려고 발버둥 치는 인도인들을 볼 때면, 얘네 때문에 영국의 이민정책이 갈수록 까다로워지는구나 싶다. 아무리 인도가 IT강국이네 어쩌네 해도, 지울 수 없는 인도에 대한 이미지, 정확히 그녀와 맞아떨어진다.


중국애는, 절대, 자신이 남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 한다.

마치 상대방이 당연히 중국말을 알아들을 거라 생각하고 대뜸 중국어부터 해대는 중국 아줌마들 같은 느낌이다. 그들은, 당연히 다른 나라 사람들도 중국어를 알 거라는 인식이 있다고 한다. 대륙은 대륙이라 이건가.

매번 설거지를 제때 하지 않고 3~4일간 두는데, 한번 에둘러 우리 설거지를 하루 이상은 그냥 두지 말자, 위생상 좋지 않다 했더니 사과는 없고(난 그 애가 무슨 일에 대해 사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I put my things in dishwasher.”라는 싸늘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 뒤로도 자신의 설거지거리를 싱크대 안에 둬서 한 번은 마주친 김에 "Hey, can I put this.."까지 말했더니 말을 자르고 “It’s OK, just put it here and ignore it.” 하더라. 아니, 이게 네가 괜찮다고 될 일이 아니지 싶어 “no, I mean it makes me uncomfortable when doing my dishes.”라고 다시 말했더니 “oh, OK.” 하고 치워도 된단다. 그러나 다음 날 나는 그녀의 음식물이 덕지덕지 묻은 밥그릇을 또 싱크대에서 발견했다.

자신의 행동은 언제나 옳고 불편하다면 불편한 사람이 알아서 해라는 식이다. 딱 중국정부가 생각나지 않는가.


그리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매우, 시끄럽다.

인도애는 밤 11시고 12시고 친구를 데려와 방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오전 내내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는데 그 아이와 내 방 사이에 중국애의 방이 있음에도 정말 그 소리가 내 방까지 들린다.

중국애도 만만치 않다. 친구는 없는지 안 데려오지만,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 방에서 비명과 깔깔거리는 소리와 가끔 쿵쿵거리는 소리까지 난다. 또한 부엌을 쓸 때마다 왜 그렇게 강한 어조로 혼잣말을 하는지 가끔 얘가 LSE 공부가 너무 어려워서 돌아버린 건 아닐까 무섭다.


여기서 인도애는, 중국애는 이라는 프레임을 지우고 그냥 한국의 어린 대학생들이라고 생각을 하기로 하면, 그래, 그냥 얘네가 어려서, 몰라서 그런가보다 싶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 만난 많은 한국 학생들과 이야기해보며 그들이 매우 비슷한 일로 고통받고 있음을 안 순간, 우리는 모두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정교육 하나는 얘네보단 잘 받은 것 같아요


한국 내에서는 요새 애들을 버릇없이 키우네어쩌네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아직까지는 그래도 가장 점잖고, 탁월하고, 예의바른 민족이었다. 앞으로도 공동생활에서 폐 끼치지 않을 줄 알고, 폐 끼친 걸 알면 수정할 줄 아는것, 그거하나는 끝까지 잘 가르치는 민족이길 바란다.


LSE는 International을 지향한다고,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편견 없이 교제하는 내 모습을 기대했지만, 일단 생활 속에 부딪히는 문제는 생각보다 내가 racist가 되기에 너무나 충분했고, 이는 학교 수업에서의 백인과 백인나라 태생들의 아이들이 그 외의 아이들을 배제하는 행동을 보면서 완전히 굳혀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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