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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어디까지 당해봤니

음식물 테러, 이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었네요

by HuwomanB

이번엔 정말 좋은 이야기를 쓸 예정이었다.

11월 27일, Thanksgiving에서 참치김밥전과 만두튀김을 선보이며 이제야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렸다 생각했다. 별로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아이는 굳이 내게 와서 본인이 참치김밥전은 꼭 먹어봐야 한다고 추천해주고 있다며 이야기하고, 한국문화에 시큰둥하던 아이까지 먹어보고 싶은데 고기가 안 들어간 게 무엇이냐 물어서 야채만두를 먹어보라 했더니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보다 많이 즐거웠다. 덕분에 평소에 같이 길게 말해보고 싶었던 아이와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자신감으로 이후 있었던 Autumn term 마무리 파티에서도 2차까지 참석하며 나름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내가 이러니 저러니 불평은 해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는 것이 아니고, 잘 어울리고 있고 그 와중에도 어쩔 수 없이 백인들의 짓거리가 조금 거슬리는 부분들이 있을 뿐이라고. 이제는 도시락을 같이 먹는 무리도, 공강시간에 같이 공부하며 시간을 때우는 무리도 있어서, 혼자보단 집중은 좀 안되지만 그래도 내가 이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가는 중이었다. 물론, 그 무리가 백인들은 아니지만.. 그건 어쩔 수 없고 뭐 괜찮았다는 이야기.


하지만, 12월 3일, 최악의 하루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케아에 click&collect으로 주문해 놓은 것이 12월 3일에 도착할 테니 그 안에 가져가라기에, 내 물건이 출발했다기에, 날짜에 맞춰 도착하겠거니 하고 그 주변에서 있다가 문자가 오면 받아 올 생각이었다. 그래서 Oxford street로 향하고 있었는데, 어떤 백인 여성이 내 옆을 지나며 “Stupid Asian.”이라고 뱉고 지나갔다. 내가 뭘 들은 걸까 싶어 다시 돌아보았지만 유유히 가는 그 여성을 보며, ‘아 이게 진짜 찐 인종차별이구나’ 싶었다. 첨엔 ‘별... 거지 같은 년이..’ 하고 넘기려 했지만 계속해서 그 말이 맴돌았다. '아 이게 생각보다 기분이 정말 더럽구나 이래서 그렇게 유튜브에서 자기 인종차별당했다고 유난을 떠는 거였구나.' 이해가 됐다. 그전까진 그런 영상들을 보며 코쟁이들이 원래 그런 애들인데 왜 저리 유난일까 싶었던 나였다.


그래서 그냥 오후 수업을 째고, 나에게 커피와 디저트를 사주며 나를 달래기로 했다. 더 열받는 것은 이케아 물품은 결국 그날 오지 않았고, 너네가 time slot을 잡아놓고 너네가 안 지키면 어쩌라는 거지 싶었지만 별수 없이 집으로 향하던 길, 2차, 3차 공격을 받았다.


2차 공격은 Oxford street에서, 한 백인 남성이 날 불러 세우더니, 지도를 보여주며 자기가 벨파스트에서 왔고 그거도 영국인데 좀 멀리 있고, 오늘이 런던이 처음인데, 본인은 벨파스트로 돌아갈 기차표를 끊어야 하고, 근데 내가 너한테 돈을 달라는 건 아니고, 내 돈은 내 은행에 있고, 근데 ATM기기가.... 정확이 이 순서로 이 번잡함으로 나에게 이야기하며 구글맵도 아닌 무슨 위성이 고장 나서 확대가 안 되는 거 같은 지도를 보여주며 계속 횡설수설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너희들의 Scam이구나.’ 기분은 정말 별로였지만 “Sorry”라고 말하고 지나치는 순간 그의 S.. 어쩌고 하는 욕이 뒤통수에 꽂혔다.. 그 뒤로 혹시나 그가 따라올까 봐 계속 뒤를 확인하며 걸었다.


오늘은 그냥 재수가 없구나. 재수가 없는 날엔 재수가 없는 일만 생기니까...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냥 이야깃거리라 넘기자, 집에 가서 귀나 씻자. 마침 내일 수업이 Urban inequalities고 거기서 이민자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도 다루니까 소재로나 써야겠다. 근데 쟤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나? 만약 진짜면 얘넨 경찰서로 가면 되려나? 아 담엔 경찰서나 찾아가라고 알려줄까.. 나는 만약 저런 상황이면 어딜 가야 하지? 근데 얘네가 경찰서가 우리나라처럼 여기저기 없는 거 같은데...? 하는 생각으로 Waterloo bridge를 건너고 있었다.


어디선가 구시렁대는 소리, 그리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음식물을 담은 통이 내 앞을 스쳐갔다. 그 스쳐간 통은 바닥에 떨어졌고, 그 음식물은 고스란히 나에게 튀었다. 내가 그쪽을 돌아보자 흑인 남자애들 셋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손에 또 다른 음식물을 들고....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화도, 무엇도 내지 못한 채 그냥 그들은 3초간 응시하다 내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그저 무서웠다. 걸음을 빨리하는 동시에,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하는 서러움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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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옷을 확인해 보니, 엉망이었다... 옷에 묻은 음식물들을 닦아내고, 교수에게 메일을 썼다. '내일 수업은 참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을 당했고, 그래서 내가 차별의 대상이 된 상태에서 내일의 도시 내의 차별에 대한 토론에 제대로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밖에 할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다행히 교수님은 사회학 교수라 그런지, 나의 상황에 적극 공감하시고, 푹 쉬고 기운을 차리라며, 학교에도 너를 지원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을 테니 알아보라 하셨고, 그다음 날까지 어떻게 지내고 있냐는 메일을 한번 더 주시는 세심함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다음날 마주친 인도룸메는 늦은 시간은 그렇다는 둥 더 열받게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내가 들어온 시간은 고작 7시였다고 말하려는 순간 본인의 방으로 들어가는 얄미움을 선사했고, 학교에서는 26년 1월 5일에 상담을 잡아줄 테니, 그때 이야기하고, 그 상담을 취소하면 네가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알겠다는 정말 거지 같은 답변을 주었다.


영국에서 작은 나라에서 온 아시안 여성으로 산다는 건, 백인에게도 흑인에게도, 그리고 인도인에게도 일어나지 않을 일을 겪으며 이런 일은 당하더라도 그들에게 어떤 진심 어린 공감도 얻어낼 수 없다는 더블 마이너의 삶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저 모든 일의 원흉인 이케아 click&collect은 12월 5일 저녁 5시에 도착했다는 메일이 왔는데 그 메일에는 지정된 time slot대로 12월 3일 8시까지 가져가라는 내용이었다. 영국 놈들은 정말,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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