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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차별은 인간의 본성일지도

by HuwomanB

수업이 시작되면 참 신기한 광경이 펼쳐진다.


네 개의 테이블이 있는데, 내가 먼저 한 테이블에 앉으면 아이들은 들어와 반갑게 인사를 하지만, 결코 내 테이블에 앉지는 않는다. 그렇게 서양인들로 복작거리는 하나의 테이블이 생기고, 나머지 세 개의 테이블이 동양인들과 성소수자로 채워진다. 교수가 들어와서 하는 일은 서양인들로 복작거리는 테이블을 찢는 일이다. 그렇게 평등을 지향하고, 외치고, 차별에 예민하게 구는 것처럼 보였던 이들의 실상이다. 대놓고 '말로' 드러내는 차별만 없을 뿐이다.


원하는 주제를 선택해서 발표를 하는 조별과제가 있었는데, 나를 제외한 나머지가 영국인, 미국인, 영국 태생의 필리핀인이었다. 본인들끼리만 이야기를 하고, 정하고, 피피티에 무언가 생기고, 나중에 피피티로 확인한 내가 이 방향이 맞냐, 이렇게 하는 게 낫지 않냐, 이 슬라이드는 무엇이냐 물어야만 대답해 주는 그들 사이에서, 대화를 할 때에도 나에게 등을 돌리고 대화를 하는 그들 사이에서 그저 그 팀플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팀플이 끝나던 날에도 그들은 고생했다 수고했다 말 한마디 없이 자리들끼리 교실을 나가버렸고, 중국인들이 와서 나를 격려해 주었다.


한 번은 수업 후 다 같이 펍에서 맥주를 한잔 하기로 했는데, 서양인무리가 먼저 와있어 그 자리에 내가 섞여 있었고, 앉을자리는 없고 다 같이 서서 이야기하는 구조였다. 조금 뒤 중국인들이 왔다. 쭈뼛대는 그들을 향해 자리를 좀 내어주고 원을 만들 만도 한데, 그들은 작은 틈도 내어주지 않았고, 내가 중국인들과 이야기를 시작하자 나와 중국 무리를 빼고 자기들끼리 다시 뭉치는 것을 보며, 우리는 우리끼리 이야기를 좀 더 하다가 그냥 그 자리를 나왔다.


교묘하게 기분이 나쁘지만 어디 하나 콕 집어내기엔 내가 예민하고 쪼잔한 사람이 되는 상황 속에서, 그리고 집어내기엔 또 영어가 그만큼 능숙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가끔 한국에 사는 서양인들이 한국인들이 자기들을 외국인으로 대하는 게 싫다던가, 한국의 언어와 습관이 이상하다던가 하는 릴스가 알고리즘에 뜰 때면, '너네나 잘해, 우리만큼 외국인 배려하는 나라가 어디 있다고, 그리고 너네가 외국인이지 그럼 뭐야.'라고 쏘아붙이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냥 내가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못해서, 너네가 나랑 말하기가 답답한가 보다 생각하다가도 동시에 우리나라도, 외국인이라고 배려해주지 말고 걔네가 한국말 제대로 못하면 그냥 이렇게 무시해버렸으면 하는 못된 마음도 품어봤다.


그렇게 '서양'에 대한 적개심은 차오르고, 그나마 같은 아시아인으로 챙겨주는 '중국'에 대한 고마움은 피어났는데, 하지만 또 중국인무리에 온전히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 그들은 또 그들만의 울타리가 있었고, 서로 중국어로 대화하는 통에 그 사이에 있으려면 내가 중국어를 알아야 하는 기분이라.. 어디 하나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나 혼자 그저 여러 섬 사이를 나룻배처럼 동동 떠다니고 있는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35살이나 먹어서 이런 기분을 느낀다는 게, 애들이 나랑 안 놀아준다고 시무룩해할 시기는 지났는데 참 스스로가 유치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그렇게 '그래 이게 뭐라고, 너무 신경 쓰지 말자, 나는 내 할 일을 하자.'라고 생각하지만 다음 학기에는 조별과제가 평가에 들어간다는 게 벌써부터 스트레스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결코 차별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한국의 무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음식이었다. 대화를 할 때마다 나에게 등을 돌리고, 어쩌다 한국의 도시 이야기를 하면 늘 새침하게 '한국 그거 뭐 대단해?' 하며 시큰둥해하던 이들이 포트럭파티에서 내가 내놓은 참치김밥전과 만두튀김에는 환호하는 것을 보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 작지만 위대한 나라를 음식으로나마 알릴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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