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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한식을 먹어야 산다

어쩌다보니 한식 전도사가 된 이야기

by HuwomanB

처음부터 한식을 해먹을 생각은 아니었다.

영국에 왔으면 이 나라 사람들처럼 해먹고 살아야지 싶었고, 그동안 해외여행을 가도 늘 현지식으로 먹었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매우 큰 착각이었다.


우선 무언가를 사 먹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여행에서나 가능하지 아무리 싼 집을 찾아도 한 끼에 20파운드(약 38,000원)는 내야 하는 이 나라 외식물가에서 외식을 하면서 살다가는 한 달에 식비만 200만원이 되는 대참사가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too good to go'라는 어플을 이용하여 가게에서 남은 음식들을 5~7파운드 사이에서 얻을 수는 있었지만 그 또한 매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첫 번째로 찾아온 시련은 '쌀'에 대한 욕망이었는데, 1주일 내내 빵, 계란, 햄, 치즈, 우유, 시리얼, 요거트만으로만 식사를 해결하고 나니 영양소의 문제는 없었지만 영양소의 문제'만' 없을 뿐이었고 평소에도 빵을 잘 안 먹는 편이었기에 밀가루는 정말 나랑 안 맞았다. 그래도 '쌀'이 들어간 음식은 쉽게 찾을 수 있긴 했다. 멕시칸이나 인디안 음식에도 쌀은 들어가 있고, 일식도 보편화되어 있는 편이었기에, 'too good to go'를 통해 해당 음식을 얻거나 혹은 tesco나 sainsbury와 같은 슈퍼에서 스시롤를 찾아 해결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시련은 '소스', 즉 조미료였다. 내가 보고 자란 것이 한식이기에 난 서양식 조미료에 무지했고, 어찌저찌 따라한다 한들 이들의 소스는 결코 한국의 '맛'을 따라올 수 없었다. 매운맛을 낸다 한들 어딘가 느끼한 매운맛이지 김치의 상큼한 매운맛이 아니고, 미소는 된장을 따라올 수 없었다.

한식 식자재를 사지 않았던 첫 번째 이유는 고작 2년인데 한식을 굳이 해 먹는 것이 유난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한식 식자재가 현지 식자재보다 비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을 아끼고 아끼다 결국 소비한 후, 큰맘 먹고 김치를 사다가 김치찌개를 한번 끓여 먹은 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음식은 곧 정체성이다. 나는 한국인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곳의 어떤 음식도 한국 라면보다 맛있지 않다..

결국 나는 오세요와 서울플라자를 휩쓸며 고추장, 된장, 고춧가루, 굴소스, 진간장, 맛술, 물엿, 참치액, 깨소금, 후추를 구매했고 한국에서보다 더 열정적으로 한식 요리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알고리즘은 요리로 채워졌고, 나의 스토리는 내가 한 요리들로 가득해졌다. 내가 올리는 스토리는 의도치 않게 점점 더 많은 친구들이 한식을 먹어보고 싶어 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고, 나의 점심도시락을 궁금해하는 친구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Thanksgiving Potluck에서 선보인 참치김밥전 역시 반응이 어마어마했고, 그날 해산물을 못 먹어서 아쉬워한 친구를 위해 점심에 한번 더 제육김밥을 싸가서 나눠먹었을 땐, 다들 내가 한 음식을 한번 더 먹기 위해 파티를 한번 더 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생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국 유학 전,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친구가 "뭐, 학위가 잘 안 돼도, 영어 하나는 확실히 얻는다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거야." 라며 나에게 무언가 얻는 것은 확실히 있으니 너무 부담 가지지 말라고 했었는데, 영어는 모르겠고 요리실력은 확실히 늘고 있는 서글픈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학교에서 스타트업 지원 해주던데, 한식 도시락업체를 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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