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는 정체성

어딘가에 나의 뿌리를 두는 것, 나의 '집'이 있다는 것이 주는 강인함

by HuwomanB

학과에 한국인이 한 명 더 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한국인으로 느끼지 않는다. 영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까지 나온 후 한국으로 돌아가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국제기구에서 인턴을 잠시 하다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고. 한국어를 평범하게 하고 한국인의 외형을 느꼈지만 그녀가 ‘한국’을 대하는 모습은 매우 어색하다.


나는 왜 저 사람을 같은 한국인으로 느끼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녀는 우선, 동양계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아 하고, 나에게도 인사 외에는 더 말을 이어가려 하지 않는다. 나와 말하다가도 미국이나 유럽 쪽 아이가 지나가면 나와의 대화를 끊고 그 아이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녀와 가끔 대화를 할 때 그녀가 한국에 대한 애정이 없고 어떤 연결고리도 느끼고 있지 않음이 강하게 느껴진다. 학기가 2개월 정도 진행되었을 무렵 어쩌다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녀는 나에게 한국이 그립냐고 물었다.


“음, 그립다? 2개월 만에 그립다는 감정을 느끼기엔 좀 짧지만, 그런 그리움이라기보다는 한국이 저한텐 더 편리하고 좋은 곳이죠. 그리고 궁극적으로 제 마지막 정착지는 한국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요? 벌써 한국이 더 좋다고 느껴요?”


여기서 나는 살짝 말문이 막혔다. 내가 여기서 만난 그 어떤 한국인도 ‘한국이 더 살기 편하다’라는 말에 의문을 단 적이 없는데, 그녀의 말투에는 어떠한 애정도 공감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그래도 한국에서 지냈으면 적어도 10년인데, 그동안 어떤 애정도 느끼지 못했던 걸까 싶었다.


“아.. 뭐 그냥 가장 간단한 예로 지하철만 봐도 그렇고, 안전함이라던가, 하는 것들도 그렇고…”

“아, 한국 지하철 깨끗한 건 있죠~”


내가 지금 한국에 여행 다녀온 외국인이랑 얘기하는 건가 착각할 만큼 ‘아, 이 아이랑은 한국에 대한 대화는 못하겠다.’는 것을 바로 직감했다.


그리고 종강파티 날, 그녀는 자꾸 학과장(한국인)의 한국어를 유창하게 못한다는 이야기를 외국인 아이들에게 하고 다녔고,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들은 나에게 그게 사실이냐고 되묻는 일이 일어났다.


“수(가명)가 그러는데 학과장 한국어 못한다며? 너도 그렇게 생각해?”

“아니야, 학과장이 좀 내성적이고 말이 느려서 그렇지, 한국어 못하시는 게 아니야. 그리고 영국에 20년 이상 살았는데 잠깐 한국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경우는 생길 수 있지. 근데 보통 한국사람들이랑 똑같아. 그냥 성격의 차이야.”


나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은 없지만,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인’으로 자리 잡고 자기가 더 한국인스럽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더 어이가 없었던 부분은 그녀와 학과장님의 한국어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학과장님이랑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대화에 참여했고, 학과장이 간 후 그녀는 나에게도


“학과장님 근데 한국어 악센트 좀 이상하지 않아요? 아무리 영국에 오래 살았어도”

“제가 듣기엔 별 문제없는데요? 그냥 성격이 좀 소심하셔서, 말이 어눌하게 나오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 학교 교수님 중에도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셔서 살짝 악센트 섞이신 분들도 전 종종 뵜어서…”


차마 여기다 대고 너도 비슷해라고는 못했지만, 그 얘기도 하면서 다른 한국사람의 말투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하는 건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할걸 몇 번을 되뇌며 후회했다.


한국에만 산 한국사람들 중에 학과장보다 더 말 어눌한 사람을 나는 정말 많이 만나봤고, 그 정도로 학과장의 한국어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녀는 그 정도의 한국인 경험조차 없었던 것일까. 영국에서 초등학교까지 나왔으니 한국에서도 외국인학교나 국제학교를 다니며 한국 속에서도 한국사회와의 교류가 없었던 것일까.


심지어 포트럭 파티 전 음식을 고민하고 있을 때 그녀는 참고하라는 식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제가 애들이 잘 모르는 한식 준비해 갈까 했더니 애들이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전에도 그녀는 영어를 나보다 못 알아듣나 싶을 만큼 수업과제에 대한 공지를 다르게 나에게 전했었고 나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내가 이해한 대로 준비해 갔고 내가 맞았었던 기억이 있기에 이제까지 그녀와의 대화 데이터로 난 그녀의 말에 큰 무게를 싣지 않았고 참치김밥과 만두튀김을 준비해 갔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은 "네가 한국음식을 가지고 올 걸 기대하고 있었어. 매번 네 스토리를 볼 때마다 너무 먹어보고 싶었거든"이라며 반가워하기까지 했다.


나중에 미국에서 유학한 사촌동생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그런 애들 있어. 너무 어릴 때부터 외국생활 한 애들, 대부분 아무런 정체성도 없어. 걔도 아마 영국인으로서도, 한국인으로서도, 그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해서 그러는 걸 거야. 서양 커뮤니티에 잘 끼고 싶은데 또 유니크한 한국인이고 싶고, 근데 언니같은 진짜 한국인이 나타나니 괜히 더 그러는 거야.”


그래서 이모는 이 동생이 성인이 되기 전엔 해외에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먼저 가져야 한다고.


한 인도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수는 서양애들 무리에 들어가고 싶어서 애쓰는 거 같은데 잘 안 되는 거 같더라”


그 말을 듣고 저 ‘서양애들 무리’에 있지 않았던 한 미국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근데 수는 한국인이야? 한국사람들은 거의 미국식 영어 하지 않아? 걔는 영어가 좀 이상하던데?”

그래서 나는 그녀의 배경을 이야기해 줬고, 그 미국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그래서 그렇구나, 영국 악센트를 하는 건지 흉내 내려고 그러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이들의 눈에도 보이는구나. 너의 삶도 참, 외롭겠구나.


글로벌 사회에서, '정체성'이 뭐가 중요해 싶을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뿌리가 있는지, 내 '집'이 어디인지 아는 것은, 나를 단단하게 한다. 인종이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에 뿌리를 두란 법은 없다. 실제로 여기엔 입양으로 미국인이 된 친구들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들은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고 그 사회 안에 잘 들어가 있고, 이곳에서도 그 정체성을 가지고 잘 어울리고 있다. 그렇기에 어느 쪽이든 내가 누구인가, 하는 그 '뿌리' 자체는 어딘가엔 있어야 한다.


아무리 미국이 좋고 아무리 영어가 좋아도, 나는 우리의 아이들이 자신의 뿌리를 알고 지냈으면 좋겠다. 오히려 글로벌사회에서 무의미한 건 '영어' 그 자체일지도 모르니까. 영어는 '영어 잘하는 한국인'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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