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에 대한 포용은 생각보다 사소한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영국의 화장실엔 특이한 점이 있다. 남성, 여성 외에 gender-neutral 화장실이 하나 더 있다는 점이다. 이는 화장실 사용에 있어 성별을 특정하지 않고, 모든 성별을 포용하는 화장실인데, 한국의 남자변기와 여자변기를 한 곳이 몰아넣고 '아무나 쓰세요, 하지만 불쾌함은 책임지지 않습니다'라는 무책임한 남녀공용 화장실이 아닌, 가정집의 화장실처럼 변기, 세면대가 '한 실'로 구성된 화장실이다.
한국의 남녀공용 화장실이 '효율성'을 중시하고, 그 안에서의 '안전'을 간과했다면, 영국의 gender-neutral 화장실은 트랜스젠더나 특정 젠더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남성'이나 '여성'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불쾌한 시선을 받고, 혹은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들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포용'과 '안전'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gender에 대한 논의는 참 어려운 부분이다. 생물학적인 성 외의 다른 성을 인정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접어두더라도, 각 소수그룹들 사이의 대립 역시 존재한다.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그룹에서도 트랜스젠더를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로 그룹이 나뉘는데 '소수'로서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서로 연대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트랜스젠더를 배척하는 페미니스트 그룹의 존재는 조금 충격이었다. 트랜스젠더를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그룹은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여성화장실 사용을 반대하는데 실제 트랜스젠더 여성이 아닌 남성이 범죄를 위해 자신을 트랜스젠더처럼 치장한 후 여성화장실로 들어올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러한 대립과 논쟁 속에서 그럼에도 존재하는 트랜스젠더, 그리고 젠더 불특정 그룹이 시선을 받지 않고 안전히 이용할 공간은 필요하기에 만들어진 것이 gender-neutral 화장실이다. 학교의 모든 건물 각 층에 gender-neutral 화장실이 있고, 누구든 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나 역시 여자화장실을 찾지 못하거나, 여자화장실이 너무 붐비거나 할 경우 gender-neutral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그냥 한 사람으로서 한 시설을 이용하는 것일 뿐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가장 필요한 공간이지만 가장 간과하기 쉬운 화장실이라는 공간에까지 gender에 대한 포용력을 담은 것은 영국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일 것이다.
이처럼 영국은 gender에 대해 예민한 나라이며, 많은 서구권 나라가 gender 논의를 진지하고 깊게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말만 하면 '너 페미니스트야?'라는 공격적인 질문이 쏟아진다면, 여기서는 그런 생각들이 당연하고 기본적인 전제이다. 한 예로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의무적으로 consent라는 교육을 받는데 교육의 내용은 말 그대로 '동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소 충격적이었던 것은 동의 하에 시작한 성관계 중에도 어느 한쪽이 지속하고 싶지 않아 진다면 언제든 중단할 수 있는 것이 '동의'의 개념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들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데, 한국에선 왜 이런 교육도, 생각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인지 안타까웠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미국과 영국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그들은 대학교에 gender 학과가 있고, 그 관련 수업도 많이 있어서 학부 때도 관심 있게 수업을 들었다고 했다. 또 이런 gender studies의 내용은 남녀의 위상이 어떻고 하는 '피상적인' 개념을 넘어서 신자유주의의 산업구조에서 gender가 어떻게 작용해 왔고 그 결과는 현재 어떠한지, 서구권 중심의 global North 사고에서 간과한 것이 무엇이며 이제 global South를 이야기할 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불평등은 무엇인지 등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진다.
이번 학기 Feminst perspectives on transnational development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첫 수업만에 다양하고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대체 우리나라는 언제까지 군대와 출산으로 남녀 편 가르기를 할 것이며 정치인들은 언제까지 국민들을 그런 유치한 개념으로 묶어 표팔이를 할 것인지 속이 많이 상했다.
공공시설의 포용성, 그리고 그 포용성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과정의 섬세함이 이 나라의 gender 인식을 높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gender를 메인으로 다루는 학과가 있었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꽤나 좋은 대학에서 유학했다는 정치인들은 대체 가서 뭘 배운 걸까...
소득, 젠더, 이민.. 정말 많은 사회적 불평등이 존재하고, 이제 우리나라도 이에 대해 차근차근 해결해 가야 할 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사실 이미 깊게 겪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꾸만 피상적인 논쟁에만 집중을 하는 듯하다. 우리가 다른 시답잖은 논쟁으로 열을 올릴 때 갑자기 몰아칠 폭풍 같은 충돌이 조금은 두렵다. 나는 우리의 정치인들이, 배운 값을 해줬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