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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womanB Sep 29. 2019

집이 생겨버렸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거 어차피 신혼부부나 다자녀 가구가 0순위라서 아마 넌 안 될 거야.” 임대아파트를 지원하는 나에게 동료직원이 한 이야기였다.      


 대학생 때 지내던 부모님 집의 내 방 크기가 직장을 구한 후 얻은 원룸의 크기보다 컸던 탓일까. 간절히 바라던 독립이 그저 혼자 사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음을 깨달은 것은 4.5평짜리 첫 집을 얻은 지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다음에 가는 곳은 꼭 거실과 방이 있는 집이어야 하리라 다짐했지만 전셋값 상승 속도는 내가 돈을 모으는 속도보다 빨랐다.  결국 아주 조금 넓어진 6평짜리 원룸으로 이사했다. 1.5평을 늘려가는 데 추가로 든 비용은 5천만원이었다. 대출은 늘어나고 은행에 내는 월세는 2배가 되었다.


 '넓은 집으로 가고 싶다.' 주중에 비는 언니 부부의 집에서 혼자 1주일을 지내며 나 혼자 20평대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렬해졌다.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집들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였지만, 언니 없는 언니 집에 혼자 지냈던 1주일은 현실이었다.


 '아 근데 돈을 모아서 이만한 집에 혼자 살아보려면 결혼을 얼마나 늦게 해야 하는 거지.'


 그러던 중 임대아파트에 퇴거자가 생겼다는 게시판 글을 보았다. 24평짜리 아파트는 전셋값이 당시 살고 있던 6평짜리 원룸보다 6천만원정도 높았고 전세가 아닌 반전세로 하면 3천만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신청했다가 안된다고 해서 불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니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 소식을 가족 단톡방에 올려 부모님과 상의했더니 두 분 다 좋은 기회라며 신청하라고 하셨다. 문제는 '이만한 전세금을 내가 마련할 수 있느냐.' 였다. 원룸 보증금을 받는다면 조금 수월할 테지만 그러지 않을 경우가 문제였다. 부모님께 전세금 전부를 새로 마련해야 하면 마련해 주실 수 있으시냐고 다시 카톡으로 물으니 부모님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럼 신청합니다.

 -오케이.      


 임대아파트 선정 기준은 신혼부부, 다자녀 가구는 소득분위 상관없이 0순위, 그 뒤로는 소득분위로 순위가 나뉘었다. 나는 연봉이 적어 1순위였다. 때문에 동료직원들은 임대아파트에 대해 '신혼부부 1 가정만 있어도 밀리는 건데 설마 되겠어?' 하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나는 '사실 내가 결혼을 언제 할지도 모르고, 결혼을 기다리다 결국 독신으로 신청하게 될 때는 소득이 올라서 1순위가 아니어서 못 들어갈 텐데, 지금 1순위일 때 신청해서 혼자 20평대 살아보는 꿈을 실현해보고 싶다.' 는 마음이었다. 이번에 결혼하는 신혼부부들이 다 돈이 좀 있는 집안들이어서 임대아파트는 신경도 쓰지 않아 준다면 나에게 기회가 올 수 있을 테니까. (다자녀 가구가 살기에는 조금 좁은 평수라는 생각에 신혼부부가 주 경쟁자일 것이라 예측했었다.)


 다음날, 일을 하다 보니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다. ‘설마 임대아파트? 그게 이렇게나 빨리 결과가 나오는 거였나?’ 하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걸었다.


 “000 씨죠? 임대아파트 보증금 마련하실 수 있으시면 입주 확정해드리려고 하는데요, 가능하세요?”

 “언제까지 말씀드려야 해요? 생각 좀 해봐야 할 거 같아서요.”

 “오늘 오후까지 알려주시면 돼요. 적은 돈 아니니까, 잘 생각해보시고 연락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급하게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임대아파트 보증금 마련할 수 있으면 입주 확정해준다는데 들어간다고 해도 돼? 0억 0천, 가능한 거지?”

 “0억 0천? 니 원룸 보증금 받을 거니까 나머지만 구하면 되는 거 아니야?”

 “아니, 내가 말했잖아, 집 중간에 빼는 거라 보증금 제때 못 받으면 0억 0천 그대로 마련해야 하는 거라고 그래서 도와줄 수 있냐고 물은 거였잖아.”


 문자에 익숙한 내가 카톡을 통해 당연히 이해하겠거니 하고 보내는 정보들은 문자에 익숙하지 않은 부모님께 완벽하게 도달하지 않았던 듯했다.


 “아 그래? 뭐 여기저기 다 끌어모으고 대출받을 수 있는 만큼 다 받고 하면 되겠지.”

 “0억 0천, 가능하단 거지? 확실히?"

 "응. 될 거야."


 확실해야 신청하는 것인데 두루뭉술하게 대답하시는 것이 답답하여 재차 물었다.


 "엄마, '될 거야.'가 아니고 '된다.' 여야 신청하지."

 "응. 가능해."

 "그럼 나 일단 한다고 한다?”

 “그래 알겠어.”     


 앞으로의 이야기들 속에서 자세히 나타나겠지만 사실 이번 집 장만 사건은 나에게 조금 힘겨운 시간들이었다. 생각보다 준비할 것도 많았고 부모님과 서로 이해한 의미가 달라 충돌하는 것들도 굉장히 많았다. 게다가 이 집에 대해 그리는 미래도 많이 달랐다. 서운해하고 상처받고 화내고 후회하고 화해하고 하는 과정 속에서 엄마가 내 나이 때 짊어져야만 했던 ‘어른’이라는 무게를 실감했다.

 일이 다 끝나고 나서 깨달은 것은 엄마는 내 나이 때 한 아이의 엄마로 이 많은 것들을 스스로 해내셔야만 했을 테고 그래서 ‘그 정도는 엄마가 좀 해주지.’ 하는 내 마음에 ‘그 정도는 네가 해야지.’로 답하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나는 참 많이 어렸다.



 오전에 전화를 했던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확정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원룸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게 되어 집을 빼야 한다고 했다. 2개월 정도의 여유기간이 있었지만 집주인은 연말 연초에는 방이 잘 나가는데 지금은 방이 나갈지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부동산에 올려주겠다고 했다. 계약한 지 8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라 내가 강제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최대한 빨리 구해달라고 부탁하고 나는 보증금을 제때 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내가 받을 수 있는 대출의 최대치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부모님께 빌리자는 생각으로 원룸을 구할 때 전세자금대출 절차를 진행해 준 은행원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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