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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womanB Oct 09. 2019

필요한 것은 많은데 생각은 또 너무 달라서

혼자 살 집을 위한 준비 vs. 미래의 남편과 함께 살 집을 위한 준비

 나는 이제까지 신축 풀옵션 원룸에만 살았었다. 신축 풀옵션 원룸의 장점은 침대를 제외하고 내가 준비할 가구나 가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도배와 장판도 새것이었기에 집주인에게 따로 요구할 것도 없었다. 임대아파트로 이사하려고 하니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가구와 가전이었다. 침대는 이미 있었고 그 외 옷장, 냉장고, 세탁기, 그리고 청소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것들을 고르는 데 있어서 부모님과 나의 의견 차이가 엄청났다.


 우선 내가 들어갈 집에 먼저 가서 상태를 보기로 했다. 상태는 심란했다. 벽지는 찢어져있는 부분이 많았고, 신혼부부가 살았는지 각종 Love 어쩌고 하는 문구들이 벽에 붙어있고 새와 나비가 날아다녔다. 꽃을 좋아하는 분이었는지 베란다에는 큰 꽃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본인들 집도 아니고 임대인데 이렇게까지 막 사용할 수 있나 싶었다. 도배와 장판을 알아서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태가 엉망이면 거실만 도배를 하고 나머지는 셀프 인테리어를 하며 참고 살아야지 했는데 그렇게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심란하던 터에 며칠 뒤 도배와 장판을 공단에서 해주기로 했다는 문자가 왔다. 천만다행이었다.


 집 구조는 큰 방(안방) 1개, 작은 방 2개였다. 나는 가장 작은 방 1개를 드레스룸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엄마는 안방에 붙박이장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셨지만 나는 안방에 대한 다른 계획이 있었다. 돈을 제대로 들여서 붙박이장을 하는 것이 낫지 애매하게 옷장을 두는 것은 가격 면에서도 손해라는 것이 엄마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안방에 침대를 두지 않고 영화관처럼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어 붙박이장을 들이면 계획이 완전히 틀어지는 것이었고 옷장도 드레스룸에 들어가는 크기로 미리 봐 둔 것이 있었다. 이 부분에서 엄마와 작은 신경전을 벌였다. "니 맘대로 해. 앞으로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들 중 하나를 골라 뱉으시는 것을 보고 '나 혼자 살 내 집인데, 드레스룸 하나 내 맘대로 못 정하나.' 하는 마음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서운함을 뒤로한 채 옷장에 대한 생각을 관철시킨 뒤 남아있는 관문은 가전이었다. 나는 이 집을 미래의 남편을 위해 장만한 것이 아니라 오직 나만을 위해 장만한 것이었다. 때문에 냉장고도 세탁기도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용량이 큰 것을 살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이 집을 보며 미래의 남편의 생활까지 생각하셨다. 그러니 가전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결혼해서 신혼살림 차릴 때 또 사느니 이번에 제대로 된 것 사야지."라고 말하는 아빠에게 "아빠, 내가 결혼을 이 집에서 할지, 아니면 계약 다 끝나고도 못할지 그건 모르는 일인데, 굳이 사용하지도 않을 냉장고와 세탁기를 비싼 돈 들여 사서 전기세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임대아파트에 좋은 거 들여놓을 필요 있어? 결혼하더라도 나중에 새 집으로 분양받아서 가면 그때 그 집에 맞춰서 하는 게 낫지."라고 반박했다.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던 엄마는 "부모 마음에 그래도 좋은 거 해주고 싶어서 그러는데 그 뜻을 어쩜 이렇게 모를까. 그럼 이번에 싸구려 해주고 너 결혼할 땐 아무것도 없어."라고 차갑게 이야기하셨다. 엄마는 종종 이렇게 극단적이셨다. 나는 엄마의 말에 "그게 문제면 이번에 내 돈으로 다 할게. 지금 새 거 받아서 결혼할 때 헌거 가져가느니 나중에 결혼할 때 제대로 된 거 사줘 그럼."이라고 대답했고 아빠는 "좀 더 생각해보자."라며 우리의 대화를 중재했다.


 다음 날 아빠는 "생각해보니 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해. 혼자 사는데 전기세 나가게 괜히 안 쓸 큰 거 들여놓는다는 게 좀 낭비일 수도 있지."라고 내 입장에서 이야기하셨다. 아빠가 그렇게 이야기할 자리를 만들어주신 덕에 나는 "그래 내 말이 그거야. 나 집에서 밥 해먹을 일 거의 없고, 그건 결혼해도 마찬가지일 거야. 언니네 집만 봐도 큰 냉장고에서 반찬들이 썩어가는데 큰 냉장고에서 음식물쓰레기 만드느니 너무 작은 게 좀 맘에 걸리면 그냥 기본형 적당한 거 사는 게 나을 거고, 세탁기도 검은 빨래, 흰 빨래, 수건 나눠서 빨면 양이 진짜 손으로 쥘 만큼씩 여러 번 빨게 돼. 근데 그 적은 양을 빨기 위해 가족용으로 쓰는 대용량 세탁기가 여러 번 돌게 두는 건 좀 너무하지 않냐는 거지"라고 전날보다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다. 엄마는 가만히 듣고 있었고 아빠는 "내가 얘 얘기를 듣고 생각을 좀 해보니까 얘를 요즘 말하는 '혼족'이라 이해하면 될 것 같더라고. 가전도 그에 맞춰서 한번 같이 골라보자. 세탁기랑 냉장고는 작은 걸로 사고, 청소기는 인원보단 평수를 기준으로 하는 거니까 좋은 거로 사고. 그럼 되는 거지?"라며 내 입장을 거들어주셨다.


 이 당시에는 '거봐. 내가 맞지!'라는 우월감에 젖어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빠는 나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밤새 정말 많은 고민을 하셨던 것 같다. 그 세대에는 이해할 수 없는, 심지어 나의 몇몇 친구들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집에 대한 나의 개념을 아빠는 이해하려 노력하셨고 나와 냉랭한 분위기를 이어가던 엄마를 설득하는 것을 도와주셨다. 그래서인지 이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좀 뭉클해진다.

 


 이제 겨우 당일부터 필요한 가구와 가전의 종류만 정해졌을 뿐 어떤 것을 살지는 돌아다니며 골라야 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아직 필요한 것들이 더 남아있었다. 집은 우리가 직접 청소하기에는 너무 엉망이었고 엄마와 나는 돈이 좀 들더라도 이사청소를 부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원룸에 있는 짐들과 침대, 그리고 부모님 집에 있는 짐들과 책장, 책상을 옮기기 위한 용달을 신청해야 했다.


  그 후 도배와 장판, 이사청소의 일정을 잡아야 했고, 주문해 둔 가구와 가전이 이사 당일 용달차의 일정과 잘 맞물리도록 시간을 조율해야 했다. 용달차는 오후 3시, 가구와 가전의 배송을 모두 오후 5시 이후로 요청해두었다. 하지만 가전제품의 배송은 날짜만 맞춰줄 수 있을 뿐 시간은 배송기사님들 마음이어서 어쩔 수 없다며 아침에 출발 전 배송기사님들로부터 연락이 가면 한번 잘 조율해보라는 말에 다시 머리가 아파졌다. 불안한 마음에 이사일 오후 반가가 아닌 연가를 냈고, 불안함은 현실이 되어 아침에 아파트로 갔다가 오후에 용달을 받으러 다시 원룸으로 들어와야 했던 연가를 내지 않았다면 곤란했을 상황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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