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서운함 문제는 그전부터 시작되었다. 대출을 알아보는 중에 원룸이 나갔다. 원룸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날짜를 지정해 맞춰서 나가주길 바랬고 부모님은 그 날 약속이 있으시다며 본인들이 일정이 없을 때 이사하길 바라셨다. 그렇게 고집하시고 말았으면 차라리 다행이었지만 그러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시고를 반복하시는 통에 나는 임대아파트 계약서를 계속 수정해야 했다.
처음엔 '언제든 가능하게 할 테니 들어오는 사람들 일정에 무조건 맞춰서 진행해라.'라고 이야기해놓고 날짜가 정해지고 나니 약속이 있다고 안된다고 하는 게 서운했고, 취소할 수 있는 약속인데도 이사비용과 잡아놓은 약속 취소 비용을 비교하면서 돈이 덜 드는 쪽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끝까지 일정이 복잡하게 꼬이게 되는 날짜를 고집하시는 건 더 서운했다.
결국 날짜는 아파트 입주일이 원룸 퇴거일보다 하루 앞인 것으로 정해졌고 부모님은 나에게 집주인에겐 전날 이사하는 것을 말하지 말 것과 보증금을 받고 방을 뺄 것을 강조하셨다. 하지만 원룸 집주인은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보증금을 받은 다음에 나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보증금을 정해진 퇴거 날에 돌려준다는 걸 하루 전에 미리 달라고 강제할 방법은 없었고 나로서는 보증금을 받고 나서 비밀번호를 알려주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부모님은 계속 내가 일을 잘못 처리하는 것이라고 답답해하셨고 나는 부모님 때문에 원룸 보증금을 받기 전에 방을 빼야 하는 상황이 왔는데도 부모님이 집주인에게 전화 한 통 대신해주시지 않는 것에 서운해했다.
■ 대출금 돌려막기
원룸에 잡혀 있는 버팀목을 갚고 다시 대출금이 0원인 상태에서 버팀목을 실행하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도움을 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과정을 설명하며 엄마에게 버팀목을 미리 갚기 위한 0천만원을 빌려달라고 이야기했고 원룸 보증금을 받는 즉시 돌려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알겠다고 했다. 그 후에도 불안한 마음에 몇 번씩 가능 여부를 물었고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버팀목은 해결이 되었으니 나는 내 대출을 진행하기 위한 순서를 밟았다. 마이너스 통장을 먼저 만들고 나서 버팀목이 다 갚아지면 버팀목 신청을 하기로 했다. 엄마에게 대출 진행 과정을 알려주면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고 하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마이너스 통장 만들었으면 내가 0천만원에서 너 마이너스받은 거 제외하고 주면 되는 거 아니야?”
“아니 그건 나중에 전세금이랑 대출금 차액 메꿀 돈이라고 했잖아. 왜 내가 하는 얘기를 안 들어? 내가 몇 번을 설명했잖아. 계속 확인도 했고, 그때마다 엄마 못 믿냐고 더 말 안 해도 된다고 이해했다고 알겠다고 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다른 얘기를 해 다시? 내가 돈 마련할 수 있는데 엄마한테 달라고 했겠어?"
입주일과 퇴거일 조정에서 겨우 가라앉혔던 서운함이 다시 고개를 들더니 새로 생긴 서운함을 끌고 빠르게 달려왔다. 내가 돈이 있으면서 빌려달라고 했다고 한들 아예 달라는 것도 아니고 며칠 안에 다시 돌려줄 돈인데 그것마저 얼마나 줄이고 싶었으면 이제까지 말했던 것을 다 잊고 바로 이런 전화를 하실까 싶었다. 곱씹을수록 서운함은 커졌고 '엄마가 대출을 받는 것과 내가 대출을 받는 것의 이율도 비슷하고 같은 대출을 받아도 나는 이자가 월급의 5분의 1이고 엄마는 10분의 1인데, 그래서 내 친구는 이자는 부모님이 내주신다고까지 하는데 우리 엄마는 정말 너무 매정하다.’라는 생각까지 갔다.
뉴스 속 재벌들의 싸움과 드라마 속 가족들의 싸움에 혀를 차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족이 어떻게 돈 앞에서 무너져.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왜 모르지. 다 큰 어른들이.’라고 말하던 나는 실제로 돈에 대한 상황에 직면하자 내가 내뱉은 말들이 무색할 만큼 아주 작은 것에 그 누구보다 쉽게 무너졌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이 과정 속에서 내가 서운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다 털어놓았다. 부모님도 본인들은 다르게 생각했다고 절대 아까워서가 아니었다고 설명하시면서 서로 알아서 이해하겠지 하고 공개하지 않은 마음들이 상대방에게는 오해가 되어 쌓인 것 같다고 했다. 어느 정도 마음이 풀린 것 같았지만 그래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던 앙금이 있었는지 어떤 가구와 가전을 장만하느냐에 대한 의견 차이로 엄마와 나는 다시 필요 이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돌이켜보면 엄마 딸이 엄마 고집 닮아서 그런 거지 누구 고집을 닮아서 그랬겠어 싶지만 이사를 모두 마치고 다시 서로를 웃으며 대하기 전까지는 순간순간이 살얼음판이었다. 아빠가 말을 할 때는 엄마가 아빠 옆구리를 치고, 엄마가 말을 할 때는 아빠가 엄마의 옆구리를 쳤던, 그 사이에서 나는 울컥하는 마음들을 가라앉히고 최대한 부드럽게 설명하려 애썼던 순간들, 그래도 우리 모두 이 과정을 통해 서로에 대해 더 성장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포장을 해도 되려나.